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셰키'로 떠나야 하니 날씨야 어떻든 오늘은 세계적인 암각화의 명소 '고부스탄'Qobustan을 가야 했다. 바쿠에서 1시간가량 카스피해를 바라보며 남쪽으로 달리면 고부스탄이다. '고부스탄'은 바위 지역이라는 뜻인데. 입구부터 생경한 풍경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화산으로 흘러내린 용암이 굳어진 엄청난 바위군이 병풍처럼 길게 누워 카스피해를 바라보고 있는 바윗돌들의 포스가 장난이 아니다. 입구에 있는 박물관에 들어가서 암각화의 종류들의 보고 실제의 바위 암각화를 보는 것이 찾는 재미도 있고 이해가 빠르다.
고부스탄 박물관
바로 앞에 보이는, 카스피해
이곳에는 약 4만 년 전부터 만들어진 암각화 약 6000여 개가 남아 있는데 약 5천 년 전까지 살던 사람들의 흔적은 물론이고 아라비아 및 로마시대의 비문도 남아있다.
암각화는 배와 황소와 사슴, 춤추는 사람, 사냥하는 사람, 사랑하는 동물 등 다양한 문양이 많지만 유난히 관심이 집중되는 문양은 배 그림이다. 고개만 돌리면 카스피해가 넘실거리는 지역이어서 배 그림이 있는 것이 당연할지 모르지만 배의 그림이 고대 인류의 이동에 중요한 키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것은 배의 모양이 정확하게 바이킹의 배의 구조와 들어맞는 배 그림이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어느 나라보다도 바이킹의 나라 노르웨이는 고부스탄의 발굴 및 보존에 가장 많은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멀고 먼 옛날 바이킹들이 지중해와 흑해를 거쳐 카스피해까지 들어왔다는 추정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노르웨이 학자는 반대로 이곳에서 카스피해와 흑해를 지나 지중해를 거쳐 노르웨이의 바다까지 이동했을 것이란 학설을 내놓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바이킹족들이 아제리인들의 먼 조상이거나 또는 그 반대이거나, 인류의 이동은 매우 흥미롭다. 배를 타고 종횡무진했던 바이킹족의 이동은 더욱.
바이킹배와 노를 젓는 사람들
바이킹배와 사람들
얄리얄리 사람들이 춤추는 모습의 암각화를 보고 있자니 한국의 강강술래처럼 분명 지금도 아제르바이잔 민속무용에는 손을 잡고 돌아가는 춤이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많은 동물들이 있지만 다른 동물보다도 유난히 황소의 형상이 많이 새겨져 있는데 세계의 많은 지역에서는 황소는 풍요와 권력의 상징으로 숭배 대상이 되고 있다. 굵고 깊게 파 들어간 황소문양은 방금 새겨진 필치처럼 단순하지만 사실적이다.
바위를 깊게 파 들어간 웅덩이는 빗물을 저장했던 곳으로 대량 저장용이라고 하기에는 많이 부족해 보인다. 동물들이 먹을 수 있도록 해 놓았거나 요리용이나 식수로 사용했을 것 같기도 하다.
암각화를 보고 나니 높은 기온에 건조한 공기는 목까지 타들어간다. 더운 여름날, 고부스탄에 간다면 물이나 과일 등 먹거리를 조금이라도 챙겨가야 할 것 같다.
기원전 10,000 년 경부터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하는 '얄리얄리' 암각화
유난히 많은 황소문양
진흙화산
고부스탄을 보고 진흙화산을 가기 위해 포장을 할 수 없는 비포장길을 달리다 보니, 차 안에서도 땅의 지반이 약해서 쿨렁거리는 느낌이 전해져 온다. 약간의 비만 와도 진흙화산으로 진입하기가 어려울 것 같은 지반인데 자세히 보니 검은 석유가 땅의 표면까지 올라와서 쿨렁이는 것이다. 멀리 언덕등성이에서는 불꽃이 일고 있고 한쪽에서는 지나다니는 가축들이 마신다는 석유가 고여 있는 웅덩이도 보인다.
땅 표면에 온통 석유가 깔려있는 어리둥절한 땅을 약 30여분 지나오면 진흙화산에 도착한다. 산이라고 하기엔 귀여운, 엄밀하게 말하면 화산은 아니고 땅속의 가스가 진흙을 지속적으로 밀어내어 흘러내리는 곳이다. 어떤 이들은 머드팩을 하기도 한다는데 인근의 석유웅덩이처럼 약효가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