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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희 Jun 19. 2016

슬로우라이프

질주 후의 경험들


    하루하루 할 수 있는 만큼의 노동으로 나무와 농작물 꽃들에 대한 이해를 넓혀가는 날들이다. 나의 의지와 계획보다는 절기에 따른 변화무쌍한 자연현상들을 눈여겨보고 있다. 전과는 정반대의 삶이라 하루에도 몇 번씩 "느긋해지자"라고 마음먹지 않으면 서둘러서 망쳐버릴 일들이 대부분이다. 


    씻은 보리수의 물기를 말리는 중인데, 이때도 물 빠짐 소쿠리를 햇볕 드는 곳에서 바람 부는 곳으로 몇 번이나 옮기면서 천천히 증발해가는 물기를 나는 답답해했다. 초록에서 노랑 마침내 빨강으로 익어가던 '보리수 열매의 완성 시간' 보았에도 불구하고.


     음료 한 잔은 카페에서 주문하여 마시기까지 5분이면 족하다. 하지만 땅을 고르고 거름을 한 뒤 묘목을 심어, 열매를 수확 하기까지의 시간은 꼬박 2~3년이 걸리는데 내 마음의 지루함은 10년 이상이다. 열매는 같은 날 같은 시간에 익는 게 아니어서 날마다 조금씩 수확해야 한다. 효율을 앞세워 한번에 따버리면 먼저 익은 것은 바닥으로 떨어져 버리고 설익은 것들은 맛 큼하성도 있어 조심해야 한다.


    여러 시행착오에도 불구하고 올해 알찬 들은 내게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 보라며 넘치는 영감을 뿜어대고 있다. 보리수뿐만 아니라 선물로 받은 많은 양의 아로니에를 음료와 요리에 이용하거나 저장법을 혼자 공부하다 가끔 깊이 빠져들기도 한다.

좋아서!!!


    수시로 따서 모으다 보니 열매와 설탕의 적정량 혼합이 어렵다. 병 가득 내용물이 차지 않을 때는 병을 눕혀서 보관하는 것도 방법 중 하나!


    씻어서 물기를 말리는 데만  이상이 걸리는 보리수! 신선한 것을 골라 꼭지를 제거하려 손에 쥐면 얇은 습자지 같은 껍질 속 과즙이 터져버리기 일쑤다. 힘 조절을 해가며 꼭지 따기 노하우가 절정에 이르면 묘하게도 일은 끝나버린다. 설탕으로 재운 열매들은 한 계절 혹은 넉넉잡아 두 계절은 족히 보내야 충분한 과즙이 우러난다. 시원한 음료는 물 건너가고 추운 겨울이 되어야 완성될 것이다.



    경영서, 자기 계발서, 매일의 다짐, 기도로 무장하고, 새벽형 인간, 멀티플레이어, 시간 운용법을 실행하며 달리고 또 달리던 지난 시간. 그때엔 지금과 같은 시도와 숙성의 시간은 생산적이지 못한, 대책 없는 일들로 여겨졌었다. 하지만 그럴 일 없을 거라 여겼던 일들을 지금 나진심으로 원하여하고 .


    꽃과 채소, 과수를 직접  가꾸며 수확  활용하는 전 과정에 지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다. 집 짓기가 한창일 무렵 복분자를 심어달라고 남편에게 간곡하게 부탁했다. 묘목에 대한 공부는 그의 몫이다. 덕분에 점적 시설까지 갖춰진 밭에선 최근 아침저녁으로 원했던 것 이상의 복분자 열매를 딸 수 있게 되었다.



    며칠 전 동해안 여행을 나섰다가 돌아온 집는 잘 익은 까만 복분자 열매가 풍성했고, 달콤하게 먹었며 톡톡 따던 손맛은 감동이었다. 신선한 열매를 뜨거운 불에 올려 Jam으로만 만들기엔 아쉬운 점이 크다. 다른 방법은 없을까? 5kg의 통에 재료를 채운 뒤 팔뚝을 걷어붙인 채 손으로 으깨기 시작했다.


    진흙에서 발을 움직이는 것 마냥 자줏빛 베리의 뻑뻑한 과육 속에서 내 손은 부지런히 허우적거렸다. 으깬 열매의 부피는 순식간에 1/3로 준다. 그러기를 세 번 정도 반복하니 5kg의 베리들이 촘촘히 쌓였다. 설탕의 조합으로 작업은 마무리되었고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끓이고 졸이면서 파괴될 영양소의 손실 없는 생명력 가득한 Jam과 생과일 음료 재만들어졌다.

 

    주말! 서울에서 온 아이들에게 만들어둔 생과를 한 국자 퍼담고 생수를 부어주니 환호성이 터진다.



    내친김에 햇가지 수확하여 가지 탕수를 준비했다. 차별화의 관건은 보라와 자주 색감 소스! 본래 신맛을 함유하고 있는 터라 포크로 누른 뒤 살짝 끓이거나 으깨어 가지 튀김 위에 끼얹거나 적셔먹으면 된다. 얼음 넣은 반죽에 묻혀 두 번 튀겨낸 바삭한 가지 탕수와 특제소스는 딸들과의 재회를 환희에 넘치는 시간으로 만들어주고 다.



    남편 복분자 활용의 끝은 와인이며, 나는 천연식초에 관심이 많다. 9월이 되면 도움 될만한 강좌를 찾아 공부를 이어갈 계획이다. 지금 정원에는 화려한 꽃 양귀비가 점점 사그라들고 있다. 반면 밭에서는 허브가 쑥쑥 자라고 있다. 코리안더(고수)는 오래전부터 꽃이 만개했고, 카모마일은 며칠 전부터 꽃을 피우고 있다. 라벤더도 몸집을 키워가는 걸 보니 보랏빛 향기가 퍼질 것이다. 라임과 하는 그런대로 자라고 있지만 서너 종류의 허브는 싹조차 틔우지 못했다.



    전원생활은 주인의 부지런함에 비례하여 다듬어지고 변화한다. 정원과 밭일과 땅은 세밀한 관리를 요구하지만 조바심을 내면 탈이 난다. 이곳에서 '속전속결'은 미덕도 지혜도 아니다. 자연의 절기를 따라가며, 마음은 느긋하게, 몸은 부지런하게, 결과엔 초연하며, 어떤 변수에 당황하지 않고 싶다.


    채식주의자인 G.E은 모든 베리를 다 좋아한다. 가지 탕수 소스였던 남게 된 복분자는 요플레와 섞어 얼리기만 하면 천연 아이스크림이 된다.


    올 유월엔 아름다운 보라색 엉겅퀴 꽃에서 색과 맛과 효능을 추출하고 싶었다. 꿀벌들이 왱왱대는 한 그루의 엉겅퀴에서만 딴 꽃이 대야에 가득하다. 수분이 거의 없어 올리고당을 첨가한 후에도 날마다 통 굴려주기를 하고 있다. 큰 아이는 무농약으로 울퉁불퉁, 구불구불하게 자란 채소로 가족의 이름과, 뽀얀 피부의 동생 별명((찹쌀떡)까지를 만들었다. 조금 전 아이 둘은 문경의 옥색 푸르름을 뒤로한 채 서울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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