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경희 Jun 07. 2016

누리는 삶 [가진 것과 누리는 것은 별개]

무엇을 가지고 어디에 살던  마음을 다하여 누리며 살기


    금요일 저녁부터 시작된 나흘간의 연휴-도시적인 생각일 뿐 나의 산촌생활과는 사뭇 다르다. 나는 손님들과 아이들이 번갈아 오기에 집안일만 하기로 했다. 날마다 세밀하게 살피며 물을 주던 정원 일은 잠시 쉬기로 했다. 집 밖은 정말이지 풀마저 바싹 타버리는 불볕의 나날들이다. 숨 가빠하는 꽃과 채소들을 보니 마음이 조급해진다. 집안일에 쫓기면서 한숨만 내리쉬는 나를 보고 기가 막힌 지 아이와 남편은 온 저녁나절을 주기로 보냈다.



    시장과 큰 마트가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산골로 온 내가 손님을 치르는 방식은 사는 곳 인근의 색다른 맛집 탐방이었다. 그러나 이것도 일 년쯤 하고 나니 지겨워졌다. 해서 얼마 전부터 제철에 피어나는 꽃이나 채소, 인근 산에서 자라는 재료들로 그날의 흥에 어울리는 콘셉트를 정해 방문객과 시간을 보낸다.


    연휴 콘셉트는 정원의 꽃과 허브를 얼린 얼음이다. 쑥쑥 자란 페퍼민트와 이른 봄에 파종한 탓에 벌써 꽃대가 올라와 버린 연보라 무꽃, 울타리에서 피어나는 장미 봉오리, 때를 잊고 피어난 유채꽃을 시간 나는 대로 따서 얼려놓았다.    



    잎을 보지 않았다면 연보라 무꽃은 수국이라 착각했을 것이다. 장미와 제라늄 꽃은 얼음 속에서 선명한 예쁨을 드러낸다. 오디 가지와 뽕잎으로 만든 녹차,  히비스커스와 오미자 청으로 만든 음료에 초록 보라 빨강 꽃잎의 얼음을 넣으니 조합이 훌륭하다. 


    힘들게 구했던 첫 직장에서 온갖 어려움을 겪다 퇴사하고 지금은 두 번째 일터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아이가 친구 셋과 금요일 밤 우리 집으로 왔다. 연휴의 시작은 고속버스 연착이었다. 서울엔 벌써 에어컨과 선풍기가 등장했다지만 산골 집엔 8월 며칠간만 선풍기를 꺼내면 된다.


    빵은 시내에 갈 때 한꺼번에 사다 얼려 놓으면 잠깐의 해동으로 차려내놓을 수가 있다. 손님이 왔다고 비싸고 구하기 힘든 재료로 음식을 준비하려면 상 차리기와 만남 자체가 즐겁지 않다. 빵에 오미자 청과 꽃 얼음 음료, 치즈를 듬뿍 넣은 달걀말이 만으로도 아침 식탁은 풍성하다.



    안개꽃+괭이풀 잎 얼음(첫 번째)과 땅콩 꽃 얼음(두 번째)은 어떤 음료와 잘 어울릴까? 페퍼민트 얼음엔 오미자청, 생수에는 장미 얼음의 조합이 어울렸다. 생화 얼음이 가미된 시원한 음료는 눈을 기쁘게 하고 마음  트이게 한다.



    아이들은 초보 정원사가 가꾼 곳곳에 환호를 지르며 몰려다녔다. 그러다 활공랜드로 가서 패어글라이딩도 하고 '인생 풍경'이라 불릴만한 고모산성 정상에 올라 바위로 쌓아 내린 활처럼 휘어진 암석 길 정상에 앉아 잠시 생각하는 시간도 가졌다.


    또 다가온 한 끼의 식사 시간! '아무거나'는 있지도 않는 메뉴이니 원하는 걸 말하라며 나는 그들에게 두 개의 선택지를 내밀었다. '솔잎 삼겹살 찜'에 마음이 모였다. 아파트에서도 고기를 구워 먹기엔 문제가 많지만 목조주택에선 상태가 더 심각할 수 있다. 원목과 벽지가 냄새와 기름기를 흡수하여 벽지의 빠른 변색과 기름이 내려앉을 끈적임이 청소문제로 남게 될 터! 해서 처음으로 시도해보는 이것-솔잎 돼지고기찜! 을 하기로 했다.


    깊은 프라이팬에 솔잎을 깔고 그 위에 고기를 놓은 뒤 후추를 뿌리고 다시 솔잎으로 덮고 생수를 조금 부어 뚜껑을 덮으니 10분도 되기 전에 고기는 익었고 팬 바깥으로는 고기 냄새와 기름기가 나오지 않았다. 솔잎 향으로 녹여진 기름과 물은 버리고 고기만 따로 노릇하게 다시 구우면 끝....



    사과 나뭇잎 위에 뜨거운 고기를 놓으니 두 번째 향이 베어 든다. 꽃 중에 샤스타데이지 꽃을 특별히 좋아하는 숙녀가 있어 접시에 올리니 '환대의 마음'이 김과 함께 모락모락 전해지는 듯했다. 저염 새우장에 곰삭은 갓김치가 있으면 음식궁합으로 이보다 좋을 순 없다.



    꿩 대신 닭이라고 울금과 생강을 심어둔 서 대신 자라 잡초로 분류될 냉이는 꽃과 함께 연한 잎을 삶아 간장에 무쳤다. 깍두기는 소금아닌 식초에 이니 아삭아삭 하다.



    집 앞 계곡에 수박 한 덩이를 묶어두었다. 에서 흘러내리는 물이라 뜨거운 날씨에도 아린 차가움이 느껴진다. 수박을 담가 둔 곳에선 물고기와 다슬기들이 평화롭게 살고 있다.



    부산 남포동에서 먹을 수 있는 당면 무침도 메뉴 중 하나였다. 채를 썬 부산어묵과 당근은 끓인 물을 살짝 끼얹으면 된다. 나물과 단무지를 채 썰어 올리고 양념장을 듬뿍 넣어 비비면 또 하나의 '음식 경험'이 된다. 텃밭의 자색 깻잎과 케일을 데쳐 쌈밥을 만들어 기도 했다. 


    함께하는 내내 몇 번의 커피, 생강나무 꽃 차홈메이드 음료 등을 번갈아 마시며 걷고 웃고 이야기 나누고 사진 찍고 집 앞 담배 농장에 가득 피어난 분홍색 담배꽃으로 식탁을 꾸미며 놀았다. 이제 각자의 형편에 따라 1박 2일 2박 3일 3박 4일을 보내고 다들 떠났다. 나는 젊은 그들과 나누고 싶었던 게 있었다. 


    '누리는 삶'에 대한 각자의 생각을 자유롭게 구현하며 살기!


         담배꽃과 사과차. 만개한 꽃양귀비.

이전 09화 슬로우라이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