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이저우 – 둥족侗族과 자오싱둥자이肇兴侗寨
산바오둥자이三寶侗寨의 고루鼓樓
시장에서 롱장榕江현으로 가는 길은, 강을 낀 산길을 달리는 것이어서 다섯 시간은 족히 걸린다. 롱장榕江은 둥족侗族마을을 가기 위해 들리는 곳으로 시내에서 5Km 떨어진 곳에 산바오둥자이三寶侗寨가 있다. 이곳은 구이저우에서 제일 큰 둥족 마을로 가장 크고 높은 고루鼓樓가 있는 곳이다.
다른 둥족 마을에 비해 시내와 가까운 곳이어서 택시(요금 20원)로는 금방이다. 중국에서 가장 큰 둥족 마을이라더니 과연 산바오둥자이의 문에는 ‘천하제일 둥족 마을’이라고 쓰여 있다. 입장료가 10원이라고 되어있지만 이른 아침이라 받는 사람이 없다.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고루 지붕의 아름다운 각도는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리며 하늘까지 뻗어있다. 역광이어서 일까, 고루鼓樓에서는 빛이 나는 것 같았다. 고루는 21층에 38.6m의 세계에서 제일 크고 높아 기네스북에 올라있다고 한다.
산바오둥자이는 언뜻 보면 옛 마을의 느낌은 적지만, 마을 안 골목길에는 아침부터 부지런한 둥족 아낙네들 골목길을 청소하고, 어젯밤 널어놓은 쪽빛 염색 천을 뒤집어 놓는다. 화려하고 다양한 먀오족의 복식에 비해 둥족 여인들의 옷차림은 단순하고 간결하다.
강가의 아침 안개가 올라오는 강에는 일찍부터 물속의 고기가 궁금한 마을의 어르신 나와 계시고, 폭이 제법 넓은 강가에는 아름드리 용수들의 흐드러진 그림자가 강변을 물들인다.
둥족侗族
중국과 베트남에 많이 사는 이들은, 먀오족과는 달리 물이 있는 평지에 둥지를 틀며 마을을 이루기 전에 먼저 우물을 파고 마을의 중심에는 고루鼓樓를 만든다. 어디를 가든지 고루가 있는 곳은 가까운 성씨를 가진 하나의 둥족 마을을 상징한다.
고루는 마을의 중심이며 마을의 축제와 결혼식, 장례식은 물론 회의를 하거나 심지어는 여가시간을 함께 보내는 마을의 사랑방 역할을 한다. 재료는 주로 삼나무를 이용하며 나무의 홈을 이용해 끼워 맞추는 식으로 짓는다. 내부에는 사람이 올라갈 수 있도록 사다리가 설치되어 있다. 고루의 제일 꼭대기에는 북이 있으며 마을의 제사나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는 북이 울린다.
구이저우의 첸둥난먀오족둥족자치주(黔东南苗族侗族自治州)에는 수많은 크고 작은 둥족 마을들이 있다. 둥족의 인구는 구이저우 인구의 약 3분의 1을 차지하며, 구이저우와 후난성, 광시가 만나는 지역에 사는 인구까지 합하면 중국의 둥족은 약 300만 명 가까이 달한다고 한다.
먀오족이 황하와 장강을 건너 중국의 동북쪽에서 이주한 민족이라면, 둥족은 남쪽인 광시 쪽에서 강을 따라 북으로 이주한 민족으로 추정한다. 먀오족은 북에서, 둥족은 남쪽에서 일어난 전란 등을 피해 이주하면서 자연스럽게 같은 지역에 모여 살게 되었으니, 두 민족의 운명은 다른 것 같지만, 또한 비슷하다. 자신의 선조들이 살던 것처럼 둥족은 비교적 환경이 좋은, 물이 있는 평지나 강변에 마을을 이루고 살며 대부분의 먀오족은 둥족보다 산 쪽에 마을을 이루고 살고 있다.
총장从江 바사巴士 먀오족 마을
총장从江시에서 바사巴士마을까지는 약 8Km 정도라고 하는데 롱장에서는 생각보다 가깝다. 바사巴士마을에 도착하니 비가 부슬부슬 뿌리기 시작한다. 마을은 산의 능선을 따라 자리 잡고 있는데 어떤 곳은 산의 봉우리 부근까지 집들이 올라가 있다.
마을 사람들은 너도나도 없이 분주한데 갑자기 뿌리는 비 때문이었다. 마을 한쪽에는 곡식창고가 여러 채 열을 지어 서 있고, 창고 옆은 추수한 벼를 말리는 작업을 하는 곳이다. 이들은 산봉우리에 살면서도 주식인 쌀을 생산하기 위해 산비탈을 개간하고 벼를 재배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남녀 할 것 없이 모여들어 창고 안으로 곡식을 나르기 위해 정신없이 바쁘다. 무거운 볏단을 메고 가는 모습을 카메라로 찍는 것도 미안할 정도다.
중요한 것은 줄지어 서 있는 곡식창고의 모양이 고구려 시대의 창고인 부경桴京과 너무나 똑같다. 주민들이 짐을 지고 창고인 2층으로 오를 때는 고구려의 고분벽화에도 등장하는 사다리를 이용한다. 3세기 후반에 나온 중국의 사서인 ‘삼국지 위서魏書 동이전東夷傳에 의하면 고구려의 옛 수도였던 집안集安을 이렇게 표현했다.
“나라 안의 고을마다 저녁이 되면 남녀가 떼 지어 모여 노래하고 춤을 춘다. 큰 창고는 없으나 집집마다 작은 창고를 갖고 있으니 그 이름을 부경이라 했다.” 현재 남아있는 고구려 시대 ’부경‘의 형식을 띤 고대의 건축물로는 일본 동대사의 정창원이 유명하다.
바사먀오족 마을의 남자들은 중국에서 유일하게 화승총을 소지할 수 있는 유일한 민족이다. 다른 먀오족과도 등지고 살았던 바사먀오족은 어떤 이유로 이곳에 정착했든지, 지금은 총이 이들의 상징이 되었다. 화승총이 청나라 시대에 사용했던 총인 것을 생각하면 청나라의 복식과 생활습관 등이 이들의 폐쇄적인 생활 속에 오롯이 남아있을 것이다. 지금은 중국 전역에 약 2000여 명만 남아있는 바사먀오족에게 총은 험한 오지에서 짐승이나 다른 이들로부터 자신들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 아니었을까.
자오싱둥자이肇兴侗寨 가는 길
롱장에서 바사먀오족 마을을 거쳐 자오싱둥자이 가는 길은 작은 소수민족 마을들을 지나가는 길이다. 비포장도로를 지나다니는 차들 때문에 길 옆의 오래된 마을과 나무들은 먼지가 뽀얗게 쌓였다. 무심한 눈빛으로 차창을 바라보며 길을 건너는 아낙네와는 다르게 아이들은 차 안의 사람들이 궁금하다. 고속열차보다 먼저, 강을 끼고 달리는 이 아름다운 길이 빨리 포장이 되었으면 좋겠다.
자오싱肇兴을 가려면 거쳐야 하는 총장 시내는 우후죽순 현대적인 건물들이 날림으로 들어서있지만(차를 타고 휙 지나가는 여행자가 무슨 말을 못 하겠는가) 첫인상은 알제리의 아름다운 고원도시 콩스탄틴이 생각날 정도로, 그냥 지나치기에는 아까울 정도로 물길(두류장都柳江)을 사이에 두고 발달한 마을이 인상적이다. 총장을 중국에서 가장 낙후한 마을이라고 어떤 이는 표현했지만, 시간을 두고 정비만 잘 하면 아름다운 휴양도시가 될 것 같다.
카이리부터 롱장을 거쳐 총장 시내를 지나 자오싱肇兴까지 굽이굽이 산길을 달려왔다. 내가 며칠을 거쳐 달려온 험한 길은 많은 이들의 삶과 연결된 핏줄과도 같은 길이다. 그래도 지금은 구이양贵阳 북 역에서 약 270Km나 떨어진 총장从江까지 고속열차가 개통되어 1시간 40분 정도밖에 안 걸린다고 하니 중국의 발전상은 하루하루가 다르다. 깊은 오지까지 중국의 고속열차가 운행되는 것을 보면, 부럽기도 하고 은근히 기가 죽는다.
자오싱둥자이肇兴侗寨
마을 입장료는 100원, 자오싱둥자이肇兴侗寨의 첫인상은 예쁘게 정돈된 시장천호묘채의 느낌이었지만 안으로 들어가니 역시 먀오족과는 다른 둥족의 냄새가 난다. 시장천호묘채보다 마을 규모는 작지만 객잔들과 기념품점들이 즐비한 거리 분위기는 더 아기자기하다.
5개의 고루가 있는 이곳은 각기 다른 고루를 중심으로 5개의 마을이 모여 산다. 마을을 돌아보는 시간은 2시간이면 족하지만 인, 의, 예, 지, 신 마을마다 한 개씩 있는 화교(풍우교안에 그림이 그려져 있다)와 고루의 모양을 비교하는 것도 다른 재미이다.
5개의 고루는 모양도 높이도 조금씩 다르지만 각종 공연을 위한 희대(공연장)나 광장이 있고, 고루 가까이에는 연못이나 웅덩이가 위치한다. 이것들은 평상시에는 수경식물을 키우지만 불이 났을 때를 대비한 것이며, 습도를 조절해 나무의 비틀림이나 변형을 막는 역할을 한다.
마을의 개천 길을 들여다보면 여기저기 아낙네들이 뭔가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옛날 우리나라 어머니들의 홍두깨 소리인가 싶지만 진한 남색의 천을 직사각형으로 접어서 나무망치로 힘겹게 두드린다.
둥족은 목화와 남전藍澱초(인디고)를 키우며 질 좋은 면직물에 염색을 하여 둥족사람들의 전통 복장인 매끄럽고 반짝이는 옷을 만드는 데 사용한다. 자오싱肇兴 마을의 중요한 수입원이기도 한 전통염색은 식물의 잎을 우려낸 쪽빛에 염색하고 말리기를 반복하면 푸른빛이 갈수록 진한 남청색으로 변한다. 달걀의 흰자를 여러 번 덧칠해주고 나무 방망이로 두드리면 빛이 나는 빳빳한 천이 만들어진다.
염색하는 과정에는 물이 아주 중요한 요소인데 마을에 흐르는 개천은 염색하기에 딱 알맞은 장소이다. 주 재료는 약초로도 쓰이는 몸에 좋은 식물성 염료지만, 걱정되는 오염도는 한 번쯤 체크해야 할 요소이다.
‘천뢰지음天籁之音’
마을을 걷다가 천뢰지음이라고 쓰여 있는 건물 앞에 문득 멈추었다. 건물 안에서는 “세상의 고운 어떤 소리와도 다른, 아름다운 천상의 소리”라던 둥족의 화음이 창문을 넘어 내 귓가로 날아온 것이다. 이끌려 들어가니 무대의상을 입은 둥족의 여인들이 악보를 보기는커녕 서로에게 눈도 안 주면서 다른 사람의 음을 이어 붙이기도 하고 화음도 넣는다. 손에는 열심히 수를 놓고 있다.
숨죽이고 한참을 듣다 보니 입구에는 연주했던 사진도 있고 입장권도 파는 공연장이다. 상설로 합창공연을 하는 공연장이니 리허설일 수도 있는 모습이다. 둥족의 평상복은 먀오족에 비해 단순하고 장식이 없는데, 전통복장으로 만든 이들의 의상, 특히 짧은 치마에 깃털 장식의 모자를 착용한 이들의 공연복은, 역시 제 1회 파리 국제 합창대회에서 이름을 날린 팀답게 멋지다.
둥족은 자신들의 모든 역사와 정서, 풍속과 문화는 물론 자연의 소리까지 노래로써 구전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반주가 없이 이어지는 그들의 목소리는 대나무 사이를 지나가는 바람소리이며 한 마리 새의 날아오르는 날개 짓이다.
화교(풍우교)에 그려진 그림을 보면 남녀가 구애를 할 때도 악기를 연주하며 노래를 한다. 노래하는 장면이 많이 그려진 것을 보면 둥족의 노래는 곧 이들의 생활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