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방 하나 있나요?”, “음, 방은 있는데, 배표 예약을 했어요? 배표부터 알아보시고 전화 주세요.”, “아!, 그렇군요. 그럼 배표 예약하고 다시 전화하겠습니다.”
날씨가 화창하지는 않지만 파도는 잔잔할 것 같았던 5월의 어느 날, 미뤄둔 숙제 같았던 굴업도를 가기 위해 굴업도 민박 주인과 통화를 했다. 그리고 배 예약사이트에 들어가서 보니 인천과 대부도 방아머리 선착장에서 덕적도까지 가는 배의 좌석은 있지만 하루에 한 번 덕적도에서 굴업도까지 운행하는 나래호의 표는 매진이다. 알고 보니 덕적도에서 덕적군도 5개 섬을 하루에 한 번 순환 운행하는 나래호는 정원이 120명 정도인데 주말은 물론 평일까지도 시간을 두고 예약을 하지 않으면 표를 구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그렇게 굴업도는 욕망과 함께 당분간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가을장마가 내리던 9월 초, 내일은 비가 그친다는 예보를 들었지만 세찬 바람과 굵은 빗줄기는 저녁나절이 되어도 쉬어갈 줄을 모른다. 굴업도에 가려면 홀수 날이 좋지만 당장 비가 그친다는 내일은 굴업도까지 운행시간이 오래 걸리는 짝수 날이다. 아름다운 바다를 보기 위해 유람선도 타는데 소요시간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배표 예약을 하고 민박집에 전화예약을 했다.
내게 섬 여행은 이처럼 갑자기 실행하는 경우가 많다. 목적지에 따라 날씨는 물론 바람의 세기뿐 아니라 조수간만의 차이까지 염두에 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경우를 따지고 목적지에 도착해도 그곳에서 하루 이틀 잡혀 제시간에 육지로 나오지 못한 경우도 생긴다.
인천에서 아침 8시 30분 배를 타고 약 1시간 후 덕적도 진리항에 도착했다. 선착장 바로 앞에 있는 분식집에서 주인아주머니의 진심이 느껴지는 따끈한 잔치국수로 아침을 대신했다.
망구 할매의 바다, 덕적군도
울도선 나래호는 덕적도 앞바다의 섬들을 순환 운행하는 배로 홀수 날에는 덕적도, 문갑도, 굴업도, 백아도, 울도, 지도, 문갑도 덕적도 순으로, 짝수 날에는 반대로 덕적도, 문갑도, 지도, 울도, 백아도, 굴업도, 문갑도, 덕적도 순으로 운행한다. 굴업도까지 홀수 날 출발은 1시간 10분 정도 걸리지만 짝수 날에는 2시간 이상 걸린다. 그러므로 홀수 날 굴업도행 표는 빨리 매진된다. 홀수 일에 들어가고 짝수 일에 나오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지만 모든 상황이 맞아떨어질 수는 없다. 오늘은 짝수 날임에도 불구하고 배에 오른 인원이 만만치가 않다.
배에서 쉬는 것은 잠시 2층 뱃전에서 오랜만에 만나는 푸른 하늘과 바다를 배경으로 떠 있는 섬들을 놓칠세라 쉴 틈 없이 사진을 찍어댔다. 바다에 뿌려진 34개의 아름다운 무인섬들과 선갑도(현재는 무인섬)를 포함한 7개의 유인섬은 망구 할매가 치마폭에 흙을 가득 담아 산을 쌓다가 무너지는 바람에 선갑도의 바다로 흩어져 내려 덕적군도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러니 선갑도는 망구 할매의 작업장이었으며 덕적군도 신화의 고향이다. 덕적군도는 망구 할매의 바다다. 비가 온 후 개인 푸른 하늘과 바다가 배경이 되어 뱃전에 기대거나 서성이거나, 전부 선남선녀로 보였다. 나래호는 유람선에 다름 아니다.
선단여
응회암으로 이루어진 기차바위가 있는 백아도 선착장을 지나 말로만 듣던 ‘선단여’를 만났다. 선녀가 붉은 눈물을 흘렸다는 곳으로 ‘여’는 바위를 지칭한다. 바다에 떠 있는 모습이지만 여타의 돌기둥(sea stack)과는 달리 바위의 아래 면이 넓어 안정감을 준다. 그래서 더욱 웅장해 보이며 위엄까지 서려있는 바위 표면에는 풍화와 침식에 의해 잘라진 면은 물론이고 태곳적에 만들어진 주상절리 기둥의 틈이 선명하다. 용암이 급격하게 식으면서 3각에서 6 각형, 7 각형까지 다양한 각으로 형성된 주상절리는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진 대표적인 암석 모양이다. 한반도에는 교과서에서 배운 화산지형인 백두산과 제주도, 울릉도와 한탄강 지역 외에도 형성 시대가 다른 화산지형은 의외로 많다.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백아도에서 살던 어린 남매는 어느 날 부모를 잃었다. 이를 안 외딴섬에서 살던 마귀할멈이 여동생을 몰래 데리고 달아났다. 세월이 지나고 청년이 된 오빠는 풍랑을 만나 오른 이름 모를 섬에서 자신의 여동생을 만나 사랑에 빠졌다. 이를 안 하늘이 대노하여 마귀할멈과 남매를 번개를 내려 죽게 했는데 그곳에 솟아난 세 개의 바위를 보고 선녀(仙)들이 슬퍼하며 붉은(丹) 눈물을 흘렸다’는 전설이다.
덕적군도의 창조자였으며 누구나 숭배하는 거인 여신이었던 망구 할멈이 선갑도에서 덕적도 바다의 섬들을 만들었던 시간보다 얼마나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선단여 설화에서 창조 여신이었던 할멈은 어느새 아이를 약탈하는 쪼그라진 마귀할멈으로 전락했다. 모계사회에서 남성 중심의 관습이 만들어지던 부계사회가 된 것이다. 사람이 귀한 섬마을에서 부모가 없는 아이를 약탈하는 풍습이 있었을까, 게다가 근친상간에 대한 경고 치고는 벼락으로 쳐 죽이는 내용이 너무 쇼킹하다. 바닷속에서 솟아난 3개의 아름다운 모뉴먼트에 잔인하고도 섬뜩한 이야기를 씌워놓았다.
선단여
드디어 굴업도
선단여가 멀어질 즈음 오후 1시 35분 굴업도에 도착했다고 내릴 준비를 하란다. 11시 20분 덕적도에서 출발했으니 두 시간도 넘는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선착장 오른쪽으로 왼쪽 사구와 연결된 밝은 모래 빛이 수평선처럼 보이는 굴업도 목기미 해변이 다가온다. 손님들을 맞으러 온 민박집 트럭만 보이지 않았어도 빛에 이끌리듯 해변으로 달려갔을 것이다.
차로는 잠깐, 걸어서도 15분이면 닿는 둥근언덕으로 올라가다가 왼쪽 해변 쪽으로 움푹 파인 분지에 옹기종기 집들이 모여 있는 이곳이 유일한 마을(큰말)이다. 민박 주인아주머니께서 안내한 숙소는 소나무 숲이 그늘을 드리운 허름한 간이숙소지만 해변을 품에 안았다. 왼쪽으로 토끼 섬까지 이어진 큰말 앞의 넓고 긴 해변은 평화롭고 곱다. 밀려오는 파도마저도 서서히 녹아내리는 아이스크림처럼 부드럽다. 방문을 열면 한 가득 들어오는 풍경 앞에서 마치 굴업도에 온 것이 이곳에 머무르기 위해서인 것처럼 가슴이 벅차올랐다. 오래전 방문했지만 아직도 가끔 마음을 흔들 만큼, 숨을 멎게 만들었던 몰타의 슬리에마의 바다만큼 아름다웠다. 뭔 복인지 비바람이 지나간 후 첫날인 데다 짝수 날이어서 오늘따라 우리 방과 이어진 숙소에는 손님이 없다.
숙소 앞 큰말 해변
바다를 바라보며 한동안 뭉그적거리다가 오후 3시경 숙소를 나섰다. 주인아주머니께 연평산과 덕물산을 보고 개머리 언덕을 갈 거라고 했더니, 말수가 적은 아주머니께서는 별다른 설명도 없이 대뜸 덕물산보다는 연평산을 먼저 다녀와서 개머리 언덕을 올라가라고 하신다. 늦게 나섰으니 아마도 시간 계산을 해서 말씀해주신 것 같다. 그리고는 가는 뒤통수에 툭 내던지듯 하신 조심하라는 말이 귓등에서 떠나질 않는다.
15분 정도면 닿을 수 있는 목기미 해변 가는 길, 5센티미터는 족히 돼 보이는 메뚜기들이 포도에서 9월의 따가운 볕을 즐긴다. 길 옆 양쪽 공터에는 분리수거된 플라스틱 통들이 산처럼 쌓여있다. 이미 굴업 마을에 폐를 끼치고 있는 나 자신이 몸 둘 곳을 모르겠다.
굴업도는 동(북동) 쪽에서 서(남서) 쪽으로 길게, 팔과 다리까지 쫙 벌린 형태의, 사람이라기보다는 짐승에 가까운 생명체처럼 엎드려 있다. 목기미 해변 왼쪽에 사구를 두고 앞을 바라보면 왼쪽에는 연평산, 오른쪽에는 덕물산이다. 바다 위에 떠 있는 신기루처럼 하얗던 목기미 해변의 완벽한 호선은 덕물산까지 뻗어있다. 왼쪽 사구 옆 해변도 물때에 따라서 작은 석호가 되는, 또 다른 목기미 해변이다. 1Km에 달하는 목기미 해변은 굴업도의 동 섬(북동쪽)과 서섬(남서쪽)을 연결해주는 완벽한 사주였다.
긴 해변, 모래에 아랫도리가 파묻힌 전봇대가 듬성듬성 서있다. 목기미 사주에 줄지어 서 있는 전봇대는 건너편 동 섬까지 전기가 연결되었으며 한 때는 민어 파시로 떠들썩한 마을이 있었다는 굴업도 과거의 흔적이다.
텅 빈 공간인 하늘과 해변을 배경으로, 짐을 실은 트랙터 한 대가 지나간다. 트랙터를 따라가는 내 눈에 포착된 것은 트랙터 뒤에 실린 스티로폼으로 만들어진 둥글고 하얀 부표 몇 개와 쓰레기를 담은 포대다. 트랙터는 오는 길에 봤던 분리수거 야적장으로 갈 것이다.
덕적군도를 순회하는 나래호를 채운 손님들은 매일 많게는 백여 명 이상, 적어도 수십 명은 굴업도에서 내린다. 민박을 이용하는 몇몇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은 개머리 언덕으로 향하는 백패커들이다. 박지를 선점하기 위해 바로 개머리 언덕으로 가기도 하지만 일부는 도착하는 날 점심은 민박에서 먹고 개머리 언덕으로 올라간다. 이들은 편의시설이 전무한 아름다운 언덕에서 먹고 마시고, 싸는 행위와 함께 추억을 쌓는다. 바람과 풀벌레 그리고 별과 함께 보내는 황홀한 밤을 위하여 바리바리 싸들고 올라간 식품과 음료를 담은 플라스틱과 비닐을 다시 가지고 오거나, 심지어는 똥 삽까지 가지고 다닌다지만, 결코 쉽지 않은 행위이다.
이미 어부도 농부도 아닌, 열 가구도 안 되는 굴업도의 주민들은 대부분 민박과 식당 운영을 하며 살아간다. 소위 관광업에 종사한다. 주민들은 대부분 나이가 지긋한데 내가 묵었던 민박집 아저씨는 쓰레기 수거를 위하여 도착한 날에도, 다음 날에도 트랙터를 몰고 해변으로 나가고 있었다.
전봇대와 트랙터, 멀리 오른쪽에 선갑도가 보인다.
연평산에서
연평산으로 가까이 갈수록 사주는 점점 높아진다. 모래 아래로는 짐작이 가능한 쓰레기와 로프 등의 어구들이 삐죽삐죽 나와 있다. 마음이 불편한 것은 잠시, 연평산으로 이어진 언덕까지 사구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방해받는 설치물들이 없으니 모래의 이동이 매우 활발하다. 한강 하구의 모래들이 이작도와 문갑도의 풀등을 거쳐 이곳까지 이동한 것이다. 마치 따라오라는 듯 사구 위로 사슴들의 발자국이 요란하게 찍혀있다.
이곳에서 고개를 돌려 걸어왔던 쪽을 바라보면 숨을 멎게 해주는 목기미 사주의 곡선이 시야를 사로잡는다. 바로 아래 언덕에는 사람들이 거주했던 화장실과 주택의 흔적이 남아있으며 자세히 봐야 알 수 있는 계단식 밭의 흔적도 볼 수 있다. 모래땅에서 잘 자라는 땅콩은 굴업도의 대표적인 농산품이었다.
곶의 형태를 한 동 섬의 양 끝에는 덕물산(138m)과 연평산(128m)이 솟아있다. 그 사이에 쑥 들어와 있는 해식애와 함께 있는 붉은 모래 해변이 아름답다. 파식과 퇴적 활동을 이렇게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곳이 있을까. 시간이 지날수록 절벽과 해변은 뒤로 더 물러날 앉을 것이다. 붉은 해변 뒤로는 둥근 습지가 남아있다. 습지 옆에는 마을에서 사용하는 우물이 있었다고 한다.
연평산 쪽에서/ 주민들이 일군 밭의 모습이 보인다. 왼쪽 해안은 코끼리 바위가 있는 곳
연평산쪽에서 본 붉은 모래 해변과 덕물산/ 오른쪽에 습지가 보인다.
연평산 가는 길, 남동쪽을 향해있는 소사나무군락/ 연평산은 응회암이 기반암이다.
높지 않은 연평산이지만 능선은 제법 오르내리락을 반복한다. 땅은 모래땅과 흡사해서 올라갈 때 나뭇가지나 뿌리 등을 붙잡으면 위험하다. 연평산 쪽으로 조금만 올라가서 뒤를 돌아 바라봐도 서쪽은 파식 활동이 활발한 해식애가 발달해있고 동쪽은 사구와 사주 그리고 해빈이 발달해있는 것을 구별할 수 있다. 코끼리 바위 쪽 절벽은 파도가 연거푸 베어 먹은 치즈케이크 같다. 바람과 파도가 바위만 베어 먹은 것이 아니다. 사나운 서풍으로 머리를 깎고 키를 낮춘 소사나무의 섬세한 가지들이 모두 동쪽을 향해 있다.
정상 직전에서 밝은 회색의 꽤 높은 응회암 덩어리로 형성된 바위 군이 나온다. 응회암은 굴업도의 기반암으로 화산이 폭발할 때 하늘로 솟았던 약 2mm~4mm 정도의 화산재가 퇴적되어 만들어진 암석이다. 그러므로 굴업도는 주변의 섬들과 더불어 화산섬이다. 부드럽고 고운 조직을 가지고 있으며 경도가 낮은 응회암은 예로부터 건축재로 많이 사용돼왔다. 예를 들면 아르메니아의 수도 예레반은 대부분의 건축재가 분홍색 응회암으로, ‘핑크 빛 도시’가 애칭이다.
바위마다 로프가 연결돼 있는데 조심해서 올라야 한다. 민박 집 아주머니께서 조심하라고 한 곳이 이곳이었다. 뒤 쪽에서 올라오던 한 커플이 이곳까지 왔다가 그냥 내려간다. 누구나 쉽게 오를 수 있는 곳은 아닌 모양이다. 목기미 해변에서 연평산 정상까지 쉬엄쉬엄 약 한 시간 가량 올라왔다. 그냥 단숨에 올라온다면 삼십 분 정도도 가능할 것 같다. 단정할 수는 없지만 그렇게 전투적인 사람이라도 믿을 수 없을 만큼 독특한 아름다움을 지닌 굴업도에서는 한 템포가 늦어진다.
나무 말뚝 하나가 박힌 연평산 정상에서 보니 아래에 펼쳐진 목기미 사주는 바닷물이 양쪽에서 들어와 더 가늘어져 있다. 사주가 물에 잠기면 민박집이 있는 서섬으로 갈 수가 없지 않나, 민박 아주머니가 “조심하라”라고 한 곳에 이것도 포함이다. 바닷물이 높아지는 사리 때의 밀물에는 물에 잠길 것이다. 일몰 시간에 맞춰 개머리 언덕까지 가려면 서둘러야 했다.
아름다운 목기미 사주
개머리 언덕
개머리 언덕을 가려면 목기미 해변에서 숙소가 있는 큰말 해변 오른쪽으로 난(땅 주인인 CJ에서 만들어놓은) 울타리 문을 통해 언덕으로 올라야 한다. 다른 길도 있지만 모두 이곳을 통해서 올라간다. 대기업이 만들어놓은 작은 문을 통과하면서 썩 좋은 것은 아닌, 형언하기 힘든 묘한 기분이 든다. 나는 매일 CJ택배를 받고, e마트에서 쇼핑을 하고, 비비고 만두를, 육개장을 먹으며, 오늘은 CJ가 만든 울타리 안으로 들어간다.
굴업도는 오래전 안면도, 부안과 함께 핵폐기장 건설 부지로 선정되어 힘든 시간을 보냈다. 2018.10.24. 경향신문 기사에 의하면 ‘사용한 핵폐기물은 100만 년 이상 방사능 수치가 나오며 발생한 열을 식히지 못하면 폭발할 수도 있다고 한다. 적어도 10만 년 이상은 격리시켜야 한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러한 어려움으로 미국을 비롯한 어떤 나라도 영구처리시설이 아직까지 제대로 만들어진 예가 없다’고 했다. 국민 전체가 사용하는 에너지를 만들고 나온 폐기물을 일방적으로 한 지역의 희생을 강요했으니 약 2500여 명 덕적군도의 주민들을 비롯하여, 20여 명에 불과한 굴업도 주민들은 당시 상황을 얼마나 감당하기가 힘들었을까. 불행 중 다행으로 핵 폐기장 건설 사업은 사업을 하기 위해 한 지질검사에서 발견된 활성단층으로 1996년 핵 폐기장 건설계획이 취소되었다. 활성단층이란 지진을 일으킬 수 있는 단층을 말한다.
굴업도의 아름다움이 널리 알려져서였을까, 2000년대 초 CJ는 골프장과 리조트를 건립하고자 굴업도의 대부분을 매입한다. 힘없는 주민들과 환경단체들은 거대 자본과 옹진군청에 맞서 지난한 싸움을 이어왔다. 현재는 잠시 소강상태이나 어떤 형태로든 수도권과 가까운 덕적군도의 개발은 진행 중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은 그들의 이익 추구를 위해 행동한다. 그러나 그 이익은 사회로부터 얻었기에 이익의 일부는 어떤 형태로든지 다시 사회로 돌려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굴업도는 그들의 자산이기 이전에 원시 자연을 느낄 수 있는 특별한 대한민국의 국토이다. 부디 거대기업 CJ를 떠올리면 우려보다는 희망이 떠오르기를 소망한다. 그래서 앞으로 그들이 선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행보를 기대한다.
그동안 비가 많이 왔었지, 소사나무 숲 사이로 작은 계곡물이 흐르고 붉은색 도둑 개들도 산길을 오른다. 소사나무 숲만 벗어나면 금강아지풀(수크령)이 반겨주는 능선을 오른다. 지는 햇살에 반짝이는 수크령의 산들산들한 움직임에 가슴이 벅차오른다. 열이면 열 모두가 환호하는 개머리 언덕의 풍광은 한국의 산야에서는 경험하기 힘든 개방감 때문일 수도 있겠다. 수크령 사이사이 노란 금방망이꽃이 반겨준다. 조금 일찍 올라올 걸, 기다려주지 않는 일몰 때문에 금방망이꽃을 자세히 바라보지 못하고 지나쳐야 했다. 목기미 해변에서 개머리 언덕까지 약 1시간 정도 걸렸다.
언덕길에서 만난 금방망이꽃과 골등골나물꽃
개머리 언덕에 오르는 순간, 찰나였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눈앞에서 세상이 하얗게 빛이 났다. 십여 년 전 인도의 아그라에서 타지마할을 보기 위해 입구를 통과하여 타지마할을 보는 순간 느꼈던 현상이었다. 역광 때문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이곳에서는 이백 프로 감성이 지배한다.
서쪽 바다에는 섬이라고 하기에는 점처럼 떠 있는 작은 돌 섬 하나, 굴업도는 백아도와 울도와 함께 서쪽 바다의 사나운 바람을 막아주는 방파제 역할을 한다. 지도에서 서쪽으로 선을 그으면 얼추 중국 산둥반도에 닿는다. 그래서 굴업도의 서쪽 바다는 그 저 텅 빈 공간이다.
9월 초, 굴업도의 서쪽하늘에서는 6시 30분경 일몰이 시작되었다. 일몰은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는 흔하디 흔한 풍경이지만 언제나 다른 옷을 입고 나타난다. 산들바람에 움직이던 언덕 위에 가득한 수크령의 속삭임마저도 멈춰있는 듯, 날이 맑아서였을까, 마치 한지에 물감이 스며들 듯, 텅 빈 세상은 오렌지 빛으로 위에서 아래로 물들어간다. 느다시뿌리라고 부르는 개머리 언덕의 끝자락, 그것도 일몰 시각에 서쪽의 바다를 바라보고 있으면 둘이 있어도 마치 혼자인 것처럼, 세상의 끝에 있는 느낌을 받는다.
코끼리 바위와 토끼섬
아침에 일어나니 토끼섬에서 개머리 언덕으로 오르는 둔덕까지 한눈에 펼쳐진, 길이 약 400m가 넘는 해변이 지평선이 보이는 김제평야처럼 평화롭다. 멀리 선단여는 세 그루의 나무처럼 보인다. 밤새 파도소리 한 번 인식하지 못하고 잠을 푹 잘 수 있었던 것은 날씨의 덕이지만 완만하게 깊게 들어와 있는 약 300m에 달하는 해변의 폭 때문이기도 하다. 마을의 뒤쪽으로는 숲이 우거진 산이 서쪽 바람을 막아주고 앞으로는 경사가 낮고 깊은 해빈이 방파제 역할을 하는 이곳에 마을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왼쪽으로 보이는 아침의 토끼 섬은 아직도 물에 잠겨있다. 11시경에는 물이 빠져 섬으로 들어갈 수 있을 거라고 민박 집 아주머니께서 말씀하신다. 차려주는 아침을 먹고 어제 밀물로 인해 가까이 가지 못한 코끼리 바위로 향했다. 주인아저씨는 벌써 트랙터를 몰고 해변으로 나가고 계신다. 물이 적당히 빠진 목기미 해변 맞은편 석호가 있는 해변에는 다양한 연흔이 선명하다. 코끼리 바위는 한 마리의 잘생긴 코끼리가 문을 열고 나와 절벽 앞에 서 있는 모습이다. 바위는 해안 절벽에서 툭 하고 잘라져 나온 모습으로 시아치(sea arch)까지 포함한 시 스택(sea stack)이다. 부드러운 응회암이기 때문에 파식이 빨리 진행되는 듯 보였다.
코끼리 바위
코끼리 바위에 다녀와서 토끼섬을 바라보니 물이 적당히 빠져 들어갈 수 있겠다. 12시 20분경 나가는 배를 타야 해서 얼른 다녀와야 했다. 큰말 해변을 가로질러 가는 길 해안선은 갈수록 붉은색을 띤다. 왼쪽으로 난 절벽에는 분명하게 달라 보이는 세 가지의 암석 군이 이어진다. 덩치가 크고 색깔이 진하며 거칠어 보이는 맨 아래의 암석은 집괴암이며 그 위에는 밝은 색 응회암이 올라가 있다. 응회암은 수직의 절리가 발달되어 있으며, 확실하지는 않지만 화강반암으로 추측되는 붉은 암석은 곧 풍화되어 내려앉을 것처럼 잔주름이 많다. 그 해변이 붉기 때문이다.
토끼섬으로 들어가는 길은 바위들에 작은 조개류들이 빼곡하게 붙어있어 꽤 거칠며 미끄럽다. 들어오는 배 안에서 토끼섬 해식와의 사진을 찍었었는데, 정작 가까이 와서는 직접 자세히 들여다보기가 나갈 생각에 마음이 바쁘다. 간혹 토끼 섬에 들어가서 못 나오고 해경에게 구조되는 일도 생긴다고 한다. 해식동굴도 꽤 깊고 넓다. 빗줄기나 햇살을 피하기도 좋겠다.
토끼섬 가는 길의 암석군
토끼섬의 해식와/해식동
하루 더 머물고 싶어 주인 눈치를 보며 방이 있는지를 살폈지만 이미 빈방은 없을 것이었다. 마을에 들어왔을 때처럼 트럭에 배낭을 실었다. 백패커들은 개머리 언덕에서 하나 둘 내려오고, 오며 가며 만났던, 굴업도에서 두 아이에게 3박 4일의 추억을 안겨준 낭만적인 아빠는 아이들과 큰말 해변에서 마지막 산책을 한다. 그들의 발걸음을 따라 나도 해변에서 서성거렸다. 집 앞 모래땅에는 나팔꽃 같은 갯메꽃도, 노란 갯씀바귀도 보인다, 해녀들의 두통을 치유하는 보랏빛 꽃이 핀 숨비기나무를 처음 보았다. 통보리사초는 모래땅에 대대로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지 군락을 이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