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프로이데 전주현 Apr 05. 2024

생일 축하합니다

24.04.04 14:26 씀

나는 어린이였다


생일 케이크의 옆면은 오돌토돌한 모래사장을 닮고

생일 케이크의 윗면은 얇게 저민 화이트 초콜릿이 탑을 이루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던 어린이였다


목련 꽃잎이 생일 케이크의 화이트 초콜릿으로 보이기 시작한 건 생일이어도 화이트 초콜릿을 굳이 떠올리지 않았던 때부터였다 - 나의 생일은 벚꽃보다는 목련이 만개할 때


화이트 초콜릿이 겹겹이 꽃을 이루고

초콜릿들은 봄을 흐드러지게 찬양한다

현관문에서부터 나는 초콜릿들에게 사로잡혀

무자비하게 흔들린다

계단을 내려가는 폼이 속절없이 삐딱하도록

노래를 마친 초콜릿들이 계단 위에 내려앉는다


쉰다, 수북이

떨어진다, 향기롭게

핀다, 후회 없이


나는 하얗기만 하던 것 위로 갈색 주름이 져 있는 걸 발견한다


제법 초콜릿 같구나

제법 목련 같구나


그중 하나를 집어 들어 손에 담는다


나는 어른이었다


제법 목련 같은 것의 윗면은 망망대해를 가르는 현자의 나룻배 같고

제법 목련 같은 것의 옆면은 중식당에서 챙겨 주는 숟가락을 닮고

그래선 안된다고, 생각했던 어른이었다


생일 - 당일에,


바람에 흔들리면 꺼지는 대상이 촛불이었음을

촛불이 꺼진 뒤에도 여전히 촛농이 흐르고 있었음을

다행이라 여겼던, 어른이었다



이전 22화 디오르 씨를 위한 장미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