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케아회의시대
교회의 평화, 그리고 새로운 전쟁의 시작
주께서 콘스탄티누스를 통해 내리신 밀라노 칙령으로 삼백 년에 걸친 박해의 시대가 끝나니, 교회에 큰 평화가 임하였다. 성도들은 더 이상 지하 무덤에 숨지 않고 햇빛 아래서 자유로이 예배하였고, 제국의 곳곳에 주의 집이 세워지며 찬송 소리가 울려 퍼지게 되었다. 황제는 교회의 감독들을 궁정으로 초대하고, 파괴된 교회들을 재건하는 데 재물을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실로 주께서 당신의 교회를 긍휼히 여기신 증거이다. 그러나 교회가 세상의 핍박에서 벗어나자, 안으로부터 더 교묘하고 위험한 싸움이 시작되었으니, 이는 그리스도의 본질에 관한 진리를 무너뜨리려는 이단과의 영적 전쟁이었다.
아들과 아버지, 니케아에서의 외침
이때에 알렉산드리아의 장로 아리우스가 일어나 가르치기를, “성자 예수는 성부 하나님과 동일한 본질이 아니요, 시간을 초월하여 가장 먼저 지음 받은 피조물이라” 하니, 이 가르침이 온 교회를 큰 혼란에 빠뜨렸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정하여 구원의 근간을 흔드는 심각한 오류였다.
그러자 주께서는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마음을 움직이사, 주후 삼백이십오 년에 니케아에서 온 교회의 감독들을 모아 첫 번째 공의회를 열게 하셨다. 삼백 명이 넘는 감독들이 모여 아리우스의 가르침을 논박하였는데, 그 가운데 알렉산드리아의 젊은 부제 아타나시우스가 일어나 성경을 근거로 “아들은 아버지와 한 본질이시며, 창조되지 않으신 참 하나님이시다”라고 담대히 증언하였다. 성령께서 그의 입에 지혜를 주시니, 공의회는 아리우스를 이단으로 정죄하고 모든 교회가 고백할 니케아 신경을 작성하여 선포하였다. 이로써 교회는 아들에 관한 바른 신앙의 기초를 굳건히 세우게 되었다.
성령의 신성과 삼위일체 교리의 완성
니케아 공의회 이후에도 아리우스의 추종자들은 여전히 교회를 어지럽혔고, 이제는 성령의 신성을 부정하는 자들까지 나타났다. 이에 주께서는 갑바도기아 땅에 위대한 교사들을 세우셨으니, 가이사랴의 바실리우스와 니사의 그레고리우스, 그리고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우스였다. 이들은 성령의 인도하심 아래 ‘한 본질, 세 위격’이라는 신비로운 언어로 삼위일체 교리를 정립하였다.
마침내 주후 삼백팔십일 년, 콘스탄티노플에서 두 번째 공의회가 열려 니케아의 신앙을 재확인하고, “성령은 성부와 성자로부터 나오시며, 성부와 성자와 더불어 동일한 경배와 영광을 받으시는 주님이시요 생명을 주시는 분”임을 신경에 명시하였다. 이로써 교회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온전한 신앙고백을 갖추게 되었다.
세상을 등진 자들과 하나님의 도성
교회가 제국의 비호를 받으며 점점 세속화되자, 성령께서는 광야에서 새로운 부흥의 불길을 일으키셨다. 이집트의 안토니우스를 시작으로 수많은 사람이 세상의 부귀영화를 버리고 사막으로 들어가 오직 기도와 말씀으로 하나님과 교제하는 삶을 택하니, 이들이 바로 수도사였다. 파코미우스는 수도사들을 모아 공동체를 이루게 하였고, 서방에서는 베네딕투스가 ‘기도하고 일하라’는 규칙을 세워 수도원 운동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이들은 교회의 영적 심장이 되어 타락의 시대에 거룩함의 불씨를 지켰다.
주후 사백십 년, 서고트족이 로마를 침략하여 약탈하니, 영원할 것 같던 제국의 심장이 무너지매 세상 사람들은 큰 충격에 빠졌다. 그때 히포의 감독 아우구스티누스가 일어나 『하나님의 도성』이라는 위대한 책을 썼다. 그는 방탕한 젊은 시절을 보내다 어머니 모니카의 기도와 암브로시우스 감독의 설교를 통해 회심한 자였다. 그는 “세상의 나라는 흥하고 망하지만, 오직 하나님의 백성으로 이루어진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도성’만이 영원하다”고 선포하여 절망에 빠진 성도들을 위로하였다. 또한 그는 인간의 전적인 타락과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은혜를 강조하여, 인간의 자유의지로 구원을 이룰 수 있다고 가르친 펠라기우스의 이단을 논박하였다.
한 인격, 두 본성: 그리스도에 대한 논쟁
이제 교회의 논쟁은 그리스도의 신비로운 인격으로 옮겨갔다. 콘스탄티노플의 감독 네스토리우스는 마리아를 ‘하나님을 낳은 자’라 부르는 것을 반대하며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이 분리되어 있음을 암시하였다. 반대로 유티케스라는 자는 그리스도의 인성이 신성에 흡수되어 하나의 본성만 남았다고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교회는 주후 사백삼십일 년에 에베소에서, 그리고 사백오십일 년에 칼케돈에서 다시 공의회를 열었다. 칼케돈 공의회는 로마의 감독 레오의 신학적 가르침을 받아들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참 하나님이시요 참 사람이시며, 신성과 인성의 두 본성이 혼합되거나 변화되거나 분리되거나 나뉘지 않고 한 인격 안에서 연합되어 계시다”는 위대한 신앙고백을 확립하였다. 이는 그리스도의 누구심에 대한 가장 균형 잡힌 정통 신앙의 선포였다.
땅의 제국은 저물고
로마 제국은 계속 쇠락하여 마침내 서로마 황제가 폐위되고, 동방의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옛 영광을 되찾으려 애썼으나 잠시뿐이었다. 야만족의 침입과 역병, 기근으로 서방 세계는 깊은 혼돈에 빠져들었다.
이 암흑의 시대에 주께서는 다시 한 사람을 준비시키셨다. 주후 오백구십 년, 로마 시민들과 교회가 한마음으로 수도사였던 그레고리우스를 로마의 감독으로 추대하였다. 그는 무너진 도시의 행정을 책임지고, 굶주린 이들을 먹이며, 이민족에게 복음을 전할 선교사들을 파견하였다. 그는 고대 교회의 마지막 교부이자, 다가올 중세 교회의 첫 번째 문을 연 목자였다. 이로써 땅의 제국은 저물었으나, 하나님의 나라는 당신의 사람들을 통해 새로운 시대의 여명을 준비하고 있었으니, 이 모든 것이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크신 경륜 속에서 이루어진 일이다.
참고 문헌
유세비우스(Eusebius), 『콘스탄티누스의 생애』(Life of Constantine)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회심과 그의 주재로 열린 니케아 공의회의 전개 과정을 황제의 관점에서 기록한 중요한 사료입니다.
아타나시우스(Athanasius), 『말씀의 성육신에 관하여』(On the Incarnation), 『아리우스 논박』(Against the Arians) 아리우스의 주장에 맞서 그리스도의 완전한 신성을 변호한 니케아 정통 신앙의 핵심 저술입니다. 본문의 신학 논쟁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1차 사료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e), 『고백록』(Confessions), 『하나님의 도성』(City of God
『고백록』은 그의 극적인 회심 과정을, 『하나님의 도성』은 로마 멸망의 충격 속에서 기독교 역사관을 정립한 불후의 명작으로, 본문에 언급된 그의 생애와 사상의 핵심 자료입니다.
『칼케돈 공의회 회의록』(Acts of the Council of Chalcedon) 및 『레오의 서신』(Tome of Leo)
네스토리우스주의와 유티케스주의에 맞서 그리스도의 '두 본성, 한 인격'을 확립한 칼케돈 공의회의 논의 과정과 그 신학적 기초가 된 로마 감독 레오의 서신이 담긴 기록입니다.
베네딕투스(Benedict of Nursia), 『베네딕트 규칙서』(The Rule of Saint Benedict) 서방 수도원 운동의 기틀을 마련한 규칙서로, '기도하고 일하라'는 정신을 통해 당시 수도사들의 삶과 영성을 엿볼 수 있는 핵심 문헌입니다.
유스토 L. 곤잘레스(Justo L. González), 『초대교회사』(The Story of Christianity, Vol. 1) 니케아부터 그레고리우스 대교황에 이르는 시기의 복잡한 신학 논쟁, 공의회의 역사, 수도원 운동의 발흥, 그리고 서로마 제국 멸망기의 교회 상황을 명료하게 정리한 현대의 표준적인 교회사 저술입니다.
J. N. D. 켈리(J. N. D. Kelly), 『고대 기독교 교리사』(Early Christian Doctrines) 삼위일체와 기독론 등 본문에 기술된 핵심 교리들이 어떠한 신학적 논쟁을 거쳐 정립되었는지를 심도 있게 분석한 전문 연구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