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경희 Aug 31. 2019

감상하다, 요리하기!

아름다운 식재료: 동글이 가지


    부부가 팔고 있는 싱가포르 벼룩시장의 씨앗 코너에 나는 멈춰 섰다. 좁고 작은 가판대들은 옆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스탠드형으로 쌓아 올려져 있다. 누구나 둘러보기 쉽고 사방으로 비집고 들어갈 수 있도록 통로를 만들어 두었다. 대한민국 서울만 한 나라의 좁은 땅에서 살면 익힌 삶의 지혜인 듯하다.


    "이곳은 내가 다 차지할 거야."를 외치듯 물건들을 펼쳐서 영역 표시를 하는 동네 농자재 가게와, 집 근처의 5일 장과는 풍경이 좀 다르다. 내가 가끔씩 가는 장에는 쌓아놓으면 보기도 좋고 행인들에게도 편리할 공간을 소쿠리 하나씩을 늘어놓아 족히 수십 평을 선점하는 장사꾼이 있다. 그의 속내가 읽혀 그 물건들에 고개를 돌리고 만다. 



    방금 글을 쓰다 새로운 발견으로 놀랐. 씨앗 봉투 때문이다. 우스운 비유이긴 하지만 화투짝 크기와 비슷하며 종이로 되어있다. 그날 노부부의 Singlish(싱가포르 사람들이 쓰는 영어)를 이해한 바로는 그분들이 직접 키운 채소에서 씨앗을 채종한 거라 했다. 봉투 뒷면에는 씨앗에 관한 최소한의 중요 정보만 담겨있다. 실물보다 크고 화려하게 식물과 꽃 사진이 프린트된  플라스틱 봉투에서 가끔은 탈탈 털지 않으면 씨앗은 보이지도 않는 '겉 화려 속 빈'것이 아니었다. 나는 적은 돈으로 흰색과 보라 동글이 가지 씨앗을 구입했다. 



    봄이 오자마자 나는 여러 가지 씨앗을 심었다. 뒷마당을 빠르게 돌아다니는 다람쥐들과 정체 모를 밤손님들이 난리를 치는 바람에 땅콩과 sweet pea 씨앗은 날마다 파헤쳐 지고 사라졌다. 다행히 가지 씨앗은 작은 데다 맛이 없었던지 들의 쪼아 댐에도 무사했다. 


    흰색과 보라색의 길쭉한 가지, 그리고 동글이 가지로 나만의 요리를 만들어보겠다던 상상은 곧 '김칫국부터 마신 꼴' 이 되었다. 흰색 가지는 싹이 트지 않았고 납작하고 소심하게 고개를 내민 동글이 가지 싹은 아예 자라지를 않았다. 하지만 꽃과 식물에 관해선 속단은 금물! "잘 될 놈은 떡잎부터 안다."라는 말은 인간의 소견일 뿐 자연의 실상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토양과 일조량과 강수량이 잘 맞으면 형편없는 구근도 실하게 잘 자라고, 시원찮았던 떡잎도 감탄할 정도의 수확물을 내곤 한다. 거기다 식물 개개의 특성을 알고 필요한 부분을 더하거나 빼주는 것만으로 그야말로 대풍을 거둘 수가 있다.



    전원생활을 시작하기 전, 무언가를 길러본 험이 전무후무했던 J와 나는 이제 200종 이상의 꽃과 계절에 맞는 식물을 길러내고  번식시키는 농부와 정원사로서의 경험을 쌓아가고 있다. 장날 구입한 다섯 그루 가지에선  수시로 20~30개 정도를 수확한다. 그 옆에 소심하고 납작하게 자리 잡은 동글이 가지는 변화 없는 한 달을 더 보냈다.



    어느 날  잎들을 잘라 준 가지가 쑥쑥 크더니 동글동글한 가지를 달고 자랐다. 꽃과 식물에게 여름의 축복은 쨍한 가뭄과 무더위, 우기의 번갈아감에 있다. 식품 건조기를 이용하니 가지를 많이 수확한 날도 색감이 살아있고! 곰팡이 걱정 없이 말릴 수 있다. 

"왜 버섯은 햇볕에 말려야 영양이 배가 된다면서 고추와 가지는 그런 말이 없을까?"



    동글이 가지는 크고 식감이 부드러워 샐러드나 생체로도 쓴다. 올해는 감자와 양파가 얼마나 풍년인지? 가지구이에 새로운 재료 한두 가지를 더하고 빼면서, 일주일에 대여섯 번 '감자 가지 치즈 구이'를 한 달 이상 먹고 있다. 무른 가지 식감을 좋아하지 않는 내가 요즘 가지를 즐기는 법은 바로 이것.



    [감자 가지구이 법]

1. 가지는 기름 없는 프라이팬에 시간이  마다 구워 놓는다. 이때는 구수하고 그윽한 향가득하다. 필요한 만큼 쓰고 냉장고에 넣어두면 다음번 요리 시간을 줄 수 있다.

2. 껍질 벗긴 감자를 믹서기에 10초 정도 간다. 올리브오일 뜨거워진 팬부어 굽는다

3. 한번 뒤집은 감자전에 구운 가지와 토마토(수확이 많을 때 졸여서 냉동고에 얼려두고 마늘 큐브처럼 쓴다.), 양파와 치즈 때론 오징어를 올려 뚜껑을 덮어두면 질리지 않는 맛난 감자 가지 치즈 구이가 된다.


    나의 생활은 많은 것을 스스로 재배하 주하다. 해서! 무엇이든 수확하면 바로바로 손질해서 저장한다. 이렇게 준비해두면 요리 시간이 단축되어 효율적이다. 허브들은 부엌 옆 화분을 두고 잘라서 쓴다.



    7월부터 9월까지 맛난 제철 가지의 효능은 그냥 넘어갈 수 없다. 잠시 가지 속을 상상해보길 바란다. 뱃살이나 변비로 무거워진 몸을 가볍게 하며, 장 내부의 기름기를 섬유소가 말끔하게 하여 암 발병률을 20~30% 낮춰주고, 시력저하나 망막질환 예방에 도움을 주며, 피부 노화 늦추기에 도움이 된다. 구운 가지를 찐 가지보다 좋아하지만 무침과 냉국도 만들어 먹으면서 여름을 잘 보낸 듯하다.



이전 12화 Echinacea Purpurea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