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만치 너머 바닷길에 걸려 있는 국경만 아니라면

# 한국의 섬 - 소청도

by 그루

백령도에 간다


비행기를 타고 가는 제주도를 제외하고 한국에서 가장 많은 시간 배를 타고 가 본 섬은 10여 년도 더 전에 가본 울릉도였다. 포항에서 타고 들어갔으니 서울에서 포항까지 가는 시간이야 더 걸렸지만 약 2시간 반의 배 타는 시간은 짧지 않게 느껴졌다. 이제는 인천에서 페리로 약 4시간이나 걸리는 서해 5도에 속한 백령도와 대청도, 소청도를 간다. 여행 준비를 하면서 서해 5도를 알아봤더니 백령도와 대청도 소청도 외에 의외로 인천과 가까운 연평도와 우도를 말한다. 매일 기상청에서 나오는 서해 5도를 이제야 인식하다니, 내 나라 땅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이 한심했다.



아직은 동트기 전인 5시 40분에 인천 연안 터미널로 향했다. 집이 경인 고속도로로 바로 진입이 가능한 지역이라서 시간은 넉넉하겠지 생각했지만 역시 대한민국의 새벽은 분주했다. 도착하니 터미널 앞 해장국집의 불빛이 눈에 들어온다. 새벽부터 문을 연 주인장에게 고마워하며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주인장 내외가 없는 손님을 이제나저제나 기다리는 모양새다. 뜨거운 굴 해장국 한 입 들어가니 여행에 대한 의욕이 다시 깨어난다.

연안 여객 터미널은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간다. 조심스럽게 움직이는 우리 같은 여행자도 있지만 대부분 섬과 관련이 있는 이들이거나 군인들이다. 옹진군에서 관광객 유치 차원에서 한시적으로 여객 운임을 50퍼센트 할인하는 제도는 아직도 운영이 되고 있었다. 평일 4박 이하라는 조건이 있지만 비행기 값과 비슷한 운임을 반값에 이용하는 것은 퍽 매력적이다. 부러운 것은 인천 시민은 놀랄 정도로 싼 값에 여객선을 이용한다.

아침 7시 50분 발 대형 페리 하모니플라워호에는 생각보다 많은 인원이 승선했다. 멀미할까 봐 눈을 감아도 긴장하고 있으니 잠도 안 온다. 3시간이 조금 지나니 소청도 내릴 준비를 하란다. 백령도 다녀오는 길에 들를 곳이어서 관심 있게 살펴보니 섬의 오른쪽으로 하얀색 분바위가 보이고 소청도 등대도 보인다. 소청도에서 10여분 더 가니 대청도이다. 지척으로 보이는 두 섬은 같은 생활권인 대청면에 속해 있다. 대청도에서 30여 분 더 가면 백령도에 도착한다.

소청도, 대청도, 백령도에서 보이는 것은 황해도 땅이다. 배로 약 한 시간 남짓 걸릴 거라고 한다.


일정은 4박 5일, 백령도에서 2박, 대청도에서 2박을 했다. 섬 여행은 기상으로 인한 변수가 많지만 12월 3일 치러진 수능으로 인해 변수가 생겼다. 왕복 일자가 바뀌는 일은 아니었지만 백령도, 대청도, 소청도로 계획한 여행 계획은 백령도, 소청도, 대청도로 바뀌었다.


소청도


백령도에서 2박 후 배로 30여분 거리의 소청도를 오전 7시 첫 배로 건너왔다. 이른 아침 탑동 선착장에서 승객은 내리지 않는데 백령도와 대청도에서 보낸 스티로폼 상자들이 내려지고, 소청도에서 인천으로 가는 홍합이 들어있는 박스들이 배로 올라온다. 배에서 내리면 여느 섬과는 달리 옹기종기 모여 앉은 마을의 알록달록한 지붕들은 보이지 않는다. 작다는 뜻(소청도)을 가진 이름과는 달리 낯선 기운이 강한 것은 짙푸르고 거친 산세 때문인가, 얇은 안개까지 올라와 있는 을씨년스러운 십이월의 이른 아침 때문 일지도 모르겠다.

대청도의 1/4에 불과하지만 길은 꽤 경사가 가파르다. 섬 전체가 산이다.


경사가 있는 산등성이를 하나 넘으니 산자락들이 만나는 골에 예쁜 예동 마을이 밝고 아늑하게 앉아있다. 민박집은 물론 보건소와 출장소, 작은 성당과 교회, 2020년도부터 입학생이 없었다는 소청 분교까지 있다. 소청도의 다운타운이다. 테니스장까지 갖추어진 분교의 주인 없는 마당엔 날카로운 겨울 빛만이 가득하다.

마을을 거닐다가 교회 옆 언덕에 있는 김대건 신부의 동상 앞에서 잠시 앉아있으니 동네 주민들에게 필요한 공지사항이 시시콜콜 스피커에서 흘러나온다. “주민 여러분, 인천 행 배가 한 시에 도착하오니 그전에 항구에 홍합을 갖다 놓으시기 바랍니다.”, “주민 여러분,....” 동안의 얼굴을 한 김대건 신부 동상 아래 볕 좋은 언덕에 앉아 귀를 쫑긋 세우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마을의 살림살이를 한참이나 듣고 있었다.


예동에서 다시 한 능선을 넘으면 노화동 마을이 나온다. 갈대 노蘆자를 썼으니 갈대꽃이라는 뜻인데, 예전에 마을 주변에 갈대꽃이 많았나 보다. 예동에 비해 활기는 덜하지만 바닷가로 열린 차분한 느낌의 작은 마을은 잘 정돈이 되어 있다. 마당에 풀어놓은 아침 일찍 따온 홍합 더미와 빨랫줄에 걸려있는 말린 홍어들은 물론 담벼락 밑 텃밭에서 자라는 이파리들이 풍성한 상추까지 마치 마을을 장식하는 소품 같다.

노화동 마을 스케치

아름다운 소청도 등대

섬의 서쪽 끝 등대까지는 멀지 않아 걷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후딱 다녀올 수 있는 거리이다. 아침나절 섬의 능선을 타고 걷는 호젓하고 아름다운 길에서는 누구라도 쉬엄쉬엄 가고 싶어 진다. 특히 첫 번째 정자가 있는 곳에서 오른쪽 해안절벽을 타고 가는 지름길은 잊을 수 없는 해안 풍경이 펼쳐진다. 해발 83미터 절벽 위에 서 있는 말쑥하다고 해야 할 만큼 멋진 등대는 생각보다 규모가 크다. 1908년에 세운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 오래된 등대라고 한다. 마치 아침 손님을 기다린 듯 우리를 위해 마련된 벤치에 앉으니 대청도의 삼각산과 눈이 마주친다. 잘생긴 대청도를 바라보며 따뜻한 차라도 마시면 딱 좋을 것 같은 낭만적인 장소이다.

등대 가는 길, 정자가 나타나면 오른쪽 절벽 길로 접어들면 지름길이다. 멋진 해안선 풍경은 덤. 조심해서 가야한다.


등대를 다녀온 후, 예약한 민박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최근 섬 여행을 하면서 알게 되었는데, 먹을 곳이 갖추어지지 않은 작은 섬에서는 숙박과는 관계없이 민박집에서 밥을 먹을 수 있다. 물론 그 전날이나 적어도 몇 시간 전에는 미리 예약을 해야 한다. 먹을 때마다 육지와 다른 밥상은 감동을 주었다. 어느 곳이든 비싸지 않은 가격에 그 섬만의 이야기가 있는 통통한 생선과 해조류가 상에 올라오는 것은 기본이다.


민박집에 들어서니 어제 잡아왔다며 크고 실한 꽤 많은 우럭을 손질해서 햇빛에 말리느라 주인장 아저씨가 분주하다. 알고 보니 낚싯배 선장님이 운영하는 민박집이다. 사리(바닷물이 가장 많이 들어오고 나가는 시간) 때라 물고기가 안 잡힌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그것도 소청도 바다에서는 예외인 모양이다. 김장철이라 갓 버무린 겉절이까지 올라온 밥상을 받았다. 단언컨대 민박집에서 먹을 수 있는 밥상은 작은 섬에서 누릴 수 있는, 외면할 수 없는 소박한 성찬이다.

민박집에 막 걸어놓은 우럭들. 우럭이 이렇게 예뻐보이기는 처음이다. 큰 것도 많지만 예쁜 아이들만 찍었다.


분바위 그리고 스토로마톨라이트stromatolite


분바위, 설명하지 않아도 바위가 분을 바른 것처럼 하얗다는 뜻이 아닌가. 내가 섬에 자꾸 끌리는 부분 중 하나는 매우 직관적인 표현을 한 이 땅의 이름들이다. 예를 들면 강화도에서 한 시간 정도 가면 닿는 주문도에 가면 뒷장술과 앞장술 해변이 있다. 뒷장술은 뒤에 있으니 아름다운 일몰을 볼 수 있는 곳이고, 앞장술은 앞에 있으니 일출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이처럼 섬은 우리의 예쁜 옛 말들까지 살아서 숨 쉬는 곳이라는 것을, 작은 섬 하나만 돌아봐도 금방 알 수 있다.


점심을 먹고 섬의 서쪽 끝에 있는 등대와는 반대 방향으로 나 있는 분바위를 향했다. 가는 길에 만난 주민에게 방향을 물으니 알려주시면서 한참 가야 한다고 덧붙인다. 오르락내리락하는 길을 따라 섬의 동쪽 끝자락에 있는 분바위 안내 표지판 앞에서 만나기로 약속한 소청도 지질공원 해설사님을 만났다. 해안 쪽으로 내려가니 한 눈에도 캐 들어간 흔적이며 버려진 돌덩이들이 대리암 채석장의 모습이다. 그것도 귀한 흰색 대리암이었다. 이탈리아의 흰색 카라라 대리암을 사랑한 미켈란젤로와, 일제강점기에 일본 사람들이 탐욕스럽게 채석해가는 광경 등이 한순간에 스쳐 지나갔다.


한반도에서 석회암 지역은 강원도 영월, 삼척, 태백과 충청도 제천, 단양 등을 비롯해 여러 곳 있지만 대리암은 거의 분포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백령도로 가는 길에 소청도를 지나올 때 유난히 하얀 해안 절벽을 보면서도 “저곳이 분바위란 곳이구나, 진짜 하얗긴 하다” 하며 대수롭지 않게 지나쳤다. 분바위가 대리암일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대리암이 아니고도 흰색 절벽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기 때문이다.


물이 들어오면 검정색으로 보이는 홍합들은 물에 잠긴다. 멀리서 보면 흰색만 보이는 분바위, 월띠라고도 부른다.


대리암의 색깔은 다양한데, 미켈란젤로의 작품에 사용된 이탈리아 토스카나에 있는 카라라 Carrara 대리암은 눈처럼 흰 대리암으로 유명하다. 이탈리아에서 국가적으로 수출이 금지되어 있는 품목이기도 하다. 분바위의 대리암이 내 눈에는 카라라의 대리암 이상이었다.

탄산칼슘이 침전하여 석회암이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대체로 낮은 바다에서 죽은 산호나 조개류 등의 유해가 쌓여 생성되는 퇴적암인 석회암과, 석회암이 온도나 압력 등의 강한 작용에 의해 변한 변성암인 대리암은 주로 유럽에서 많이 확인되었다. 그래서 유럽에는 석회암이나 대리암을 사용한 건축물들이 많다. 이처럼 대리암은 건축재나 조각의 재료로 안성맞춤이지만 채석은 까다로워 반 이상은 버려지는 걸로 알려져 있다.


분바위를 따라서 걷다 보면 바다풀들과 각종 조개류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볼 수가 있다. 마침 물이 빠지는 시간이어서 분바위 전체를 감상하며 해안선을 따라 한 바퀴 돌아 나올 수 있는 행운을 누릴 수 있었다. 때로는 빽빽한 홍합 위를 걸어야 했는데 단단한 포도 위를 걷는 것과 같은 느낌이다. 마치 아름다운 바닷속에 있는 홍합 밀도가 매우 높은 도시가 하루에 두 번씩 얇은 베일을 벗는 이벤트랄까, 바닷물이 빠지는 시간이 되면 분바위 아래로 경이로운 홍합 마을의 장관이 펼쳐진다.


물이 빠진 얕은 바닷속 홍합마을


대리암이 채석된 흔적 옆에는 다채롭게 표현된 추상화와 산수화를 연상시키는 스트로마톨라이트 stromatolite라는 일종의 석회암 바위 화석들이 널려있다.

시아노박테리아 Cyanobacteria는 약 30억 년 전에서 35억 년 전 원시 지구의 얕은 바다에서 태양빛과 이산화탄소를 이용하여 최초로 광합성을 하여 산소를 배출한 원핵 생명체이다. 햇빛이 비치면 광합성을 하여 산소를 배출하고 해가 지면 주변의 모래나 진흙 등을 매어 놓아서 아름다운 띠 모양의 문양들을 만들어 내었는데 이것이 스트로마톨라이트이다. 이들은 27억 년 전에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였으며 이들로부터 바다는 산소를 얻을 수 있었다. 축적된 산소는 약 6억 년 전 이후 대기 중으로 퍼졌으며 이후에 진핵세포가 생겼다. 그러므로 시아노박테리아가 사는 스트로마톨라이트는 녹색 지구를 형성함에 있어 공헌도가 으뜸이다. 스트로마톨라이트는 현재 지구 상에서 거의 사라졌지만 호주의 샤크 베이와 소청도, 영월 등에서 발견되었다. 소청도 지질공원 해설사님의 말씀에 의하면 소청도의 스트로마톨라이트는 8억년~10억년전 생성되었다고 한다. 지금도 1년에 약 1mm씩 자라고 있는 스트로마톨라이트가 있는 이곳은 지구의 살아있는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귀한 곳이다.


스트로마톨라이트, 현지인들은 굴딱지바위라고 부른다고..


일제강점기는 물론 수십 년 전까지도 대리암은 물론 많은 양의 멋진 스트로마톨라이트들이 일본의 정원석이나 건축자재 그리고 박물관 등으로 반출되었다고 한다.


소청도에는 철새 연구소가 있다. 하하~


분바위를 돌아보고 천천히 걸어도 좋은데 해설사님께서 철새 연구소까지 태워다 주신단다. 일반인은 들어갈 수가 없지만 새 연구소가 있다는 말에 그냥 건물이라도 보고 싶었다. 역시 차를 타자마자 타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청도의 고갯길 경사는 장난이 아니다.

바람이 불지만 철새 연구소 앞 벤치에 앉아 작은 배낭에 가져온 음료와 빵을 먹으면서 우리 집에 자주 찾아오는 박새와 참새, 딱새 등 새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나름대로 의미 있는 방문이다. 아쉬운 마음을 그렇게 달래고 있는데 연구소에 근무하는 주민 한 분이 반갑게 맞아주신다. 문을 닫은 것을 알고 왔으니 괜찮다고 했더니 소청도의 철새들에 대해서 간단히 설명해 주신다. 많은 종류의 철새들이 중국과 시베리아는 물론이고 알래스카에서 번식한 새들이 바다를 건너 이동할 때 먹이와 물을 찾아 쉬는 휴게소 같은 곳이며, 많은 텃새들도 서식하는 매우 중요한 곳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소청도에서 무엇이 좋았냐고 하신다.


분바위와 스트로마톨라이트에 대한 놀라움을 이야기했더니 또 다른 아름다운 해변이 있다고 하시면서 차에 타란다. 엉겁결에 오전에 다녀갔던 등대 옆에서 내렸다.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을 따라 내려간 곳은 오목 해변이다. 보라색의 크고 작은 둥근돌들이 해변에 깔려있다. 보라색의 돌이라고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오직 석영뿐인데 더 이상 알 수가 없다. 짧은 지식은 생각의 확장에 장애가 된다.

오목 해변의 보랏빛과 연둣빛 돌


소청도를 걷고 있으면 지나가던 차를 얻어 탈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처음에 지질공원 해설사님의 차를 얻어 탔을 때는 호의에 어쩔 줄을 몰랐었는데, 두 번째 다른 이의 차를 얻어 탈 땐 험한 소청도에서 배려하는 마음은 일상이라는 것이 어렴풋이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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