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루 Aug 08. 2016

옹그제멜, 잉글리시 페이션트의 추억

# 튀니지  - 옹그제멜, 모스에스파, 네프타


옹그제멜Ong Jemel, 그리고 알마시와 캐더린


Anthony Minghella의 1996년작, 영화 잉글리시 페이션트The English Patient는 토죄르(토져)와 주변의 Chebika, Mides 등의 산악오아시스와 사막, 협곡 등에서 촬영하여 튀니지 남부의 거칠지만 아름다운 풍광을 배경으로 만든 영화다.


알마시와 캐더린의 사랑을 품은, 주황빛의 오아시스와 사막풍경은 또 한 명의 주인공인 것이다. 영화속 랄프파인즈의 흔들리는 눈동자와, 크리스틴 스콧 토머스의 도시적이지만 맑은 존재감은 캐릭터만으로도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존재감처럼 내 삶에 한페이지를 만들었다.


영화에서 지리학회 회원들이 캠프를 설치했던 곳,  무엇을 만나러 사람들은 이곳까지 왔을까.


 옹그제멜Ong Jemel은 멀리서 보면 앉아 있는 낙타처럼 보인다.

영화에서 지리 학회 팀이 캠프를 설치했던 곳으로 헝가리인 지도 제작자 알마시(랄프 파인즈)와 친구들, 영국 여인 캐더린(크리스틴 스콧 토머스)과 그녀의 남편인 제프리(콜린 퍼스)가 둘러앉아 모닥불을 피웠던 곳으로, 캐서린이 영화 속에서 중요한 플롯으로 작용하는 기게스Gyges 이야기를 했던 곳이다.



랄프 파인즈(알마시)가 가지고 있는 책은 헤로도토스의 '역사', 잉글리시 페이션트에서 캡처
잉글리시 페이션트에서 캡처
옹그제멜에서 찍은 영화 속 장면들,   잉글리시 페이션트에서 캡처

  

English Patient, 영화 속에서는 세 줄기의 사랑이 흐른다.


현재의 사랑은 캐나다인 간호사 한나와 영국인이지만 주변인이었던 인도계 영국인 킵의 사랑과, 잉글리시 페이션트(알마시)의 회상에 등장하는 알마시와 캐더린의 사랑, 그리고 영화의 초반에 복선으로 깔린 기게스Gyges의 사랑이다.     


캐더린의 입을 빌려 들려주는 기게스의 이야기를 요약하자면, 리디아의 Candaules왕은 그의 경호원인 기게스에게 왕비의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왕의 강요로 기게스는 밤에 왕의 침실에서 왕비가 옷을 벗는 모습을 문 뒤에 숨어서 보는데 그만 왕비에게 발각되고 만다. 분노와 모욕감에 왕비는, 왕을 죽이든지, 기게스가 죽든지 둘 중에 하나를 택하라고 명한다. 왕을 죽인 기게스는 왕비와 결혼해서 유능한 군주로 28년간 리디아를 다스렸다고 한다.


기게스의 정의롭지 못한 쿠데타를 정당화한 내지만, 다분히 여성의 육체를 관음의 대상으로 보는 남성 위주의 사고에서 나온 이야기임에 분명하다. 르네상스 이후 Candaules왕과 기게스Gyges의 이야기는 화가들의 재료가 되어 관음 취미가 발달한 귀족들을 위하여 수없이 그려졌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기게스의 이야기는 헤로도토스의(기원전 484~430 또는 420) 역사서에서 나오는 내용으로, 알마시가 죽을 때까지 가지고 다니는 낡은 헤로도토스의 책 ‘역사’는 알마시를 상징하는 의미심장한 도구이다. 캐더린이 종이에 옮겨그린 동굴벽화 그림은 알마시가 과거를 잃은 '잉글리시 페이션트(영국인 환자)'가 되어 이탈리아로 이송이 될 때도, 간호사 한나의 도움으로 그의 생을 마칠 때까지 낡은 알마시의 책 속에 간직되어 있었다.

    

기게스이야기는 해피엔딩지만, 옹그 제멜에서 스멀스멀 일어나기 시작하는 알마시와 캐더린의 사랑은 찢어질 듯이 아프다.


 

만남과
사랑
캐더린의 남편 제프리와 캐더린이 같이 탄 비행기, 제프리는 알마시를 보고 질투에 못이겨 알마시를 향해 돌진한다. 제프리는 즉사하고 캐더린은 이 사고로 인해 죽게된다.
 갈비뼈와 팔, 다리뼈가 부러진 그녀를 동굴에 두고 도움을 구하러 떠나기 전
그러나 스파이로 오인, 죄수로 이동 중에 그녀를 놔두고 온 동굴로 가기위해 사막에서 탈출
거친 협곡의 살아있는 듯한 질감은 삶에서 죽음으로 가는 통로처럼 느껴진다.  
 캐더린을 안고 바람의 궁전(사막)으로 가는 알마시


알마시 : "당신은 무엇을 가장 싫어하지?"

캐더린 : "거짓말. 당신은?"

알마시 : "소유", "나는 소유하는 것을 혐오해!", "날 떠날 때는 날 잊도록 해"


바로 그의 얼굴에 한 방을 날리는 캐더린의 진실한 존재감은 어느순간 그의 허상을 벗겨낸다.


알마시가 보여준 소유와 집착의 사랑과, 존재 자체의 사랑을 보여준 캐더린, 사막에서 시작된 사랑의 절절함은 바람의 궁전인 주황빛 사막 속에 묻어버렸다.




옹그 제멜에서 사구 하나를 넘어가면, 스타워즈의 중요 촬영지 모스에스파Mos Espa가 있다.   

지금은 좀 썰렁하지만, 마트마타와 타투윈만큼 중요한 촬영 장소였던 곳이다.

  

옹그제멜에서 사구하나를 넘으면..
스타워즈의 촬영지, 모스에스파



네프타Nefta


옹그 제멜에서 가까운 네프타Nefta 오아시스는 언덕 아래에 움푹 파여있어 현지에서는 오아시스의 모양을 따라 바구니로 부른다. 언뜻 보면 중국 밍사산의 월아천 같기도 하고, 페루의 와카치나 오아시스를 닮았다.  유목민들의 습격으로 양치기들을 보호하기 위해 로마와 비잔틴 시대에 만든 요새가 있었던 곳으로 토죄르와 나란히 중요한 상업도시로 번영했던 곳이다.


비잔틴 시대에는 네프타와 토죄르는 튀니지에서 중요한 주교구가 있었던 곳이다. 7세기 아랍의 침략 때 격렬한 종교적 저항이 있었으며, 이슬람화가 된 후에도 크리스천 커뮤니티는 1194년까지 유지되었다고 한다.


네프타Nefta 오아시스

     

3박 4일 동안의 여정, 마트마타 1박, 토죄르 2박


마트마타에서 하루 숙박, 타투윈지역을 돌아보고 두즈를 지나 쇼트엘제리드를 보고 토죄르에 도착,  다음날 토죄르에서 출발, 미데스, 체(셰)비카, 타메르자가 있는 산악 오아시스를 본 후 타메르자에서 점심을 먹고 오후에는 옹그제멜과 모스에스파, 네프타를 보고 토죄르로 돌아오니 딱 하루가 소요된다.


그동안 궁금하고 보고 싶었던 곳을 봤던지라 오늘은 그냥 보람찬 하루를 보낸 듯 가슴이 뿌듯해야 하지만, 그녀를 사막에 두고 온 알마시처럼 마음 한 편이 시리다. 

어쨌든 마음은 채웠으니 이제 비어있는 위를 채워야 할 때, 어둠을 기다린다. 늦은 시간에 문을 여는 Le little Prince에서 마공 와인 한잔 기울이기 위해.  


혹 나만큼, 영화 잉글리시 페이션트를 좋아했다면 전편에 배경으로 나온 페이지를 볼 수 있다. https://brunch.co.kr/@madder/148

이전 13화 태양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