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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는 소리, 마찰의 소리

교토, 일본

by 프로이데 전주현

드르륵드르륵-.


여행 캐리어 바퀴가 지면과 마찰하듯이, 여행지와 여행자는 작은 것에도 부딪히고 서로의 사진을 찍느라 바쁘다. 대중교통 티켓 발권기의 버튼 모양, 길거리 간식 위에 뿌려지는 소스, 거리 구석구석을 메운 광고판, 택시 운전기사의 복장, 식탁 위 풍경, 어린 시절의 꿈이 가득 담긴 만화책, 빵 굽는 냄새와 구워져 나온 빵의 두께, 사람이 북적이는 거리의 소음과 오래전 청년 시인이 다녀갔던 구름다리까지... 집이라 부를 수 있는 출발지와 타지라 지칭하는 도착지(여행지) 모두 사람 사는 곳인데 새로워 보이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평소 즐기지 않던 음식을 끼니 삼고, 집에선 눈여겨보지 않았던 일상적 풍경을 관찰하고, '어느 것이 좋을까' 하면서 기념품을 골라낸다, 새롭고, 익숙하지만 무언가 달리 보이고, 특별하다는 생각이 커지는 시간. 그야말로 여행의 시간이다. '하루 만에 이토록 다양한 감각들이 되살아날 수 있다니!' 하고 감탄하는 것도, '하루가 이렇게나 순식간에 지나가다니!' 하고 아쉬워하는 것도 일상이 된다. 길어서 좋고 짧아서 아쉽지만 또 좋고. 여행자를 결단케 하고 여행자를 집으로 돌아가게 한다. 여행지가 여행자를 움직이게 하고, 결국 살리는 것이다.


여행 첫날, 냉녹차 보틀을 뺨에 갖다 대며 하루카 티켓 발권을 기다리던 시간. 인터넷으로 사전 구매를 한 표인데도 QR코드만으로 곧바로 승강장에 갈 수 없다는 게 이상하다면서 혀를 내둘렀던 그때를 지금은 웃고 넘기며 지낸다. 둘 째날, 평소 챙겨 먹지도 않는 아침을 교토에선 맛보겠다면서 아침 일찍 오반자이 가게로 향하던 당찬 발걸음. 그게 시작이 되어 하루 2만 보가 넘도록 교토를 누비며 수평 걷기(계단이나 산 따위를 오르는 걷기가 아닌 둘레길이나 평지, 도심 속을 누비는 걷기)를 한 덕(?)에 종아리가 조금 두꺼워졌었지. 필라테스 선생님께 왼쪽 다리의 묵직한 기운은 교토 여행의 전리품이라는 핑계를 댄다(씨알도 안 먹힌다). 윤동주 시인의 발자취를 따라 우지를 방문한 셋 째날, 마음과 몸을 가득 채웠던 녹차 한 잔의 차분한 기운. 시 한 편을 찬찬히 읽듯이, 조금 느리더라도 다 해내고 마는 일본의 풍경을 호롭 들이켰던 경험을 떠올린다. 하루 잠깐이라도 꾸준히 책상 앞을 지키는 스스로를 응원하는 데 그만한 자극이 없다. 마지막 날까지도 싱그럽게 피어있는 교토의 수국들. 그 사이를 천천히 걸으며 이전보다 훨씬 무거워진 캐리어를 모시다시피 끌었다. 드르륵드르륵-. 두 발아래 푸른 바다를 놓고 한국으로 날아올 때까지, 몇 번이고 사진첩을 뒤적이며 회상관에서 지난 3박 4일을 상영했다. 참고로 장르 구분은 리얼 예능 다큐멘터리였다.


오래오래 천천히 향긋하고 맛있게 걸었다. 어린 시절의 만화영화와 학창 시절의 제2외국어로 심리적 거리감을 좁혔던 일본과 일본어의 본거지(?)를 가 볼 수 있어서, 재촉하는 목소리 없이 싱그러운 여름 풍경 사이사이를 겪어볼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무엇보다도 십 년이 넘도록 영혼을 나누는 친구와 어른의 트랙에서 벗어나 여행자의 트랙을 함께 달릴 수 있어서 감사했다(물론, 걸었지만 우리는).


그때 그 시절, 어느 마법사의 주문처럼 썼던 일기장의 마지막 문장을 이곳에도 적으며 다음 드르륵드르륵- 소리를 기다린다.


"참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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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박 4일 교토 여행 스크랩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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