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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희 May 24. 2016

정원사와 꽃양귀비

어떤 경우에도 즐거움 만끽하며 살아가기!


    4월엔 이웃들과 자식들의 방문까지 사절하고 정원일에 몰입했다. 하지만 전체 일을 반도 못 끝낸 채 오월을 맞았다. 오월에 들어서는 연일 감기 몸살을 앓으며 일어날 수도 없고, 먹지도 못한 채 오한을 느끼며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워있어야만 했다. 세상에서 힘든 일과 쉬워 보이는 일의 구분은 바로 내가 하느냐와 남이 하는 것이냐의 차이임을 절감한다.



    지난해 늦가을 파종 후 꽃을 피우던 양귀비는 나날이 세를 넓혀가고 있다. 다부지게 일하기는 고사하고 겨울 내의와 외투를 껴입고 여기저기에 기대어 천천히 발 길을 옮기다 현기증이 일면 그늘에 앉아 호흡을 고르기 일쑤인 나날들!


    꽃들은 지친 정원사의 노력에 보답이라도 하듯 몇 배 더 분발하고 있다. 아픈 와중에도 꽃들을 보며 웃음 짓는  마음이 저들에게 전해지는 것인지.



    하늘거리는 꽃 잎과 선명한 색에 반해 심었던 양귀비! 새싹에서 개화하기까지의 전 과정을 지켜보면서 나는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꽃봉오리일 때는 호전적으로 생겼고, 만져보면 그 느낌이 거칠었다. 고개 숙인 봉오리가 섬뜩한 뱀 눈처럼 노려본다고 느껴져 놀라서 물러설 즈음, 봉오리는 곧 투구를 벗어던지고 꽃잎을 일시에 펼친다. 동양 최고의 미인 이름이 양귀비인 이유를 단번에 알 수 있을 자태로 하늘 아래 존재감을 펄럭일 때면 매혹 그 자체가 된다.



    한 송이에 한 송이를 더하며 피어나던 꽃 색깔은 참으로 다양하다. 흰색, 분홍, 살구색, 다홍색, 흑장미색, 흰색에 분홍 테두리, 분홍에 흰 테두리, 진분홍, 빨강 등. 떨어진 꽃잎을 주워 바위 위에 올려놓으면 날갯짓하며 날아오르는 나비가 된다.



    그동안 피고 진 수많은 봄날의 꽃들! 내가 나의 을 하는 동안 그들도 자신들의 일을 끊임없이 해냈다. 2016년 정원의 오월은 꽃양귀비로 수놓아졌다. 유월 중순엔 모든 화려함이 소리 없이 사그라들 것이고 봄에 파종한 다른 모종들이 자라서 그 자리를 대신할 것이다. 나는 곧 완쾌하여 뜨거운 태양 속에서 다시 풀을 뽑고, 물을 주고, 그늘 아래에서 쉬어가기를 반복할 것인데 잊지 않는 한 가지가 있다.


어떤 경우에도 기쁨과 좋은 느낌
만끽하며 살아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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