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신처럼 의연하지만, 따뜻한 피가 흐를 것 같은 그녀

# 한국의 섬 - 어청도

by 그루


자동차 안에서 숨 쉬고 있는 것이 신기하리만큼 대한민국 3월 말의 하늘은 미세먼지 수치가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어느 곳으로도 도망가지 못하도록 전국은 황색으로 뒤덮였다. 수치상으로는 어청도 인근에 있는 외연도도 마찬가지였다. 군산까지 왔지만 그나마 청정기가 있는 서울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팬데믹이니 되도록 사람들을 피해서 섬을 방문하는 편이지만, 그래도 그렇지 날짜 한번 더럽게 잡았다.


이른 아침 군산 여객선터미널에서 아침 8시 하루 한차례 어청도로 출항하는 배를 기다렸다. 조금 있으니 텅 빈 대합실로 일하러 들어가는 길인지 외국인 청년 한 명이 들어온다. “어디에서 오셨어요?” 하고 물었더니 스리랑카에서 왔다면서 집에 다녀오는 길이며 연도에서 일한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밝은 에너지가 넘쳐 보이는 청년을 막 들어오는 아주머니께서 반색한다. 잘 다녀왔냐며 아들을 반기듯 따뜻하게 맞아주는 모습에 가슴이 뭉클하다.

몇 개월 전, 강화도의 석모도 바람길을 걷던 참이었다. 어류정 항구에서 30대 정도로 보이는 한국인이 “야이, x새끼야” 하면서 큰 소리로 욕을 연거푸 해대는 거다. 지나가던 내가 민망해서 돌아보니 어구를 만지면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를 부르는 거였다. 그들을 지나치고도 한동안 뒤통수에서 연신 들렸던 “x새끼야” 는 욕하던 한국인이 외국인 노동자를 늘 부르던 이름이었다. 노여움과 미안함으로 벌겋게 달아올라 마음속으로는 그에게 수 없이 돌을 던지고 있었지만 아!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군산여객터미널에서 싹싹한 청년을 아들처럼 보듬어주는 연도 아주머니와 스리랑카 청년의 모습은, 모욕적이고 불쾌했던 어류정항의 기억 위로 살포시 내려앉았다.



출발한 배는 한 시간쯤 후 연도에서 짐과 승객들을 내려놓고 어청도로 향한다. 스리랑카 청년은 자기 동네에 온 것처럼 자유롭게 주민들과 어울리면서 하선한다. 마중 나온 트럭에 짐을 싣고 운전석 옆자리에 올라탄 청년의 모습이 안 보일 때까지 한 참을 바라보았다.


어청도는 군산에서 72Km 떨어져 있으며 연도를 거쳐 2시간 40여분이 걸렸다. 이날의 파도는 1에서 0.5m로 멀미 기운 없이 가볍게, 이 섬을 발견한 전횡장군이 ’아! 푸르다 ‘라고 감탄했다고 하는 어청於靑도에 도착했다. 푸른 것은 누가 봐도 푸른 섬인걸, 한복과 김치, 심지어는 윤동주 시인까지 중국인으로 만들어가는 중국인들의 생떼가 생각나, 굳이 기원전 중국 사람인 전횡장군과 엮어놓은 섬의 이름이 목에 가시가 걸린 것처럼 수용하기가 싫다.


전횡장군의 사당인 치동묘淄東廟가 있는 어청도나, 해마다 그의 제사가 열린다는 이웃한 섬 외연도는 우리 땅과는 72Km 내에 불과하지만 중국 땅과는 약 300Km에 달한다. 살아남기 위해 멀리 피신하는 것이 아니라면 다음을 도모하고자 하는 장군이 해야 할 행동이 아니기 때문이다.

전횡은 초한전쟁(기원전 206년~기원전 202년) 때 결과적으로 항우의 편에 서서 한나라의 유방과 각을 세웠던 제나라의 왕이었다. 그는 전쟁의 막바지에 유방을 피해 자신의 수하 500여 명과 섬으로 들어가 피신했다. 유방은 위험인물인 전횡을 회유했으나 그는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이를 안 500여 명의 부하들은 모두 전횡의 뒤를 따랐다고 한다.

2000년도 더 전에 있었던 충과 의를 결합한 극적인 요소가 살아있는 죽음에 관한 비장에 찬 이야기는 시간이 지날수록 감동은 더해져 산동과 어청도 외연도를 오가는 상인들 사이에 전해지고 전해졌을 것이다. 지도를 찾아보니 아니나 다를까 옛날 제나라 땅이었던 중국의 산둥성山東省 지모시卽墨 앞바다에 전횡도가 있었다.


중국 산동성 앞 바다 전횡도 위치, 구글지도에서 캡처


한국민속대백과사전에 의하면


‘전횡이 은거한 곳은 외연도나 어청도가 아니라 산둥반도 연안의 섬으로, 중국의 산둥성(山東省) 지모시(卽墨市) 동부 해안에 자리한 전횡도를 일컫는다. 이 섬의 위쪽에 있는 오백 장령의 무덤은 가장 유명한 역사유적이다. 후세 사람들이 전횡과 그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친 오백 열사의 충성과 의리에 감동하여 전횡도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처럼 전횡이 피신한 섬이 엄연히 존재함에도 외연도 또는 어청도로 알려진 까닭은 지리적인 위치상 산둥반도와 빈번한 교류가 이루어졌음을 방증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아울러 이러한 연고성은 전횡이 신격화되는 중요한 단초가 되었다. 무엇보다 전횡과 그를 따르는 무리의 의로운 죽음은 섬 주민들에 의해 해원의 필요성이 제기되었을 것이고, 결국 풍어의 신으로 수용되기에 이르렀다.’

어청도

항구에 내리면 바로 눈앞에 근대적인 개념의 이름을 한 민박집 신흥상회 간판이 먼저 들어온다. 이곳에서 숙박을 하지 않더라도 매표를 하는 곳이니 한 번쯤은 들르게 되는데 1층에는 슈퍼도 운영하며 종류는 많지 않지만 빵도 구워 판다. 빵 만드는 것에 관심이 있어 요기가 될 것 같은 길쭉한 빵 안에 소가 뭐가 들어있는지 물어보니 친절하게 알려주신다. 내가 굽는 빵처럼 모양이 들쑥날쑥하지 않을까 했는데 웬걸 모양은 그 유명한 군산 이성당 빵의 모양에 뒤지지 않는다. 배는 고프지 않지만 맛을 보려고 단팥빵 두 개를 집어 들었다.

배에서 내려 오른쪽으로 난 길을 따라가다가 미리 생각해 둔 민박집 문을 두드렸다. 섬에서 밥을 먹으려면 예약을 해야 한다. 예약도 없이 아직 이른 시간이지만 마치 집에 돌아온 것처럼 갑자기 점심을 요구하니 한쪽 팔을 다치셔서 일을 못 나가셨다는 민박집 아주머니는 없는 찬을 걱정하신다. 실제로 예약이 없는 이상 대부분의 민박집은 주인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하러 나가시기 때문이다. 가시리와 거북손으로 끓인 국이 있는 소박한 밥상을 받았다. 섬에서 먹을 수 있는 따뜻한 밥상은 언제 먹어도 감동이다.

대한민국의 울타리 섬 어청도


군산에서 북서쪽의 외딴섬인 어청도는 우리나라 직선기점(영해기점)이 되는 곳이다. 직선기점이란 해안선이 복잡할 때 맨 바깥쪽에 있는 섬들을 직선으로 연결한 것이다. 이러한 섬들을 직선기점이라고 하는데 직선기선에서부터 바깥쪽 12해리(약 22Km)가 그 나라의 영해가 된다. 일본이 그 넓은 남쪽 바다에 암초를 인공적으로 만든 것이나, 현재까지도 인공 섬을 만드는 중국의 행태가 그들의 영해를 넓히기 위한 것이다.


대한민국은 소령도부터 서격렬비열도, 어청도, 상왕등도, 홍도, 가거도, 절명서, 장수도, 거문도, 간여암과 홍도 영역까지의 섬을 연결해 직선기선을 만들었다. 직선기선은 곧 대한민국의 울타리인 것이다. 그런데 조금만 들여다보면 서쪽 해안의 직선 기선이 덕적군도의 소령도에서 단절되어 있다. 중요한 서해 5도 즉 백령도나 대청도가 직선기선에 빠져 있는 것이다. 직선기선이 없으니 누군가가 따지고 들면 영해도 모호하다. 그야말로 뚫려있는 울타리다. 중국이나 북한에서 인천 앞바다도 너네 바다가 아니라고 달려들면 합리적인 설득이 불가능한 것이다.


서해 5도에 무엇보다 시급하게 해결해야 될 문제가 아닌가 한다. 어쩌면 중국의 꽃게잡이 어선들의 마구잡이 조업이나 서해교전 같은 북한의 행패는 어떠한 조치도 하지 않고 있는 대한민국이 빌미를 만든 셈이다.

대한민국 직선기선


새들의 섬 어청도


섬은 뒤집어진 U자 모양으로 많은 배들의 피항이 가능한 구조를 하고 있다. 아직은 썰렁한 민박집에 배낭을 던져놓고 밖으로 나와 몇 발자국 떼기도 전에 맑은 바람결에 움직이는 새들의 움직임이 포착된다. 몸집이 아주 작은 딱새들이 일하러 나간 주인이 없는 민가의 뜰에서 놀고 있는 것이다. 딱새는 텃새이기도 하지만 나그네새이기도 하다. 암컷과 수컷의 날개에 있는 흰색 반점은 딱새를 알아보는 포인트이다. 사람을 보고도 피하지 않는 것이 “역시 새들의 섬, 맞구나!” 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어청도에는 산책할 수 있는 구불길 4개의 코스가 있지만 긴 구간이 아니며, 어떤 방향으로 가든지 길이 연결된다. 해양경찰서 옆으로 난 해안선에 놓인 데크 쪽으로 해서 가다가 왼쪽 산으로 올라가면 섬의 능선을 따라 걷는 길이 나온다.

목넘 쉼터 부근에 있는 멋진 바위 사이에 파도에 밀려와 쌓여있는 많은 양은 아니지만 쓰레기 더미가 보인다.


어느 해안이든지 치워도 다시 밀려오는 것이 해양쓰레기들이다. 조류의 흐름에 따라 우리나라의 쓰레기가 일본이나 태평양 쪽에서 많이 나타나는 것을 보면 대체로 중국 쪽에서 밀려오거나 조업에서 사용하다 버려진 스티로폼들이다. 어디에서 왔던지 쓰레기는 바로 수거해야 하지만 주민들의 역량만으로는 쉽지 않아 보인다.


이런 절경에 쓰레기 더미가 보였다. 왼쪽 쓰레기 더미는 잘라냄
이런 능선을 따라 걷는다. 여름을 제외한 계절에는 최고의 트레킹 코스이다.


섬 트레킹의 즐거움은 사방에 바다가 펼쳐진 능선을 걸을 수 있는 것, 해안가 길을 빼면 뒤집어진 U자 모양으로 구부러진 산 능선을 따라 걷는 길이다. 육지에서는 벌써 없어진 진달래가 능선 길을 안내한다.


우리나라 지도 모양의 지형을 보면서 올라가다가 외국인 한 분을 만났다. 미국인이라고 한다. 한 손에 얼핏 보니 Bird's of Korea 문고판 조류도감을 들고 있는 것이 탐조하러 오신 분이다. 인사를 했더니 등대 가는 길에 유리딱새를 많이 보았다며 책을 펼쳐 ‘Red-flanked Bluetail’이라고 알려준다. 이름만 봐도 유리딱새는 붉은 옆구리와 푸른 꼬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듯 새 이름만 알아도 새의 생김새를 유추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 그녀는 며칠 전 들어왔는데 10일 후 다시 방문할 거라고 한다. 4월 중순 경 이동하는 새들을 관찰하려는 것이다.


내국인들처럼 무리를 지어 다니지 않으니 충전하기 위해 잠시 쉬어가는 새들에게 스트레스가 덜할 것이다. 조심스럽게 다가서는 이들의 새에 대한 사랑과, 인내를 동반한 노력에 존경을 보낸다. 조용하게 새를 관찰하는데 살짝 방해가 되었겠다. 어디에선가 유리딱새를 만난다면 아마도 봄날의 어청도 그녀가 생각날 것이다.


유리딱새는 여름에는 핀란드 캄차카, 사할린 등에서 번식하고 겨울에는 중국 남부와 인도차이나에서 지낸다고 한다. 유리딱새뿐이겠는가, 게다가 유리딱새를 비롯한 많은 나그네새들은 아주 작다. 어른 유리딱새도 꼬리까지 합쳐 봐야 약 14Cm 내외에 불과하다. 이런 손가락만 한 새들이 봄과 가을로 두 번씩이나 머나먼 바다를 통과한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5월 4일 오늘 다음Daum에서 본 기사에 의하면 바다를 건너오면서 에너지가 방전되어 간신히 상륙한 나그네새들을 노리는 족제비(야행성 동물)가 대낮에도 새들을 위협한다는 기사가 떴다. 원래 있던 개체가 아니라면 배를 통해 들어와서 어청도의 상위 포식자가 된 것이다.

어청도에서 이틀 동안 한 번씩 그녀와의 짧은 만남은 나를 탐조인의 세계로 한 발짝 더 들여놓는 계기를 만들었다. 그녀가 보여준 LG상록재단에서 출간한 Bird's of Korea를 눈여겨두었다가 서울에 돌아오자마자 구입했다. 진박새와 검은머리딱새는 책을 구입하고 나서야 알았다.

3월 말경, 어청도에서 만난 새들


새에 관심이 많지만 적극적으로 탐조활동을 하는 것은 아닌지라 탐조인들이 주로 방문하는 4월과 5월을 피해 방문한 것인데 3월 말경 인대도 만날 수 있는 새들은 의외로 많다. 딱새를 비롯해서 박새와 송골매, 멧새, 진박새, 검은머리딱새 등의 새들이 인적 없는 구불길에서 친구가 되어준다. 후투티는 여러 번 본 적이 있지만, 어청도에서 만난 후투티는 미국인인 그녀 말대로 처음 보는 빅~ 후투티이다. 사람을 경계하기는커녕 마치 나와 숨바꼭질하는 몸짓이다. 앞에서 힐끗거리며 앞서가다가 큰 날개를 펼쳐 날아서 옆으로 빠지더니 다시 나타나 앞서곤 하는데, 한 번 해본 솜씨가 아닌 듯 제법 날 가지고 논다.


어청도 구불길에서 우리를 인도하는 후투티


3월 말의 어청도는 놀러 온 사람이 미안할 정도로 섬 전체가 분주하다. 홍합 철인지 항구에는 어른 주먹 두 개를 합쳐 놓은 것만큼 큰 홍합이 잡혀 올라온다. 대부분의 어부들이 어청도 주민들로 보이는 것이 서해 먼바다여서인지 다른 섬에 비해 외국인 근로자가 많지 않다.


실제로 주민들의 생활은 정말 바쁘다. 한 가지 예를 들자면 이른 아침 군산에서 출발하는 사람이 어청도에 도착하여 점심을 먹기 위해서는 민박집에 점심 예약을 해야 한다. 예약을 하지 않으면 밥을 먹을 수가 없다. 그 이유는 주민들의 대부분은 일하러 나가고 집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섬 안의 대부분의 민박집과 중국집의 대문에는 휴대폰 번호가 붙어 있다.

묵었던 민박집은 해양경찰서가 있는 마을길에 있다. 섬에 도착해서 점심을 먹기 위해 민박집 안채의 문을 여는 순간, 구조가 군산의 일본 가옥에서 보았던, 현관문을 열면 바로 양쪽의 방이나 복도로 올라가는 문이 있는 일본식 구조였다. 집을 새로 짓기 위해 자재를 들여오는 것이 쉽지 않은 먼바다에 있는 섬에서 일제 강제병합 당시의 집 모양이 남아있는 것이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도 섬 안에 당시의 흔적은 의외로 많이 남아있다고 한다. 거문도나 나로도처럼 항구로 개발하여 일본인들을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기에 집단으로 이주시켰기 때문이다. 그만큼 일본은 어청도에 탐욕의 족적을 많이 남기고 떠났다. 마을 성당이 있던 자리에는 일본 신사가 있었다고 한다. 이곳에 곤삐라(꼬리에 보석을 단 뱀이나 악어 형상을 했으며, 항해 안전을 지켜주는 신)를 모셨는데 일본인들은 어청도를 곤삐라こんぴら金毘羅·金比羅섬이라고 불렀다.

어청도 마을길, 마을길을 포장하고 있었는데 지금쯤은 포장이 끝났겠다.
마을의 중심, 어청도 초등학교
팔각정에서 내려다본 깊은 만과 마을

팔각정은 섬의 중심이다. 어디에서나 왔던 길을 돌아보고 그렇게 크지 않은 섬을 바라보면서 한 숨 쉬어갈 수 있는 구조이다. 이곳에서 항구 쪽을 바라보고 오른쪽은 한반도 지형이 있는 검산봉과 독우산 방향이고, 왼쪽산길은 봉화대가 있는 당산 198m 방향이며, 뒤쪽으로 가면 어청도 등대가 나온다. 깊은 만으로 이루어져 더욱 안전해 보이는 항구가 있어 아늑해 보이는 마을과, 마을 사람들의 식수인 저수지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등대로 가는 길은 호젓한데 풀 섶에서 먹이를 열심히 찾으면서 흘깃거리는 멧새와 잠시도 멈추지 않는 딱새들이 친구가 되어 준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나그네새들이 많이 오는 4월이나 5월에 올 것을.

어청도 등대


드디어 섬의 북서쪽 방향에 서있는 어청도 등대를 만났다. 대부분의 한국인은 일제 강제 병합이라는 트라우마를 지니고 살아간다. 그 어느 땅보다 심각한 그 시절의 상처를 안고 있는 곳이 어청도이다. 19세기 말부터 우리 땅 연안을 측량하기 시작하였다니 그들의 침략은 바다를 포함한 우리 섬들을 능욕하는 것부터 시작되었다. 그들에게 어청도는 수산물 수탈은 물론 고래잡이와 중국 땅을 향한 매우 중요한 군사적 전진기지였다. 그들의 야욕을 위하여 소청도나 어청도의 아름다운 우리의 등대는 일제에 의해 20세기 초에 세워졌다. 이후 대한민국은 등대의 위치를 옆으로 옮기거나, 디자인을 보완하는 등의 작업이 있었다. 일제의 강압에 의해 섬 주민들의 피와 땀으로 만들어졌을 너무나 아름다운 우리의 등대를 보고 있으면 어떤 말도 필요하지 않다.

등대 앞에서 깔깔거리며 꽤 오래 머물렀다. 쾌청한 날씨 때문이었을까, 여신처럼 의연하지만 따뜻한 피가 흐를 것 같은 그녀의 몸은, 가까이 다가서면 고단한 세월의 흔적이 느껴진다. 얼마나 힘들고 외로웠을까. 스스로 극복하고 당당한 카리스마와 밝은 아우라가 넘치는 등대는 이유도 없이 자랑스러웠다.

죽어가는 소나무들


어청도는 “아! 푸르다.”라는 뜻이다. 얼마나 푸른 섬인지,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가 있을까.

푸르다는 것은 바다를 포함한 섬 전체를 가리킨다는 것을, 겨울에도 숲이 깊어 검게 보일 정도로 푸른 대청도와 소청도를 다녀온 뒤에야 알았다. 하지만 어청도를 푸른 섬으로 만들어주었던 소나무들은 어찌 된 일인지 고사목이 되어있었다.


처음에는 뭣도 모르고 바다를 배경으로 한 멋진 고사목을 향해 포커스를 맞췄다. 몇 그루의 잘생긴 고사목이 아니었다. 섬 전체에 죽어서도 꺾이지 않고 서있는 고사목들이 가득하다.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검푸른 섬을 만들어주었던 섬에 가득했던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재선충으로 인해 죽어가고 있다고 한다. 아니 거의 살아있는 소나무들은 보이지 않았다. 재선충은 솔수염 하늘소나 북방수염 하늘소 등에 기생하며 이것들을 통해 나무에 옮겨진다고 한다. 동네 공원에도 재선충 감염 예방을 강조하는 팻말이 붙어있었지만 섬 하나에 있는 거의 모든 소나무들을 도륙하다니, 이토록 치명적인 줄은 몰랐다. 언젠가 스치듯 봤던 재선충으로 인해 소나무가 멸종될 수 있다는 뉴스는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그다음 날도 민박집에서 아침을 먹고 산책을 나선 눈에 비친 어청도의 아침은 그야말로 일사불란했다. 정박했던 배들은 섬의 남자들을 태우고 어디론가 우당탕탕 출항을 해버리고, 집안의 어머니들은 어떤 분은 바지락을, 좀 젊은 분은 홍합을, 어제저녁 들렀던 중국집 아주머니는 문을 잠그고 오토바이에 어구를 싣고 부르릉 작업장으로 홍합을 채취하러 나가신다.

모든 주민들을 일하러 내보내고 갑자기 조용해진 새소리만이 들려오는 어청도 능선에서 외지인 둘만 남아 텅 빈 섬을 지키고 있는 느낌이다.

정적에 빠진 섬의 능선을 올라타고 다니며 작은 야생화들을 들여다보며 걷고, 10cm 안팎인 새들의 몸짓에 귀를 기울이고, 포착하고, 엿보는 것이 이처럼 즐거운 것인지 이제야 알았다.

어청도에 가면 어청도의 과거와 현재의 상태를 알 수 있는 ‘고래잡이’와 ‘새’에 관한 안내가 되어있다. 고래잡이는 일본의 수탈에 의해 시작된 사업으로 다행히 20세기 후반 막을 내린 과거의 어청도였다면, 나그네새들의 천국 어청도는 어청도의 현재이며 미래이다.


“영국인 환경운동가 나일 무어스 Nial Moores에 의해 2002년 어청도에서 서식하는 228종의 새가 국제조류보호협회에 소개되었다. 남반부에서만 서식하는 군함조를 비롯하여 검은머리딱새, 검은꼬리사막딱새, 검은머리멧새라는 희귀조가 소개되어 국제적으로 큰 뉴스가 되면서 어청도는 탐조의 세계적 명소가 되었다”


어청도에 들어가면 볼 수 있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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