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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제리 청년과 '나고르노 카라바흐'

# 바쿠

by 그루

더위가 한풀 꺾이기를 기다려 늦은 오후 바쿠의 중심가인 니자미거리로 향했다. 호텔 근처에서 버스를 타니 어디에도 요금을 받는 곳이 없다. 어떻게 해야 하나 눈치를 살피고 있으니 이어서 타는 승객들도 돈을 내지 않는다. 아마 내릴 때 요금을 내는 모양이다. 옆에 서 있는 청년에게 우리는 폰테인 광장에 가려고 한다. 가까운 곳에서 내리게 해 달라고 하니 그러란다.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런데 청년은 우리 두 사람의 요금까지 내고 같이 내린다. 요금은 200q로 큰 돈은 아니지만 뜻하지 않은 호의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처음에는 사양했지만 그래도 호의는 고맙게 받는 것이 빛이 나는 법이다. 청년은 친구를 만나더니 따라 오란다. 폰테인 광장까지 동행해 주겠다는 의미였다.


제법 먼 거리를 걸으면서 “아제르바이잔의 인상이 어떠냐?”, “앞으로 조지아와 아르메니아도 갈 거냐?”고 묻더니 마지막 아르메니아를 말하는 대목에서는 입술을 파르르 떨며 긴장까지 하는 모습이다. 이 곳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르메니아라는 단어만 나와도 분통을 터트린다.


한반도의 절반 크기와 비슷한 국토를 가지고 있는 아제르바이잔은 나고르노 카라바흐 지역을 두고 아르메니아와의 영유권 다툼에서 패하면서 국토의 14퍼센트에 가까운 지역을 잃어버렸다. 이 지역은 아르메니아의 군대에 의해 독립을 하게 된다.


뼈아픈 패배도 패배지만 아제르바이잔 사람들 말로는 싸우는 과정에서, 나고르노 카라바흐 지역에서 살던 대아제리인들이 기독교를 믿는 아르메니아인들에 의해 무참하게 죽었다는 것이다.

영어를 꽤 잘한다고 말했더니 자신은 2015 유러피안 게임에서 발런티어 volunteer로 봉사했다면서 살짝 으쓱해하는 것이 귀엽다. 그리고는 능숙하게 이곳저곳 랜드마크가 되는 건축물들과 유래를 가이드처럼 자랑스럽게 이야기해준다. 아마도 발런티어로 일 할 때 했던 모습일 것이다.


슈퍼가 보여 아이스크림을 사서 나눠 먹으며, 할 일도 있는지라 따뜻하고 바른 아제르바이잔의 청년들과 악수를 나누며 헤어졌다.


바쿠의 번화가

폰테인 광장


폰테인 광장에서 려고 했던 컴퓨터 케이블과 리더기를 쉽게 구입할 수 있었다. 케이블은 우리 돈 일만 원 정도, 리더기는 약 3000원가량으로 우리나라보다 조금 비싼 정도지만 거의 비슷하다.


야경이 멋진 밤거리에는 상품들도 넘치고 사람들도 넘친다. 연인들도 많지만 더운 낮 시간을 피해 나온 가족들의 모습이 더 많아 보인다. 니자미 거리로 들어오니 각종 명품들과 레스토랑들이 즐비하다. 극장이 있는 뒷골목에는 게이바가 간판을 걸고 영업을 한다. 놀랍고 흥미로워서 멈칫하고 있으니 배가 불룩한 아저씨가 나오시며 사진을 찍으라고 먼저 청한다. 이슬람권 답지 않은 친근함에 그저 놀라웠다.

폰테인 광장에는 바쿠의 모든 시민들이 모이는지 사람들로 가득하다. 넓은 광장에는 모양이 제각기 다른 종류의 분수들이 물을 뿜어내는데 이 또한 멋진 광경이다. 아이들은 분수에서 물놀이를 하기도 하고 부모들은 레스토랑에서 시원한 맥주를 마시기도 한다. 우리도 아제리처럼 생맥주 500ml 2잔을 시켰다. 분위기가 한 몫 하지만 얼마나 맛이 좋은지, 밤 11시가 가까워진 너무 늦은 시간이어서 계산을 하니 13 마나트다. 자리 값 치고는 너무 비싸다.

하지만 다음날 저녁 바쿠역 부근의 선술집에서 먹었던 생맥주는 거의 오분의 일 수준이었다.

이슬람권에서 최초로 지어진 오페라극장
비싸지만 술도 허용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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