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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춤추는바람 May 29. 2024

상관없지 않나

각자의 삶에서 요리사가 되자




학기 초 아이의 장래 희망을 묻는 가정통신문을 받았다. 만들기를 좋아하는 아이가 작년엔 '디자이너'라고 적어 냈다. 해가 바뀌어 다시 장래 희망을 물으니 '요리사'가 되고 싶다고 했다. 작년에 받은 통신문에는 꿈을 적는 칸이 하나 밖에 없어 아이가 원하는 직업을 바로 적어 냈는데 올해는 양식이 바뀌었다. 아이의 희망과 부모의 희망을 따로 적도록 칸이 나뉘었다. 부모도 고민해 보라는 의도일까. 의도에 충실하느라 나도 모르게 고민이 깊어졌다.  



베이킹을 일로 하다 지쳐버렸던 나는 요리를 일로 삼으면 몸이 고되다는 게 가장 먼저 떠올랐다. 아이가 요리사가 되겠다는 게 반갑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아이가 좋아하는 걸 반대하고 싶지는 않아 망설이다 다시 물었다. “누구나 음식을 만들어 먹으니까 모두가 요리사가 될 수 있어, 그거 말고. 또 다른 건 없어?” 그래도 아이는 요리사가 좋다고 했다.  



선뜻 ‘요리사’라고 적을 수 없었다. 고작 2학년인 꼬맹이의 장래 희망을 적는데 이토록 진지해지고 마는 내가 우습고 한심했지만. 종이 위에 또박 또박 쓰고 나면 아이가 진짜로 요리사가 되어버릴 것 같았다. 나도 별 수 없는 부모구나. 아이가 힘든 일을 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앞서고 마는. 그런데 말이다, 세상에 힘들지 않은 일이 있을까. 힘들지 않으면서 성장하고 배움과 기쁨까지 얻을 수 있는 일이 과연 존재할 수 있을까. 어떤 일이든 고통스러운 과정까지 겪어내야 일정 수준에 도달할 수 있다. 그런 고통과 아픔까지 소화하고 난 뒤에야 나의 것, 나의 일이라 말할 수 있는 무언가를 얻을 수 있다.   



며칠 전 작은 프렌치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했다. 한적한 주택가 작은 공간에 '상관없지 않나'라는 간판이 특이해 눈여겨보았던 곳. 테이블이 세 개 밖에 없는 소규모의 공간에서 젊은 여성 한 분이 요리와 서빙을 도맡아 한다. 그분이 이 가게의 오너 셰프구나 짐작했다. 주인은 락과 헤비메탈을 좋아하는지 가게 한편에는 드럼 세트가 놓였고 벽에는 가죽점퍼가 전시품처럼 곱게 걸렸다. 손수 그렸을 경쾌한 그라피티로 꾸며진 내부 인테리어도 범상치 않았다.  



프렌치 메뉴에 더해진 '락'의 자유분방함이라니. 주인의 개성이 한껏 묻어나 작지만 독특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팝과 락의 경계를 오가는 음악이 흘러 식사 내내 즐거웠고 음식은 두 말할 필요없게 훌륭했다. 직접 인테리어 한 공간에서 홀로 모든 걸 해내고 있는 오너 셰프가 멋있었다.  



"너무 맛있었어요!"


식사를 마치고 건넨 말에 셰프는 수줍게 웃었다. 아담한 체구에 가녀린 목소리, 조용한 성품을 지녔을 것 같은데 그의 어디에서 이런 강단이 나왔을까. 감탄하면서 부디 가게가 오래도록 잘 되었으면 좋겠다고 응원하는 마음을 보냈다. 요리로 사람들에게 기쁨을 선사하면서 자신에게는 좋아하는 음악을 계속하는 자유를 쥐어 주기를. 요리라는 일로 삶을 먹여 살려 음악으로 노는 일을 지속해 가길. 그렇게 일과 취미가 서로를 도와 그의 삶을 풍요롭게 해주길 바랐다. 자신만의 멋과 색으로 인생을 채색해 가는 한 사람을 보는 일은 뜻밖의 선물처럼 반갑다. 세상에 없던 길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가정통신문에 장래 희망을 적던 날이 떠올랐다. 요리사가 되고 싶다는 아이 말에 적극적으로 호응해주지 못했던 일이 생각나 가게를 나서며 아이에게 말을 건넸다.


"요리사 멋진 것 같아! 저 언니처럼 말이야!"



그때는 '요리사'라는 단어에서 직업으로서의 고충만 보였는데 그랬던 나의 시선이 단편적이고 얄팍했다. 삶에서 일이 전부가 아니듯 내가 겪은 어려움이 어떤 일의 모두를 보여주는 것도 아닌데. 세상의 많은 요리사들이 기쁘고 충만하게 자신의 일을 해내고 있고 그 일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준다는 걸 새삼스럽게 상기했다. 어려운 일일지라도 자신에게 걸맞는 규모와 형식을 찾아가면서 일과 취향, 놀이를 오가는 조화로운 삶을 발굴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양한 시도로 개성있게 삶을 일구는 사람들을 만날수록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태도에 유연이 더해진다.



"요리는 예술작품을 만들어내는 동시에 사랑을 줄 수 있는 한가지 방법이야."

비비언 고닉, <아무도 지켜보지 않지만 모두가 공연을 한다>, 서제인 옮김, 바다출판사



'상관없지 않나'의 오너 셰프는 요리에서 뿐만 아니라 삶에서도 진정한 요리사였다. 동시에 가게라는 자기만의 창작품을 빚어내는 예술가이기도 하고. 힘든 일도 많겠지만 나만의 공간을 꾸리며 삶을 창조해 가는 건 분명 가슴 뻐근한 일일 테다. 그런 삶에서 마주할 수 있는 반짝이는 경험이 레스토랑에서 움트고 있을 것이다. 아이에게 했던 말처럼 우리 모두는 어떤 방식으로든 음식을 만든다. 삶에서 먹는 일은 결코 제외될 수 없으니까. 그렇다면 우리 모두가 각자의 삶에서 요리사일 수 있겠지. 한 발 더 나아가 자기만의 재료와 레시피로 삶을 요리하는 예술가가 될 수도 있겠지.



맛있는 음식으로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즐겁게 해 주면서 자기만의 가게를 인테리어하듯, 그런 식으로 삶을 보살피면 어떨까. 좋아하는 음악을 골라 생활에 흐르게 하고 취향이나 추억이 깃든 물건으로 머무는 공간을 가꾸면서 말이다. 때로는 나만의 요리로 누군가를 위한 식탁을 차리기도 하면서. 이런 생각을 하다보니 자신의 삶에서 진정한 요리사인 사람들이 많아지면 좋겠구나 싶다. 신선한 재료로 멋진 요리를 만들어내는 셰프처럼 자기만의 재능과 취향, 관심과 좋아하는 것들을 재료삼아 창의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그럴수록 세상엔 맛있고 즐거운 향이 다채롭게 짙어질 것이다.   



아이가 요리사가 되어도 괜찮겠다. 자신의 마음을 소중히 여기고 그걸 잘 키우는데 온전히 삶을 사용한다면, 어떤 일을 하고 무슨 방식으로 살아가든, 그런 건 상관없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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