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시广西 - 구이린桂林, 첩채산과 정강왕성靖江王城
계수나무의 도시 구이린桂林
용척제전에서 구이린까지는 약 2시간, 도시의 입구부터 구이린桂林 시내까지 계수나무가 양쪽으로 도열해 있다. 어릴 적부터 수없이 들어왔던 계수나무 이야기는 추억과 함께 동화적인 세계로 인도한다.
주로 따뜻한 남쪽 지역에서 늦가을에 꽃이 핀다는 계수나무는 진한 향기로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 금방 눈에 띈다. 걸어가다가 코끝을 휘감는 향기에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찾아보면, 잘 생긴 나무에 노랗게 붙어있는 작은 꽃들이 라일락꽃처럼 달려있다.
구이양에서부터 가로수와 정원수 등으로 향을 내뿜으며 서있는 계수나무를 볼 때마다 현지인에게 확인하는 차원에서 계속 물어봤었다. 그 계수나무들이 멋지게 서서 촉촉하게 비 내리는 구이린 입성을 마치 환영하는 자세다. 구이린桂林, 계수나무가 숲을 이루어 桂花의 향기가 가득한, 도시의 이름이 이처럼 매혹적일 수 있을까.
첩채산疊彩山(뎨차이산)
탑카르스트 지형이 발달한 지역인 구이린에는 둥근 컵을 뒤집어 놓은 것처럼, 평지에서 불쑥 올라온 듯한 봉우리들이 많다. 이들의 높이는 150m 내외로 구이린 시내 전경을 바라볼 수 있는 최고의 뷰 포인트는 요산과 첩채산, 복파산, 그리고 독수봉이라고 하며, 요산을 제외한 3개의 봉우리는 구이린 도심에 위치한다.
첩채산疊彩山은 가장 높은 명월봉을 중심으로 4개의 봉우리가 첩첩이 쌓여 있어 붙은 이름대로 입구에서 다른 봉우리로 가는 갈래 길이 나온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명월봉으로 오르는데 어디든지 전망이 좋은 곳에는 정자가 서 있다. 그렇게 높지 않은 봉우리 건만 시가지는 어느 한 곳 가려지는 곳이 없이 사방으로 탁 트였다.
시가지의 아름답고 기묘한 탑카르스트 봉우리들이 어디서나 잘 보이도록 도시의 빌딩들도 높이에 제한을 둔다고 한다. 도심의 가운데로 호수와 강이 흐르고, 내가 있는 疊彩山 옆구리로는 아름다운 리강이 흘러 지나간다.
구이린의 중심, 靖江王城정강왕성과 獨秀峰독수봉
중국에서 이름난 유적지나 뛰어난 자연경관을 보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많은 돈을 지불해야 한다. 반면에 시민들이 즐겨 찾는 도시 속의 공원은 대체로 입장료가 싸다. 하지만 도심 속의 공원이라는 생각으로 찾은 정강왕성의 입장료는 120원, 게다가 5A(중국은 가장 중요한 유적지나 경관에 A의 숫자로 표기한다. A가 5개인 곳은 가장 볼만한 곳이라는 뜻이다.)라고 쓰여 있다. 중국에서는 입장료가 비싼 만큼 가치를 하지만, 이곳은 보고 나오면서 뭔가 허전하고, 그만한 가치를 못 느꼈던 최초의 장소였다.
아마도 내가 판단할 수 없는 역사적인 의미에 가치를 두지 않았나 싶다. 그래도 구이린의 역사 속에 잠시 들어갔다 나왔던 곳으로 역사의 줄기를 더듬고 당시의 흐름을 느끼기에는 더없이 좋은 곳이었다.
정강왕성은 명나라 시대 구이린 지역을 통치했던 번왕의 왕궁이다.
역사적으로 명나라를 세운 명 태조太祖 주원장朱元璋은 공신과 신하들에게는 폭군이었으나 백성들에게는 어진 황제로 유명하다. 이때 만들어진 중국의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잔인한 형벌과 고문 도구들은 권력에 접근하는 수만 명의 공신들과 신하들을 비롯한 그들의 가족들에게 사용되었다고 한다.
아무도 믿지 못하던 주원장朱元璋은 황제 친정체제의 한 방법으로 자신의 여러 아들과 손자들에게 중앙정부의 행정력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파견하여 국경지방을 다스리는 왕으로 봉했는데 이를 번왕藩王이라고 한다. 배신을 하면 중앙정부에 바로 칼을 들이미는 역사를 만들지 않기 위해 만든 제도였지만, 번왕의 배신은 태조가 숨을 거두자 바로 일어난다.
1398년 태조가 숨을 거두자 장손인 주윤문이 건문제로 즉위하지만, 연燕(당시 연경, 현 베이징)의 번왕이었던 주원장의 넷째 아들인 주체는 조카인 건문제를 쫓아내고 1402년 스스로 제위에 올랐다. 설마 했던 번왕이 황권을 찬탈한 것이다. 이 사람이 그 유명한 영락제이다. 조선 초기의 왕 세조가 생각나는 대목이다.
원나라 혜종의 유배지
전시된 역사의 목록을 읽다 보니 기황후 때문에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원元 나라 혜종惠宗(1320 ~ 1370)의 이야기가 쓰여 있다. 10대 초반에 고려의 대청도에서 약 1년 6개월 정도 유배생활을 했던 원나라의 혜종(토곤 테무르)은 다시 정강靖江(구이린의 옛 지명)으로 유배되어 갔는데 그곳이 이곳 구이린이다. 그는 이곳에서 보통의 한인처럼 논어와 효경을 배우고 자랐으며 끝까지 살아남아 황제가 되었다. 명 시절의 정강왕성이 있기 이전에 이곳은 구이린 지역을 통치하던 궁이 위치했던 곳이었다.
광시사범대학교의 캠퍼스가 옆에 있어서인지, 관람하는 순서대로 이정표가 되어있다. 이정표를 따라 올라가면 구이린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계수나무와 과거시험을 보는 수험생들이 반드시 이 물을 마시고 시험을 봤다는 우물은 물론, 중요한 왕궁의 건물들도 볼 수 있다. 왕궁은 생각보다 소박하며 건물들 중 일부는 학생들의 강의실로도 사용되는 것 같다.
왕성의 뒤에는 66m의 獨秀峰독수봉이 마치 왕성의 수호신처럼 홀로 우뚝 서 있다. 명 시절에는 황족들만 올라가던 산이었다고 한다.
이곳은 예부터 장원급제가 많이 나는 명당이라는데, 공부가 잘된다는 동굴인 독서암도 있으며, 송나라 때 과거를 위해 주재관駐在官으로 구이린에 왔던 왕정공王正功이 과거에 급제한 젊은이들과의 연회에서 읊었다는 시 속에 있는 ‘구이린의 산수가 천하의 으뜸桂林山水甲天下’이라는 유명한 문장을 비롯하여 서태후가 당시 태수에게 내린 ‘수壽’라는 글자까지, 독수봉에 유난히 많은 석각들이 많은 것도, 대학이 이곳에 존재하는 것도 무관치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