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에서 밤 12시가 넘어 출발하는 아제르바이잔 바쿠로 가는 비행기를 타고 7월 27일 이른 새벽, 바쿠에 도착했다. 공항에서 환전을 하니 1 마나트에 우리 돈 1000원 조금 넘는 것 같다. 현대적인 공항을 빠져나오자마자 훅 느껴지는 더운 바람이 사막의 나라를 연상시킨다.
카스피해 서쪽 연안에 위치한 아제르바이잔은 투르크족의 나라이다.(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그 땅에 살았던 카프카스 알바니아인들과 페르시아인들, 위에서 내려온 투르크인들과 혼혈된 투르크인) 그래서 터키와도 사이가 좋은 것처럼 카스피해 동쪽에 위치한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키르기스스탄 등과 종교도 같을뿐더러 같은 종족으로 사이가 좋다. 투르크(돌궐)인들은 고구려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 보면 전통적으로 우리와 사이가 매우 좋다.
2002년 월드컵에서 터키와 대한민국은 사이가 좋은 것을 유감없이 표현했는데 터키인들의 한국전 파병도 그렇지만 그보다도 먼 옛날 초원의 패권을 다투던 시절 서로에게 배신의 역사가 없었던 동맹이었다.
녹색으로 칠해진 곳이 아제르바이잔, 섬처럼 떨어져 있는 지역은 나히체반 자치공화국
아제르바이잔은 오랫동안 페르시아(이란) 땅이었던 이유로 이란의 북부 아제르바이잔과의 접경지역에는 본국의 인구보다 더 많은 수의 아제르바이잔인들이 살고 있다고 한다.
1991년 소련연방에서 독립하기 전에도 1989∼91년 다수의 아르메니아인들이 살고 있던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을 둘러싼 아르메니아와의 내전이 있었으며 소련연방 해체 이후 독립하자마자 1992∼93년에도 아르메니아와의 계속된 전쟁으로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을 잃고 1994년 휴전협정을 맺었다. 유러피안 게임을 위해 근래에 제작한 듯한 아제르바이잔 지도를 보니 아르메니아 영토와 맞닿아 있는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을 비롯한 꽤나 넓은 영토에는 Territory Occupied by Armenia라고 선명하게 적혀있다.
싸움에는 제각각 타당한 이유가 있겠지만 누가 박 터지는지 음흉한 미소를 머금고 계산기를 두드리는 제 3자가 있다는 걸 알고 있다면 국가든 사람이든 싸우기 전에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할 일이다.
바쿠의 올드시티 이체리 쉐히르
몹시 건조하기까지 하여 목안까지 따가운데 움직이지 않고 5분만 서 있으면 몸이 그대로 활활~ 타 버릴 것 같은 기온이다. 바쿠는 페르시아어로 '바람의 도시'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곳인데 바람 한 가닥이라도 불어주었으면 좋겠다.
점심을 먹고 앰버서더 호텔에서 올드시티를 가자고 하니 4마트를 달란다. 성벽으로 둘러싸인 이체리 쉐히르(올드시티)는 마치 이란과 터키의 올드시티를 연상시킨다. 바쿠는 근래에 아제르바이잔의 수도가 되었지만 중세시대에 이미 실크로드의 중요한 거점도시였다.
레스토랑으로 개조해서 사용하는 성안의 캐러밴 사라이는 페르시아의 아치로 입구가 되어있어 페르시아영향을 받던 시절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데 도심의 협소한 땅에 여러 개의 방을 효율적으로 배치를 하기 위해 고심을 한 흔적이 보인다. 캐러밴 사라이 작은 뜰의 테이블에 놓여있는 오래된 주전자 사모바르, 바쿠를 오고 가던 상인들을 위해 뜨거운 물을 나르느라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냈을까.
올드시티(이체리 쉐히르) 입구
길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는 캐러밴사라이의 대문과 페르시아식 아치
카라반사라이의 작은 뜰, 손님을 기다리는 사모바르
오랜시간이 묻어나는 카라반사라이의 모습
캐러밴 사라이를 조금 지나니 오래된 책방이 있다. 나 홀로 여행을 한다면 앉았다 섰다를 반복하며 천천히 시간을 보낼 것 같은, 혹해서 구석구석 살피는데 에단호크와 줄리 델피가 나왔던 리처드 링클레이터의 영화 비포선라이즈의 무대였던 파리의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라는 책방만큼 맘에 든다.
넓지 않은 올드시티의 골목길을 빠져나오면 오른쪽으로 바쿠의 상징 메이든타워가 보인다. 위에서 보면 전체적인 탑의 디자인은 불의 모습을 형상화시켜 놓은 것이며 타워의 돌출된 부분은 해가 뜨는 동쪽을 가리킨다고 한다. 타워의 역할이 천체관측소이거나 조로아스터교 사원이었든지 8층으로 되어있는 원통형의 탑은 도시의 망루역할만으로도 훌륭하다. 티켓을 구입하여 위로 올라가면 바쿠의 상징인 플레임타워를 비롯한 바쿠 시내와 바쿠의 바다인 카스피해가 한 눈에 보인다.
카스피해에서는 19세기 후반 석유가 개발되었는데 석유 시추를 위해 꽂아놓은 시추봉들로 인해 카스피해는 이미 아름다움을 잃었다.
오래된 책방
대로 변에서 바라본 메이든타워
정돈 된 바쿠 시내
메이든 타워를 보고 나면 지하도만 건너면 카스피해다. 긴 해변을 공원화시켜 시민들은 산책하기 참 좋겠다. 2015 유러피안 게임에 맞춰 도시의 정비가 대단위로 이뤄졌겠지만 차분한 도시의 분위기는 제법 세련되어 보인다.
사람 하나 지나다니지 않는 7월 말의 바쿠에는 한낮인데도 아이스크림 파는 가게 하나 없다. 넓은 대로 옆에는 유럽풍의 보기 좋은 빌딩들이 즐비한데 지하도 외에 긴 대로에 건널목 하나 없는걸 보면 시민들을 위한 도심설계는 아니다. 깨끗해서 시야는 좋다. 믿을만한 소식일까만은 대통령의 집에서 집무실까지 논스톱으로 차량 이동을 하기 위해서 그랬단다.
석유가 생산되는 아제르바이잔은 얼핏 경제적으로 어렵지 않아 보인다. 랜드마크를 형성하는 빌딩들이 많아서인지 어떤 이들은 바쿠를 아랍 에미레이트의 두바이에 비유하지만, 기후만 놓고 본다면 두바이는 아웃이다. 여름의 기온은 비슷한데 건조한 바쿠에 비해 두바이는 호흡하기가 곤란할 정도로 기온과 습도가 높아 에어컨 없이는 살 수가 없다. 거기에 비하면 사계절을 다 만날 수 있는 바쿠는 천국인 셈이다.
하지만 천국 같은 바쿠에서 하악~ 하악~~ 덥다. 오후 4시가 되어가는 시간, 지하도만 들어가서 건너가면 푸니쿨라를 탈 수 있는 승강장인데, 해변공원에 있는 카펫박물관 앞에서 더 이상 갈 수 없다고 두 손을 다 들고 주저앉아 버렸다. 그늘 벤치에 예쁜 여자 아이와 할머니가 산책을 나왔나 보다. 사람 구경하기 어려운 이 더위에 기어갈 의욕도 없다면서 사람을, 아니 아이를 보니 정말 힘이 솟는다.
이럴 때 짧은 러시아말은 너무나 유용하다. 러시아말을 정책적으로 쓰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아제르바이잔 정부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러시아 말과, 언어의 구조가 비슷한 터키말로 외국인과 소통을 하고 있었다.
공원에서 만났던 할머니와 손녀
할머니와 아이에게 가지고 다니는 초코바를 건네며 이별 인사를 대신했다. 푸니쿨라를 타기 위해 지하도로 들어가니 지하도가 특급호텔의 로비처럼 반짝반짝 빛이 난다. 푸니쿨라승강장에 도착하니 월요일은 운행을 안한다. 푸니쿨라를 타고 올라가면 우리나라의 현충원 같은 순교자 묘지까지 다녀 오려던 계획은 망가졌다.
내려와서 아쉬움에 뒤를 돌아보니 푸니쿨라 승강장 아래서 바라본 불꽃타워는 역시 아름답다. 불꽃을 형상화해서 빌딩까지 올린 바쿠는 역시 불의 땅이다. 조로아스터교가 성했던 아제르바이잔에서 맨땅에서 불이 활활 타오르는 장면을 조로아스터는 보았을까?
바쿠 시내를 다니다 보면 심심치 않게 큰 현판에 붙어있는 인물을 볼 수 있다. 누구냐고 물었더니 현 대통령의 아버지라고 한다. 놀랍게도 현재의 대통령은 세습된 대통령인 셈이다. 반면에 최저 생계가 보장되고 의료와 교육은 무상이며 각종 사회보장제도가 발달해있는 흔치 않은 국가 중의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