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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로이데 전주현 May 14. 2024

때로는 정석이 최고

봉쥬르: PAGE 10-11


규칙도 정답도 없는 게 스크랩북 메이킹이라고 했지만 때로는 정석이 최고일 때도 있어. 자잘 자잘한 추억 조각들이 많을 때 특히 그렇지. 여기서 말하는 정석이란, 조각조각 반듯하게 모자이크를 완성해 가듯이. 노트 위에서 테트리스 게임이라도 하듯 조각들을 페이지에 욱여넣는 것. 그리고 훗날 노트를 펼쳐 보다가 '이게 뭐지?' 할지도 모를 미래의 건망증을 우려하여, 조각들 옆에 짤막한 메모를 남겨두는 걸 말해. 학창 시절의 필기 노트를 닮기도 했고, 선생님 몰래 친구들과 주고받은 쪽지를 닮기도 했지. 


덕지덕지. 조각조각.

짧은 메모(때론 변명).


익숙한 형태, 형식만이 줄 수 있는 편안함이 느껴져.


짧은 메모와 변명의 형식이 어떻게 되냐고? 주인장은 조각을 추억상자에 간직하고 있던 이유, 조각에 얽힌 개인 사연을 주로 썼대. 예를 들면 이런 거지.



GROM MILANO : 지금껏 내가 먹던 피스타치오 아이스크림은 피스타치오 아이스크림이 아니었다. 젤라토의 본고장에서 먹는 피스타치오 맛은 이런 거구나.


이때까지만 해도 주인장이 밟아본 이탈리아 땅은 밀라노가 전부였고, 맛보았던 이탈리아 젤라토도 그롬(GROM)이라는 젤라토 체인점의 메뉴뿐이었어. 그래서 저런 메모가 남겼대. 2022년에 신혼여행으로 로마와 피렌체 등지를 다녀온 뒤로는 그롬에서 파는 젤라토가 크게 인상적이지 않게 느껴졌다고 했거든. 



Welcome to Westminster Abbey (Wednesday 12.July 2017 10:24) : 엄마, 아빠와 함께 다시 찾은 웨스터민스터 사원. 영국 왕실과 유명인사들의 무덤. 영국 정신의 무덤이라고 할만한 상징성을 지닌 곳. 


이야기의 도시, 런던은 주인장이 정말 좋아하는 곳 중 하나야. 짧은 유럽 생활 중에도 런던을 세 번이나 찾았을 정도지. 그런데 첫 번째 런던도 두 번째, 세 번째 런던에서도 꼭 웨스트민스터 사원을 방문했다고 했어. 방문을 함께 했던 사람들이 다 달랐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곳에 들어갔을 때에만 느낄 수 있는 영국인들의 정신, 그들이 소중히 여기는 가치를 계속 되뇌고 싶었던 이유가 가장 컸대. 


최근에 갔을 사원 내부에서 사진을 찍을 있어서, 문인들의 무덤 쪽에서 한동안 카메라를 작동시켰다고 하더라. 문장으로만 알고 지내던 세계적 문인들의 이름을 밟고 서 있어도 되나, 황송하면서도 오묘한 느낌을 받았대. 그리고 시간이 흘렀어도 여전히 살아 숨 쉬는 글의 힘을 느꼈지. 사람은 죽지만 문장은 남았구나, 싶었대.




짧은 메모를 덧붙이기 가장 좋은 스크랩 재료로 나와 주인장은 여행지에서 방문했던 식당이나 가게의 홍보물(혹은 명함)이나 어느 랜드마크의 입장권을 꼽아. 아, 교통권도 빼놓을 수 없겠다. 버스, 전철 티켓이나 기차차 여행권 말이야. 


그런데 요즘엔 그런 재료들을 찾기가 꽤 힘들더라. 온라인 티켓이나 QR코드 티켓의 사용이 많아지면서 굳이 아날로그 표를 끊어주지 않더라고. 한편으론 종이 소비가 줄어서 조금 더 많은 나무들을 살릴 수 있겠구나 싶다가도, 손으로 만져지는 무언가가 없고, 이렇게 정석적으로 노트를 채울 스크랩북 재료가 없다고 생각하니... 아쉽긴 해.


이러다가 나중엔 스크랩북의 정석이 바뀌는 건 아닐지 모르겠네.


PDF. ZIP.

클라우드와 해시태그.


아. 편리하긴 한데. 뭔가 허전해. 나만 그런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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