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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지음지기 비하인드 에세이

by 프로이데 전주현 Feb 12. 2025
다정한 글을 읽으면 만족스러워요. 혼자만의 생각으로 가득 찼던 방에 공간이 생기고요, 그 틈으로 햇빛도 조금 들어와요. 나만 이랬던 거 아니네, 하는 생각과 내 생각이 전부는 아니네, 하는 생각이 충돌하는데요, 그때 지진을 닮은 진동이 심장에서 손끝까지 전해져요. 그 진동으로 손톱 밑 때처럼 제게 달라붙어 있는 게 떨어져 나가진 못하지만요, 한껏 힘주면서 걷던 걸음걸이가 흐물흐물해져요. - <틈글집: 뭐야 너무 다정하잖아> 중에서


2024년 10월 18일. 나의 두 번째 북페어, 2024 서울 퍼블리셔스 테이블가 시작했다. 서울에서 열리는 행사라 나의 근황을 아는 이들에겐 미리 [초대장]을 적어 보다. 그간 스스로를 작가지망생으로 소개했었는데, 좋은 동료와 기회를 만나 독립출판을 도전하게 되었다고, 지망생을 지우는 연습을 한다고 적었다. 지음지기를 소개했고 "'짓는' 마음을 사모하는 독자분들을 만나러 간다며'라며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분이 묘했다.


"정연아, 너 졸업 전시하면 주변 사람 초대하잖아, 그때마다 이런 기분이야?"

"언니가 지금 어떤 느낌인데요?"

"나를 조금 더 보여줄 수 있어 기쁜데, 또 막상 그 사람들이 내가 만든 걸 보러 온다니까 어디 숨어 있고 싶기도 하고 그런 두 마음."


그 말에 정연이는 '녀석, 참' 하듯이 웃었다. 정연이는 전시와 북페어를 한두 번 해봤을 땐 자기도 뿌듯하면서도 간지러운 마음에 점령(?) 당했는데, 지금은 일상처럼 지나가버려 '뭐, 그런가 보다' 하고 넘긴다고 했다. 그런 게 바경력자의 마음일까?



첫 날인 금요일엔 특별히 오픈 시간이 두 시간 늦춰진 14시였다. 초보 작가는 부푼 마음을 다독이며 12시가 지나자마자 백팩 하나 기내 반입용 캐리어를 하나 끌고서 집을 나섰다. 그런데 나오자마자 한숨이 절로 났다. 비가 엄청 쏟아지고 있었다.  


'나는 젖어도 되지만 얘네들(책들)은 안 된다!'


집에 다시 들어가 우산을 장우산으로 바꿔 나왔다. 그리고 할 수 있는 한 날렵하게 움직였다. 북페어 장소는 성수동 에스펙토리. 집에서 멀진 않았지만 대중교통으로는 환승이 필수인 동네였다.


책들을 위하는 마음 덕분에 어찌어찌 에스펙토리에 도착은 했다. 때아닌 폭우로 참가팀들도 스태프들도 분주해 보였다. 챙겨 온 짐의 부피가 크진 않았지만 안에 든 물건들 중에 책이 많았기에 보기보다 무거웠다. 빗속인데도 건물 밖으로 화물엘리베이터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난감다. 그렇다고 짐을 들고 3층까지 걸어 올라갈 자신은 없었다.  그때, 스탭 한 분이 나와 재희 작가님을 발견하고 다가오셨다.


"참가팀이시죠? 짐은 이게 전부세요?"

"네. 어이구, 조심하세요. 무겁습니다."


스태프 분은 우리가 어깨에 이고 진 짐들을 제외한 캐리어들을 한번 살피더니 직접 들어 무게를 가늠해 보기 시작했다.


"이 정도면 제가 들어도 되겠는데요?"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이용하라는 권고인가 싶었는데, 그 스태프 분이 말을 마치시자마자 캐리어를 손에 꼭 쥐고서 계단 위로 다람쥐처럼 올라가시는 게 아닌가. 눈 깜짝할 새 일어난 상황에 나도 재희 작가님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스태프 분을 따라 계단을 올랐다. 계단 위에도 빗물 자국이 여기저기 보였다. 미끄러지시면 어쩌지 조마조마했다.


"아, 어, 어... 무거우신데 아이고, 조심하세요. 아... 감사합니다."


어느덧 3층. 스태프 분은 별일 아니라는 듯이 캐리어를 바닥에 내려놓으시고 웃으셨다. 뭐라 감사 표현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보조 가방에서 이따 먹으려고 챙겨 왔던 간식을 꺼냈다. 견과류 과자 두 개였다.  


"너무 감사해서... 이거, 별거 아니지만 출출하실 때 드세요."

"와, 감사합니다!"


밝은 인사로 홀가분하게 다시 사라지신 그 스태프 분 덕에 출근길이 조금 덜 수고스러워졌다. 나중에 재희 작가님께 전해 들은 바로는, 그때 그 스태프 분이 바로 사장님, 서울 퍼블리셔스 테이블의 주최 서점인 스토리지북앤필름의 대표, 마이키 님이었다. 북페어 시작 전부터 주최 측의 체계적인 안내에 감동하고 있었는데, 이 모든 걸 관리 감독하시는 대표님부터 망설임 없이 돕고, 뛰시는 분이었다니! 괜히 10년째 이어져 오는 국내 최대 독립서적 북페어가 아닌 것 같았다.


첫날캐리어를 들어주신 것에 대한 감사를 표하고 싶었다. 북페어 마지막 날, 주최 측 후원한다는 의미가 담긴 굿즈(에코백)를 구입했다. 후원/협업사로 소개받은 어디(EODI)의 어플도 꾸준히 사용했고, 굶으면서 일하지 말라고 마련해 주셨던 푸드 코너도 매일 들다(특히, 푸드이슈 부스에서 3일 끼니를 해결했는데, 페어가 끝나고 나선 따로 세 번 찾아갈 정도로 그곳 음식을 애정하게 되었다).



마이키 님의 도움으로 페어장에 도착한 우리는 C-13 부스를 찾아 에스팩토리 3층휘젓고 다녔다. 벌써 부스 꾸미기를 마친 분들도 몇몇 보였다. C-13 부스는 페어장 한가운데, 유동 인구가 가장 많(을 것 같)은 곳에 있었다.


부스 테이블마다 골판지가 덮여 있었는데, 그 덕분에 부스 뒤편에 앉아 있을 때 다리나 테이블 밑 짐이 보이지 않아 좋았다. 테이블 앞쪽을 게시판처럼 활용할 수도 있었다. 우리는 그곳에 지음지기 x재희 부스 소속 작가들의 포스터와 포트폴리오 QR 링크를 하나씩 붙여두기로 했다.


가을 분위기가 물씬 나는 주황색 천부터 테이블 위에 깔았다. 그다음은 DP 회의에서 시연한 걸 그대로 복사+붙여 넣기 하면 그만이었다.



지음지기x재희 C-13의 BEFORE AND AFTER


부스 설치를 마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정연이가 도착했다. 일정상 좀 늦을 것 같다고 미리 말을 해주었기에 나는 정연이가 무사히 온 것만으로도 반가웠다. 그런데 정연이는  재희 작가님과 나 둘이서만 거센 비를 뚫고 부스를 설치 게 마음에 걸리는 모양이었다.


"오느라 수고했어."


북페어 오픈 전까지 시간이 좀 남아 방문객들이 오기 전에 페어를 한번 쓱 둘러봤다(이만한 특권이 또 어디 있을까). 제주에서 봤던 부스와 이따금 인사하며 지내는 작가님들이 눈에 들어왔다. 앉은자리 맞은편에는 토끼풀 작가님이 수줍게 손을 흔들고 계셨고, 입구 쪽의 엄선 작가님께서도 익숙한 모자를 쓰고선 안부를 나눠주셨다. 이 바닥 인맥이 형편없는 나지만, 한 두 명 아는 사람이 있는 채로 북페어를 시작한다는 게 지난번 제주 때와는 또 달라서 설레었다.


'이번엔 또 어떤 만남이 있을까?'

'어느 책을 가장 관심 있게 보실까?'

'몇 권이나 팔릴까? 서울이라 구매력이 좋다던데.'

'오늘 놀러 오는 친구가 있을까?'

'점심은 뭐 먹지?'

'화장실은 어디 있지?'

'현금을 얼마나 갖고 왔더라?'

'이 비는 언제 그치려나?'

'인스타는 언제 올릴까? 얼마나 자주 올릴까?'


...


째날을 제외하고는 북페어가 진행되는 내내 날이 쨍쨍했다. 그래서 그런지, 책들도, 작가님들도, 방문객들도 뽀송뽀송했다. 친구들과 가족들이 참 많이 다녀갔다. 툭 치기도 전에 책 설명을 쏟아내는 내 입술에 놀라기도 했다. 책을 사가는 이들이 상당히 많았다. <너와 나의 니은>은 가져온 물량을 모두 다 팔아 마지막 날에 매진되기도 했다. 이따금 페어장을 돌아다니는 드론을 향해 손을 흔드는 재미 쏠쏠했다. 시장 바닥 같은 어수선함이 좋았다. 한강 작가님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을 접한 이후라 그런지, 책을 찾는 이들의 표정마다 궁금증과 희망이 가득 보였다.



+ 정연 작가의 지음지기 <2024 서울 퍼블리셔스 테이블> 후기가 궁금하다면? (읽기)





"함께 그리고 씁니다. 개인의 일상을 연결합니다."

지음지기(@drawnnwrittenby) 포트폴리오

그리는 사람 최정연  쓰는 사람 전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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