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좋은 날

광시广西 - 용척제전龍脊梯田

by 그루


용척제전龍脊梯田룽지티티엔은 광시성 좡족자치구 구이린桂林시 용성龍胜 각족자치현에 속한다. LongJi Terrace는 구이린桂林에서 북쪽으로 102Km 위치하는 곳으로 龍脊梯田만 본다면, 싼장에서 가깝지만 차량이 많은 구이린桂林에서 가는 것이 더 쉬울 수 있겠다.


싼장 청양풍우교 마을에서 용성龙胜의 제전 입구까지는 약 2시간 정도면 도착한다. 입장권은 90원(2016년 10월 31일 기준)으로 1장의 표로 다음날 다자이촌大寨忖까지 다 볼 수 있으므로 표는 꼭 가지고 있어야 한다. 다음날 이곳에 와서 이동할 계획이라면 큰 짐은 매표소에 맡기고 1박 2일 지낼 간단한 짐만 가지고 올라갈 수 있다.


핑안촌平安忖 입구에는龍脊梯田LongJi Terrace이라고 붙어 있다. 핑안촌平安忖은 좡족들이 모여 사는 곳으로, 마을로 들어가는 길가에는 작은 밥집들과 가게들이 즐비하다. 가파른 경사가 있는 마을은 산꼭대기까지 이어져 있는데, 30분 이상 올라온 가장 높은 곳에 있는 게스트하우스의 뷰가 명당이다.


숙소가 산의 정상에 있으니 테라스를 보기 위한 전망대를 가기 위해서는 편하다. 늘 습한 날이 계속되는 지역이지만 오늘은 날씨가 예상외로 나쁘진 않은 편이어서 대표적인 전망대인 구룡오호九龍五虎까지 다녀오기로 했다. 숙소의 왼쪽으로 난 계단 길을 따라 조금만 올라가면 가까운 곳에 칠성반월七星伴月이 나온다. 작은 봉우리들을 개간해서 만든 귀염귀염한 테라스에 칠성반월七星伴月이란 낭만적인 이름을 붙여 놨다. 한자를 좋아하지 않아서 점잖은 느낌의 사자성어나 한문을 인용하는 것을 즐기지 않는다. 하지만 중국 여행을 거듭할수록 어쩔 수 없이 중국의 정취가 내게 스며드는 느낌이랄까, 한자를 보면 나도 모르게 슬며시 의미를 되뇐다.


장엄한 기운이 느껴지는 구룡오호九龍五虎까지는 이곳에서 40분 이상 걸었을까, 다랭이 논 자락에 옹기종기 앉아있는 민가에서는 구수한 밥 냄새가 올라오는 것처럼, 연기가 몽글몽글 솟아오르더니 눈부신 햇빛 속으로 안개처럼 퍼져나간다. 지금은 10월 마지막 날, 위 논부터 물을 대기 시작한 테라스는 늦은 오후, 길게 내려앉는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반짝이기 시작한다.


산 꼭대기 숙소에서 바라본 핑안촌
칠성반월七星伴月에서
구룡오호 가는 길, 물을 대기 시작했다.
구룡오호九龍五虎
구룡오호


다음날, 핑안촌平安忖에서 다자이촌大寨忖으로 가는 길목에는 안개만이 죽치고 살 것 같은 산속이지만 저수지 겸 수원지로 사용하는 못도 보인다. 다자이촌大寨忖으로 접어들면 산의 경사는 더하고 길은 험해지며 안개는 더욱 짙어진다.


용척제전龍脊梯田 LongJi Terrace은 좡족들이 살고 있는 핑안촌平安忖의 핑안제전과 야오족이 사는 다자이大寨 마을이 있는 금갱제전으로 이어져 있다. 平安忖과 다자이촌大寨忖 어느 곳으로 들어가도 상관이 없으며 핑안제전平安梯田보다 금갱제전 쪽이 더 험하고 높으며 뷰 포인트도 여기저기 산재해 있다.


칠성반월七星伴月과 구룡오호九龍五虎가 있는 핑안제전平安梯田이 아기자기하고 드라마틱한 풍경인 반면에 西山韶乐와 天层天梯, 금불정 등의 뷰포인트가 있는 금갱제전金坑梯田은 수려하면서도 장엄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핑안제전平安梯田을 걷는 동안은 안개가 시야를 가리지 않았지만 금갱제전金坑梯田 쪽으로 가는 시간에는 안갯속을 걷기에 바빴다. 천층천제天层天梯에 당도해서는 느낌만이라도 상상할 수 있도록 안개가 살짝 올라가 있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얼굴만 가린 금갱제전을 보았다.


아랫마을이 보이기 시작하니 멀리 케이블카 선이 안개를 뚫고 하늘로 올라가 있다. 다랭이논의 곡식들이 에너지를 담뿍 안고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계절의 짙은 녹음, 추수가 가까워진 시간의 황금빛으로 일렁이는 영겁의 곡선들, 그리고 논에 물을 대는 계절이면 이곳은 온 세상의 빛을 다 품은 대지가 될 것이다.


이렇게 좋은 날, 케이블카를 타는 줄은 끝이 없겠다.


절대 보여 줄 것 같지 않은 안개에 쌓인 天层天梯


윈난과 구이저우, 그리고 광시까지 역사적으로 소수민족이 터를 잡고 살았던 지역의 대부분은 땅을 일구고 가꾸는 것이 용이하지 않았던 지역이다. 전쟁을 피하거나 강력한 힘에 밀려서 이주하거나, 붙잡혀 온 경우였기 때문이다.


이곳 계단식 논은 원나라 때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했다고 하니, 어디에서 왔든지 이곳에 정착한 사람들의 피와 눈물의 역사는 늦어도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소수민족에 대한 중앙 정부의 통제와 핍박이 강했던 명나라와 청나라 시기에, 이곳 오지로 쫓겨 온 사람들이 쌀 한 톨이라도 만들기 위해 온몸으로 만들었던 전답은 핑안촌에서 대채촌까지 해발 380m에서 시작하여 해발 1180m까지 올라와 있다.


수백 년간 살다 간 사람들의 일생을 다한 노고로 이룬 龍脊梯田LongJi Terrace의 웅장하면서 아름다운 선은 이 땅에 남겨둔 그들의 후손을 위한 족적이 되었다.


고개를 넘고 넘어도 가실 줄을 모르는 안개는 가버린 영혼들의 미련만큼 습하고 끈끈하다. 안개 때문에 내가 이들의 속살을 자세히 못 봤다고 어찌 말할 수 있을까. 이들이 수십 세대를 거쳐 만들어 놓은 길을 따라서 걸을 수 있도록 허락한 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이다.

1박2일의 트레킹이 끝나고 내려온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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