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엔 이웃들과 자식들의 방문까지 사절하고 정원일에 몰입했다. 하지만 전체 일을 반도 못 끝낸 채 오월을 맞았다. 오월에 들어서는 연일 감기 몸살을 앓으며 일어날 수도 없고, 먹지도 못한 채 오한을 느끼며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워있어야만 했다. 세상에서 힘든 일과 쉬워 보이는 일의 구분은 바로 내가 하느냐와 남이 하는 것이냐의 차이임을 절감한다.
지난해 늦가을 파종 후 꽃을 피우던 양귀비는 나날이 세를 넓혀가고 있다. 다부지게 일하기는 고사하고 겨울 내의와 외투를 껴입고 여기저기에 기대어 천천히 발 길을 옮기다 현기증이 일면 그늘에 앉아 호흡을고르기일쑤인 나날들!
꽃들은 지친 정원사의 노력에 보답이라도 하듯 몇 배 더 분발하고 있다. 아픈 와중에도 꽃들을 보며 웃음 짓는 내마음이 저들에게 전해지는 것인지.
하늘거리는 꽃 잎과 선명한 색에 반해 심었던 꽃양귀비! 새싹에서 개화하기까지의 전 과정을 지켜보면서 나는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꽃봉오리일 때는 호전적으로 생겼고, 만져보면 그 느낌이 거칠었다. 고개 숙인 봉오리가 섬뜩한 뱀 눈처럼 노려본다고 느껴져 놀라서 물러설 즈음, 봉오리는 곧 투구를 벗어던지고 꽃잎을 일시에 펼친다. 동양 최고의 미인 이름이 양귀비인 이유를 단번에 알 수 있을 자태로 하늘 아래 존재감을 펄럭일 때면 매혹 그자체가 된다.
한 송이에 한 송이를 더하며 피어나던 꽃의색깔은 참으로 다양하다. 흰색, 분홍, 살구색, 다홍색, 흑장미색, 흰색에 분홍 테두리, 분홍에 흰 테두리, 진분홍, 빨강 등. 떨어진 꽃잎을 주워 바위 위에 올려놓으면 날갯짓하며 날아오르는 나비가된다.
그동안 피고 진 수많은 봄날의 꽃들! 내가 나의 일을 하는 동안 그들도 자신들의 일을 끊임없이 해냈다. 2016년 정원의 오월은 꽃양귀비로 수놓아졌다. 유월 중순엔 모든 화려함이 소리 없이 사그라들 것이고 봄에 파종한 다른 모종들이 자라서 그 자리를 대신할 것이다. 나는 곧 완쾌하여 뜨거운 태양 속에서 다시 풀을 뽑고, 물을 주고, 그늘 아래에서 쉬어가기를 반복할 것인데 잊지 않는 한 가지가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