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이곳에서 포효하는 법을 잊었다.

#한국의 섬 - 백령도

by 그루


한동안 백령도는 내게 먼 이야기였다. 그냥 페리도 아니고, 갑판으로 나가지도 못하는 고속페리를 4시간이나 탄다는 것은 멀미를 하는 내게 쉽지 않은 여행지였다.

이른 아침 인천 연안여객터미널에서 첫 배를 타고 소청도와 대청도를 거쳐 백령도에 들어왔다. 대청 군도(백령, 대청, 소청도)에서 섬의 크기를 비교할 때 소청도의 4배는 대청도이며 대청도의 4배는 백령도라고 했다. 백령도에 적을 두고 사는 사람들이 많긴 많나 보다. 여객선에는 여행자보다 군인들과 현지인들이 훨씬 많아 보인다.


12시경 남한 서북쪽 맨 끝에 있는 섬 백령도 용기포 선착장에 도착했다. 다른 섬에 비해 규모가 꽤 커 보이는 터미널 앞에서 예약한 렌트 차량을 인수했다. “길은 아주 잘 되어 있습니다. 조심할 것은 딱 한 가지예요. 속도만 지켜 주시면 됩니다.”



렌트 회사의 말대로 백령도의 길은 아주 잘 닦여 있었다. 보호해야 할 군사도로가 많아 내비게이션에 안 나오는 경우는 많지만, 대부분 목적지에 쉽게 접근이 가능했다. 걷거나 현지의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여행지를 이해하기가 빠르다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꼭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 여간해서는 차량 렌트를 하지 않는다. 하지만 백령도는 길은 좋지만 공용버스의 운행 횟수가 적고 택시가 발달하지 않았으며 차가 없으면 여행의 효율성이 떨어질 수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관광 포인트는 사방에 산재해 있으며 여행자가 필요한 숙소와 음식점, 마트 등은 대부분 백령도의 시내에 속하는 진촌리 지역에 있다. 다른 지역에 있다가 밥을 먹기 위해 진촌리로 돌아와야 하는 경우도 생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아직까지 코로나 19 확진 자가 한 명도 없는 청정지역 주민들과의 거리두기였다.

일단 진촌리로 들어왔다. 밥을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파리바게트와 카페 베네까지 있는 육지에 있는 작은 면소재지 분위기다. 이틀 동안 세 번이나 찾은 파리바게트의 빵도 매번 새로운 빵으로 채워지는 것을 보면 인구 약 5,000명에 약 5,000명의 군인들까지 합하면 일 만여 명이 이용하는 곳이니 평소에 인파가 북적거릴 정도는 아니어도 젊은 열기가 더해져 꽤 활기찬 거리의 모습일 것이다. 거리 간판에 눈이 꽂혔다. ‘청춘 싸가지’ 푸핫, 맘에 든다.

유명한 사곶 냉면집에 들어갔다. 다른 곳에서 한두 번 맛본 황해도식 메밀 냉면의 맛은 역시 그대로이다. 요리란 재료가 갖고 있는 고유의 맛을 살리지는 못할지언정 해치면 안 된다는 생각이어서 심심하다 싶을 정도로 자극적이지 않은 음식을 좋아한다. 육수는 강하지 않으며 면발은 부드러워 섬세한 식감을 느낄 수 있다.


냉면집의 홀은 우리뿐이어서 여행 팁을 좀 얻을까 해서 지도를 펼쳤다. 추천 루트를 물었더니 사곶 해변을 보고 콩돌해안 쪽으로 가서 남포리에 들렀다가 시간이 되면 중화동 교회까지 다녀오고, 내일은 심청각에서 사자바위를 보고 두무진 쪽으로 가라고 한다.


백령도


백령도의 영혼, 사곶 해변

진촌리에서 사곶은 지척이다. 사곶 해변을 어쩌다가 두 번 방문하게 되었다. 첫날은 입구에서 군인들의 제재를 받았다. 내일 오후까지 군인들의 훈련이 있다고 한다. 다음 날 늦은 오후 다시 찾은 해변은 훈련이 끝나 철수하는 차량들이 줄지어 달려오고 있었다. 해변에서 달리는 4W 군용 차량들의 행렬은 사곶 해변의 성격을 그대로 말해주는 것이 아닌가. “고마워요. 수고했어요” 하는 마음으로 철수하는 군인들의 뒤통수에 목례를 하고 넓고도 넓은 단단한 해변으로 달려 나갔다. 해변의 길이가 끝이 안 보일 정도로 긴 해변은 꽤 있지만 해변의 폭이 약 200미터로 수평으로 시원하게 뻗은 해변은 거의 보지 못했다.


사곶해변은 지구 상에서 매우 귀한 규조토 해변으로 유명하다. 규조토는 바닷물이나 호수에 분포하는 플랑크톤의 일종인 규산질로 된 단단한 껍질을 가진 죽은 규조류가 쌓인 퇴적물로 분말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입자가 곱다. 요즘 물을 빨아들이는 발매트에도 많이 사용하는 규조토는 물기와 만나면 흡수가 빠르고 매우 단단해진다. 이곳이 천연비행장으로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은 규조토 해변이기 때문이다.


뛰어도 보고 발자국을 내려고 꾸욱 눌러봐도 자국이 남지 않는다. 그냥 콘크리트 아스팔트 위에 입자가 고운 단단한 모래층이 덮여있다고 생각될 정도다.

백령도는 1991년에 시작해서 1993년 3년간의 공사 끝에 엄청난 양의 개펄을 땅으로 바꾸었다. 화동과 사곶 사이의 간석지를 매립해서 땅과 저수지를 만들었다. 원래 C자형이거나 ㄷ자형인 섬의 모양은 ㅁ자형이 되었으며, 날렵한 새 한 마리는 암탉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농사를 지을 땅이 절실했던 것은 한국전쟁 이후 인구의 유입이었다. 곧 돌아갈 것처럼 통통배를 타고 30여분 자신의 고향과 가장 가까운 백령도에 들어온 실향민들은 아예 터를 잡고 살아야 했기 때문이다. 지도 한가운데 있는 북포리는 포구였을 것이다. 지도에서 새로 만든 땅과 저수지를 들어내고 보면, 고구려 시대에는 곡(고니 곡)도라고 불렀고 고려시대부터 백령(깃 령)도라 했던 그 모습 그대로, 날렵하게 날개를 펼친 한 마리의 새 모습이다.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옛날을 상상하는 것은 항상 내 몫이다.


전망대에서 본 사곶해변, 물이 들어온 풍경


늘 그렇듯이 변화는 도미노 현상처럼 또 다른 변화를 동반한다. 다소 지나친 것이 아닌지(지나치다고 말할 어떤 자격도 없다), 간석지의 개발 이후 사곶은 바다 쪽으로 길게 나온 유려한 ‘곶’의 형태를 잃었다. 파도는 해변에 베일을 드리우듯 다가온다. 그는 이곳에서 포효하는 법을 잊었다.


이유는 확실하지 않다고 해도 수평선이 장관인 해변의 지반은 서서히 물러지고 있다고 한다. 부디 아직은 유효한 공항 식별 부호 K-53, RKSE를 가지고 있는 아름다운 천연비행장의 역할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백령대교 건너자마자 나오는 해안 풍경, 돌이 수북한 것은 바위에서 떨어져 나온 것이다. 소주병들이 예쁘게도 앉아있다.


사곶에서 남쪽으로 다리를 지나 연결된 해변을 콩돌 해변이라고 부른다. 우리나라에서 몽돌해변은 쉽게 찾을 수 있는데, 몽돌이 서로의 마찰로 더 둥글고 작아진, 마치 콩처럼 보이는 돌들이 깔려있는 해변이다.

모래가 퇴적되어 만들어진 입자가 거칠고 연한 사암이, 높은 열이나 압력으로 인해 주요 성분이 석영인 강도가 강한 규암으로 변하는데, 콩돌 해안의 콩돌은 규암이다. 누구나 한 번쯤은 만져봤을 매끈매끈한 차돌이 곧 규암이다. 매우 단단하여 풍화에도 강한 편인데 대청도의 랜드마크인 서풍받이도 규암 덩어리 절벽이다.

약간의 관심만 있으면 백령도 해변에서는 바위에서 풍화와 침식으로 부서진 바위들이 떨어져 자갈이 되고 콩돌이 되어가는 과정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콩돌의 크기가 왼쪽이 크다. 파도에 의해 분리가 된 것이다. 너무 예쁘지 아니한가, 부디 주머니에 넣어가지 않길
확연하게 파도에 의해 계단처럼 분리된 콩돌 해변의 작은 콩돌과 큰 콩돌


콩돌해안에서 가까운 남포리 습곡 구조용트림 바위 건너편의 대형 습곡 구조의 형태를 한 절벽을 말한다. 물이 빠졌을 때 바닷가로 내려가야 제대로 볼 수 있다고 한다. 사진으로 보니 규모가 큰 모습이 내려가서 보면 장관일 것 같다. 이곳처럼 큰 습곡은 아니지만 습곡구조로 보이는 해안가의 절벽들이 남포리 일대에서 보인다.

습곡구조란 지각변동으로 옆에서 힘을 받아 지층이 물결처럼 휘어진 것을 말한다. 습(주름 습)곡(굽을 곡)이란 ‘주름처럼 굽어있는’ 이란 뜻이다. 왜 우리는 이런 어려운 용어를 계속 사용하는지 모르겠다. 학자가 아닌 일반인이 쉽게 이해하는 우리말을 사용하면 얼마나 좋을까, 안내판의 fold(또는 folding)라는 옆에 병기한 단어를 보고 나서야 의미를 알 수 있었다.

남포리 해안가 풍경, 오른쪽 절벽에서 지층이 휘어진 습곡구조가 보인다.
용트림 바위(왼쪽 아래)와 해안

두무진


두무진 해안은 사곶해변과 더불어 백령도를 대표하는 곳이다. 다음날 아침 심청각에 들렀다가 바로 두무진으로 향했다. 육지로 쑥 들어온 작은 만으로 이루어진 두무진 항구는 한눈에도 배들이 안전하게 접안하기 좋겠다. 인적 없는 항구를 지나 왼쪽으로 향하니 두무진 해안으로 이어진다. 입구부터 보이는 층리가 발달한 암석에는 규암 특유의 반질반질함은 살아있지만 수직으로 갈라진 미세한 틈이 많다. 나이를 많이 먹었다는 증거이다. 벌어진 암석은 언젠가는 떨어져 내릴 것이며 풍화와 침식 마찰을 거쳐 자갈로 변하고 마침내는 모래로 변할 것이다. 지구가 살아있다면 그 모래는 다시 퇴적이 되어 가는 순환의 시계를 탈 것이다.


전망대에서 잘 생긴 바위의 장엄한 위용은 보는 이를 압도한다. 아직도 기세가 살아있는 노익장의 모습이다. 광해군(1575~1641, 재위 1608~23) 때 백령도에서 4년(1620~1623) 동안 유배 생활을 한 이대기(1551-1628)는 그의 저서 <백령도지>에서 두무진을 ‘늙은 신의 마지막 작품’이라고 했다고 한다. 형형함이 하늘을 찌르는 두무진 풍경을 찰떡처럼 표현했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보니 당시로는 드문 고령의 나이(유배 시절 그의 나이가 70대 말이었다)였던 그는 위엄이 넘치지만 주름지고 갈라진 두무진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의 모습과 동일시해서 자연스럽게 터져 나온 감탄처럼 느껴졌다.

장군처럼 보이는 이들의 몸에는 수없이 많은 균열이 보인다.


두무진 해안은 10억 년 전 약 50미터 정도의 낮은 바다에 모래가 퇴적되어 만들어진 사암이 고열과 압력으로 인해 변한 규암이다. 이것이 땅 위로 융기하여 오랜 시간 비와 바람과 파도에 의해 약한 부분은 떨어져 나가고 파여서 절벽과 동굴과 아치와 촛대바위 형태, 즉 시스택 Sea Stack을 만들어냈다.

두무진을 향하면서 2월에 다녀왔던 홍도를 떠올렸다. 두 지역의 기반암은 사암과 규암이다. 이곳을 보기 전에는 두 곳의 느낌이 비슷하리라 생각했지만 달랐다. 홍도의 해식 풍경이 아름다운 여인이라면 두무진의 그것은 초로의 멋진 신사라고나 할까, 홍도가 뛰어난 화가가 모든 능력을 다해 화려하게 완성한 12폭 병풍이라면 두무진은 돌의 물성을 해치지 않고 조심스럽게 깎아낸 말을 아끼는 조각가의 작품이다.


홍도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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