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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게 찬푸르

이륙과 착륙 그리고 첫인상

by 프로이데 전주현





인천공항에서 오키나와 나하공항까지는 두 시간 삼십 분 정도 걸렸다. 길지 않은 비행시간으로 이국적인 분위기의 섬나라를 탐방할 수 있어서일까? 오키나와행 아시아나 비행기에는 가족 단위의 승객이 많이 보였다. 갓난아이부터 초등학생, 그리고 엄마 뱃속에 있는 아이까지, 특히 어린이 손님이 눈에 띄었다. 새벽에 집을 나와 부지런을 떨었던 올빼미 여행자에겐 매우 곤욕스러운 환경이었다. 조금이라도 비행기에서 자 둬야 여행 첫날 일정을 소화할 수 있을 텐데 도저히 잘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짧은 비행이건 아니건, 다른 때엔 기내에서 소음이 발생하면 승무원들이 주의를 주었던 것 같은데, 한국인을 왕창 태우고 가는 비행기라 팔이 안으로 굽은 건지, 어차피 곧 끝날 비행이라 무던해진 건지, 그 어떤 어른도 아이들의 소란스러운 행동에 쓴소리를 하질 않았다. 이어폰을 사용하지 않고 큰 볼륨으로 아이에게 영상을 보여주는 부모가 있는가 하면, 빈 좌석으로 마음대로 자리를 옮겨가며 우는 아이도 많았다(그래 울 순 있지. 근데 왜 아무도 달래지 않느냐고).


재미있게도 빈 좌석을 발견하고 자리를 이탈한 이들 중에는 시아버지도 계셨다. 아니, 아버지, 어머니 옆에 꼭 붙어 있으셔야죠, 개인행동을 하시다니요. 그러고 보니 우리 이빨 빠진 사자님께선 인천공항으로 달리는 택시 안에서도 기사님에게 계속 질문을 던지셨다. 저건 무슨 다리인지, 한강이 몇 킬로미터인지... (그러니까 나는 택시에서도, 비행기 안에서도, 부족한 잠을 해결하지 못했다.)


하긴, 서울 풍경에도 질문이 끊이질 않는데 하늘 위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얼마나 더 흥미로우셨을까. 하와이안 티셔츠를 곱게 차려입으시고 연신 창문에서 눈을 떼지 못하시던 모습을 보며 남편과 한참을 웃었다. '역시 소년이시네, ' 하고서.




나하 공항에서 시내로 향하는 유이레일을 타겠다고 건물 밖으로 나가고서야 숨을 돌렸다. '와, 이제야 조용하다.' 섬나라 특유의 높은 습도가 반가울 수도 있구나. 한국에서 작별인사를 나누었던 여름과 재회했다. 모퉁이를 돌아서 가을로 나가려는 나를 오키나와의 여름이 붙잡았다. 후텁지근한 미련이었다. '그래, 사흘 정도 더 함께한다고 크게 달라질까.' 나는 뒤를 돌아 여름의 손을 붙잡아주었다.


오키나와를 여행하는 방법 중 하나는 제주도 여행처럼 렌터카를 이용하는 것이다. 해안도로를 따라 섬을 돌면서 바닷가와 섬 곳곳에 포진된 명소들을 찾는 재미가 쏠쏠하다. 가족 단위 여행객이 많으니 차 한 두대로 움직인다면 교통비를 아낄 수도 있어서 인기가 많다. 우리도 렌터카를 예약해 두었다. 하지만 둘째 날과 셋째 날, 딱 이틀만 빌렸다. 여행 첫날엔 나하 시내에 위치한 숙소에 무사히 체크인을 하고서 걸어서 주변을 탐방하려고 했기에 굳이 차가 필요하지 않았다. 시부모님 두 분 모두 웬만한 거리는 도보로 이동할 수 있을 정도로 건강 관리를 잘하신 덕분에 가능했던 일정이었다.


나하는 오키나와 여행의 시작을 알리는 관문 도시로, 1429년부터 1879년까지 존재했던 류큐 왕국의 수도이자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과 연합국이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곳이다. 굴곡진 역사 때문인지, 나하의 풍경은 꽤 복합적이었다. 일본인데 일본답지 않았다. 햄버거 가게 간판과 서핑하는 캐릭터가 그려진 티셔츠, 길거리를 장식한 야자수, 벌겋다가 파란 차양막, 이따금 보이는 성조기와 빈티지 숍, 관광객을 위해 마련된 외국어 차림판. 묘하게 미국, 묘하게 중국, 묘하게 제주도, 묘하게 일본이었다. 짬뽕 생각이 났다. 그러다가 여행 책자를 꺼냈다. '분명히 이런 상황을 지칭하는 표현이 있었는데.' '오키나와 식문화'라고 제목이 붙여진 페이지에서 멈췄다.


찬푸르. 오키나와를 대표하는 밥반찬. 주재료에 두부나 얇게 썬 삼겹살, 숙주, 스팸 같은 부재료를 넣고 소금과 후추, 약간의 간장으로 간을 해 볶아내는 요리. 오키나와 채소인 고야(여주)를 메인으로 한 고야 찬푸르가 대표적이다. - <리얼 오키나와> 58쪽 본문 중


'맞다, 찬푸르!'


한 지역 정체성의 표상으로 음식만 한 게 없다더니, 거리를 걸었을 뿐인데도 찬푸르를 대접받은 기분이 들었다. 실제로 가정식을 먹으면 또 어떤 느낌이 드려나. 찬푸르를 닮은 다채로운 여행을 하고 싶어졌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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