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어를 잘하고 싶은 욕망은 어디서 오는가.
(이제 곧 2020년이 시작 될) 2019년의 끝자락에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는 나는, 초등학교 6학년이 되어서야 처음 영어를 배웠다. 이렇게 말하고 나니 굉장히 '옛날 사람' 같다. 하지만 그랬다. 90년대 중후반에 초등학교를 다닐 당시, 몇몇 친구들은 해외 여행을 다녀왔다고 자랑하기도 했고, 조기교육이 활발했던 시절임을 감안하면 꽤 늦게 영어를 시작한 것이다. 우리 부모님은 그리 교육에 극성스럽지 않은 평범한 분들이셨기에, 학교에서 어련히 잘 해주겠거니 생각하셨나보다. 덕분에 내 10대 시절 '영어' 과목은 정말이지 순탄치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금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아이러닉하다. 학창시절 영어과목은 정말 별로 였는데 말이다. 물론 내 수능성적은 내 영어 인생의 구세주 같은 선생님을 만나, 다행히 잘 풀렸다. 다들 알겠지만, 시험성적이 좋은 것과 영어 말하기를 잘하는 것은 크게 상관관계가 없다.
어느날 몇 년 전부터 혼자 일본어를 독학하던 여동생에게 물어보았다. (가끔 90년생인 내 동생의 나이를 생각해볼 때면 놀란다. 이제 90년생도 한국나이로 서른 살이니 말이다. 내가 나이 먹은 것은 생각지 않고서;; Anyway,)
"너는 왜 이제서야 일본어 공부를 하는거야?"
이 질문에, 동생은 크게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그냥.. 공부하면 내 기분이 좋아지니까.
굉장히 심플하지만, 마음에 드는 대답이었다. 새로운 언어를 배운다는 것 자체가 기분이 좋은 거니까.
문득 우리도, 학창시절에 좀 더 '외국어'라는 존재를 재미있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한 켠에 남는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그러니까 성인이 되어 내가 지금껏 5-6가지 외국어를 배웠던 이유도, 동생이 말했던 것과 비슷했다. 외국어를 잘 할 수 있다는 건 분명 내 기분을 좋게 만들었으니까. 수능이란 시험, 토익이란 시험이 사라지니 온전히 나를 위해 '남의 나라 말'을 배우고 싶은 욕구가 생겨버렸다. 그 욕구는 내가 좀 더 다양한 문화를 접하게 했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했으며, 다양한 도전을 하고 싶게끔 만들었다.
그래서 20대 중반에 떠났던 곳이 프랑스였다. 대학시절 내내 영어와 일본어를 잘 하기 위해 갖가지 활동에 참여하고 외국인들을 만나고 다녔던 나는, 이상하게도 교환학생만큼은 영어와 일본어가 아닌 다른 말을 쓰는 나라에 가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정한 곳이 '프랑스'였고, 되도록 내 평생 절대 살아 볼 일이 없을 것 같은 프랑스 남부지역인 '니스'에 있는 학교를 선택했다. (당시 꽂혀 있었던 영화의 탓도 있다. 배경이 깐느 - 니스 - 모나코를 이은 프랑스 남부 지역을 보여주던 영화였는데, 결국 그렇게 파리와 니스를 고민하다가 니스를 선택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언어를 배우고, 문화를 배우고자 하는 끌림은 나를 계속 어떤 곳으로 가게 만들었다.
외국어를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언어'라는 것이 본디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흔히 언어를 '내 생각을 담는 그릇' 이라고들 하는데, 사실 이 언어가 사람의 사고를 한정짓는다고 생각하는 언어학자들도 꽤 많다. 가끔 그런 경험이 있지 않은가? 내 감정을 정확히 '한 단어'로 표현할 수 없을 때. 바로 이럴 때 우리는 언어적 한계를 느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언어라는 것이 없다면, 우리가 어떻게 내 감정과 생각을 타인에게 전달할 것이며, 위급 상황에 도움을 요청하겠는가? 그렇기에 여행을 떠나는 여행자도, 이민을 준비하는 이민자도 그렇게 영어책을 들여다보는 것이 아닐까. 결국 생존을 위해서 우리는 사람과 연결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사실 이 뿐만 아니라, 우리는 (적어도 나의 경우엔) 나와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과 가까워지고, 연결되고 싶은 욕구가 어느정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그저 호기심이든, 새로운 문화에 대한 경험적 욕구든 간에, '새롭다'는 건 분명 두려움과 설렘이 공존하는 순간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영어, 도대체 네가 뭐길래...)
가끔 내가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는 말을 할 때면, 이렇게 반응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어떤 사람이, 어떤 상황에서, 어떤 뉘앙스로 이런 말을 하느냐에 따라.. 정말 칭찬으로 들릴 때가 있고, 조금은 비아냥 섞인 말투처럼 들릴 때도 있다. (물론 후자가 그렇게 많은 편은 아니다.) 다만 이 문구에서 느끼는 내 개인적 느낌은 이러하다.
도대체 우리에게 있어 영어는 무엇일까? 도대체 무엇이길래 그토록 잘하고 싶어하고, 아직까지도 영어를 잘한다고 하면, 조금은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것 같은 느낌을 느껴야 하는 것일까? 누군가, 이슬람어를 잘한다고 말했을 때도 비슷한 부러움의 대상이 될까? 물론 모든 사람이 영어를 잘하고 싶어 하지도, 잘할 필요도 없다는 것을 안다. 다만 영어를 가르치고 있는 입장에서 주변으로부터 받은 피드백을 통해 개인적으로 느낀 감정을 얘기하는 것이다. 그저 영어가 '국제 공용어'이기에 그러한 지위를 가졌다고 얘기할 수 있는 것일까.
사실 내가 지금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는 생각보다 은연중에 '영어를 잘한다.'라는 것은 그저 '언어를 잘한다' 그 이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 보인다. 의사소통을 하는 데 있어서 굳이 원어민과 비슷한 발음으로 똑같이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의사 전달에 좀 더 집중을 한다면 사소한 문법적 실수나 발음 등은 무시하고 용기있게 말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영어를 매우 못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영어와 일본어를 성인들에게 가르칠 때면 이따금씩 느끼는 감정이다.
내 생각에 우리가 영어에게 내어 준 '지위'는 너무나도 높아 보인다. 그저 똑같은 말인데, 영어를 못한다는 감정은 간혹 나를 부끄럽게 만들고, 얼굴을 붉히게 만든다.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어만 20년 넘게 쓰고 살았던 우리가, 고작 학창시절에 영어 수업을 주 3시간을 듣고 (그것도 영어 독해 위주의 공부..) 영어를 잘 한다는 게 더 이상하지 않나? 그러니 못하는 걸 당연하다고 생각했으면 한다. 그리고 더 이상 입시영어와 토익시험이 아니라면, 진짜 영어를 배우고자 하는 욕구를 가져 보았으면 한다. 결국 영어라는 것은 문화라는 범주에 속하는 것이고, 영어를 쓰는 문화권의 사람들을 이해하지 않고서 영어를 배우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러니 먼저 그들에 대해 알아가고자 하는 노력을 해보는 건 어떨까..
그리고 '그냥 언어를 배우는 게 내 기분을 좋게 만드니까.'라는 단순한 이유도 영어를 다시 시작하는 이유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더 많은 사람들과 연결되고 싶은 욕구... 그것이 여러분이 외국어를 배우는 동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유튜버 #크리에이터 #코스모지나 #외국어공부
http://www.youtube.com/jinaseong
#나도멋지게살고싶다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43712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