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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춤추는바람 Apr 24. 2024

처음

처음의 말들




내일은 딸아이와 수영장에 가기로 했다. 아이는 작년부터 토요일마다 수영 강습을 받았다. 아이가 강습을 받으러 들어가면 수영장 밖에서 기다리며 모니터로 점처럼 움직이는 아이를 보았다. 이번 달엔 이러저러한 일에 정신이 팔려 재등록을 놓쳤다. 다시 자리가 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데 그 사이 아이가 조금 익힌 수영을 잊어버리지 않을까 싶어 같이 수영 연습을 하기로 했다. 아이가 다니는 수영장은 강습 위주로 운영되고 하루에 한 시간만 자유 수영이 가능하다. 토요일인 내일, 딸아이와 같이 자유 수영을 하러 간다. 그동안 수영장 밖에서 모니터로만 슬쩍 보던 아이의 수영을 직접 보게 될 것이다.


"서윤이 수영하는 거 처음 보겠네!"

내 말에 아이가 답했다.

"나도, 엄마 수영하는 건 처음 보는 거야!"


일이 년에 한 번 호텔 수영장에라도 가면 설렁설렁 헤엄을 쳤는데 아이 눈에 그런 건 수영이 아니었던 걸까. 강습을 받으며 자유형을 연습한 아이는 레일 수영장에서 하는 자유형이 진짜 수영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그러므로 내일은 네모난 수영장에서 서로 물을 튀기며 아이가 생각하는 '수영'이라는 걸 함께 하는 첫날이다. '처음'이라는 말로 새삼스레 설렐 날이다.


아이가 네댓 살 적 처음으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텔레비전을 보면서 했던 말이 떠오른다.  

"나는 아이스크림 먹으면서 텔레비전 보는 게 처음이잖아!"

그 흔하고 뻔한 일이 처음이라는 이유만으로 아이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너무 신이 나서 놀라며 감탄했다. 그러고 보니 '처음'이라는 이유만으로 떨리고 두근거릴 순간이 아이 앞에는 아직 너무도 많이 남아 있다. 아이가 부쩍 자랐다고 느끼는 요즘 나는 아이의 '처음'을 알아채는데 시들했던 것 같고.


아이가 처음 내뱉은 단어를 기억한다. "규울~ 규울~ 뀨울!" 귤을 좋아하는 아이가 귤을 먹으며 귤처럼 터뜨린 말. 음마, 빠빠, 맘마 같은 의성어 말고 온전한 단어로서 아이의 입에서 처음 탄생한 소리였다. 그때를 회상하면 지금도 코 끝에서 새콤한 귤향이 스치는 것만 같고. 아이는 자신이 우연처럼 내뱉은 소리에 감탄하는 어른들의 모습에 의기양양해졌는지 하루 종일 "규울!"이라는 단어를 외쳤다. 귤의 세계, 귤이라는 언어가 존재를 대신하는 세계, 존재가 언어로 탄생하는 세계로 당당하게 입장한 날이었다.


첫 단어를 시작으로 아이는 봇물 터지듯 단어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아이의 입에서 새롭게 발화하는 단어들은 마치 세상에 새롭게 탄생하는 말들처럼 청량했는데. 한동안은 그런 단어를, 조금 더 지나서는 단어들을, 그러다 문장들을 수집하고 기록했다.


언제까지 그걸 적었더라. 일상적인 대화가 가능해지면서 아이의 말을 기억해 두거나 글로 적는 일이 줄었다. 학교에 가고 친구랑 노는 시간이 현저히 늘어나면서 아이와의 에피소드를 쓰는 일도 줄었다. 아이가 내 품에서 벗어나 자기만의 세계를 쌓아가는 만큼 나의 관심도 서서히 아이에게서 물러나고 있다. 이런 날이 오기를 애타게 기다리기도 했는데. 막상 날마다 저녁까지 밖에서 노느라 나보다 바쁜 아이를 보니 다행이면서도 아깝고 서글픈 기분이 든다. 품에서 성실히 자란 아이가 충실히 품에서 멀어질 연습을 하는 것 같다.


그러니 내 마음에게 이런 조언을 건네본다.

'너의 딸이 어떤 일을 처음 하는 순간은 네게도 온통 처음인 거잖아. 그 사실을 잊지 마~ 아이가 맞는 모든 처음이 네게도 처음이라는 걸. 여전히 무수히 많은 처음이 우리에게 남아 있어. 그러니까 아이처럼, 아이의 반만큼이라도 '처음'을 생생하게 겪으면 좋겠어. 그런 순간들의 설렘과 기다림에는 영원히 닳지 않았으면 좋겠어.'

 

아이가 자신의 인생에서 '처음'으로 무언가를 맞이하고 감탄하는 일, 그걸 곁에서 내 것처럼 체험하는 시간도 그리 길지 않을 것이다. 아직 길들지 않은 푸릇한 시선으로만 번역해 낼 수 있는 말들을 만나는 순간이. 아침 이슬처럼 맺히고 첫눈처럼 다가오는, 나비처럼 팔랑이는 아이의 말과 낌새를 놓치지 않고 내 안에 간직하고 싶다. 지난 주말 전철에서 불편하게 몸을 웅크리고 잠을 자다 깨어 네가 했던 그런 말 같은 걸.

 

"엄마, 발에서 쥐들이 쏟아져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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