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무에 둘러싸인 동백섬, '외연도'

# 한국의 섬 - 외연도

by 그루


대천에서 약 53㎞ 거리에 있는 외연도는 우리나라 서해 중부 먼바다 직선기점(영해기점)인 어청도와 지근거리에 있다. 어청도에서 바라보면 저만치 아스라이 외연도가 보였다. 두 섬은 불과 17km 거리인데, 지역이 다르다는 이유로 두 곳을 연결하는 교통망이 없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서울에서 두 시간 남짓이면 도착하는 대천은 해수욕장으로 널리 알려져 친근하지만 여객선터미널은 처음이었다. 사월의 대천 여객선터미널은 생각보다 번잡함이 없어 쾌적하다. 대천에서 8시에 출발한 페리 여객선은 호도녹도를 지나 외연도에 1시간 40여 분만에 도착했다. 먼 거리에 있는 섬을 왕래하는 여객선은 대부분 쾌속선이어서 갑판을 나갈 수도 없고 좌석에서 꼼짝없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 쉽진 않다.


서해 먼바다에서 늘 해무에 둘러싸인 모습을 하고 있는 섬은 외연도外煙島라는 이름을 얻었다. 주인 없는 민박집에 짐을 던져놓고 밖으로 나섰다. 나가자마자 마주친 작은 유리딱새들의 날갯짓에 마음이 들떴다. 외연도는 인근의 어청도와 더불어 새들의 천국이며 탐조객들이 때마다 방문하고 싶어 하는 곳이다. 약 430여 명의 주민들이 민박과 어업을 기반으로 살아간다. 길에서 만난 민박집을 운영하는 동네 아저씨가 “오월은 벌써 예약이 끝났어”라고 말씀하실 만큼, 넘치는 탐조객들로 오월이 되면 하루에 두 번 운행하는 외연도행 티켓도 구하기가 힘들다고 한다.

가장 많이 만난 유리딱새

그야말로 마을 텃밭이 새들의 놀이터다. 섬을 방문한 목적이 트레킹이라는 것을 잊기라도 한 것처럼 새들에게 조심조심 접근하는 내 발걸음이 더디기라도 하면 바로 앞에서 빨리 오라고 재촉이다. 아! 이럴 때면 눈만 나온 모자와 카고 무늬 재킷을 입고 텃밭에서 하루 종일 새들만 기다리고 싶다. 새를 관찰하는 사람은 옷은 튀지 않는 색을 착용해야 하며 움직임은 최소화해야 한다. 결국 자연을 헤치면서 전진하는 트레킹은 새들을 쫓아내는 몸짓이다. 결론을 말하면 외연도에서 하루 종일 새들의 꽁무니만 쫓아다녔다.

당산과 전횡


선착장을 등지고 파출소 쪽으로 난 길을 따라 북쪽으로 조금만 오르면 시원한 바다 풍경이 펼쳐진다. 오른쪽으로는 봉화산이요, 왼쪽으로는 당산 망재산 쪽이다. 오른쪽 노랑배와 봉화산 방향으로 길을 꺾었다. 가는 길에 나무 밑 전망대에서 이곳에서 나고 자랐다는 나이 지긋한 주민 한 분을 만났다. “어디에서 왔어유?, 이쪽으로 계속 가면 노랑배가 나오고 이 위로 올라가면 봉화산 이어유,” ‘노랑’은 암석의 색깔을 말하며 ‘배’는 배 모양을 한 깎아지른 해식애를 두고 부르는 이름이다. “소 한 마리로 제를 지내는 곳은 이곳밖에 없어” 그러면서 왼쪽 당산의 동백꽃 군락을 가리키면서 해마다 음력 2월 15일 올리는 당제 이야기를 해 주신다. 외연도에서는 이웃 어청도(치동 묘)와 함께 ‘전횡’을 모시는 사당이 존재한다. 다만 어청도에서는 당제를 지내지 않은 지 오래다. 외연도에서는 전횡을 기리는 당제를 지낸다고 알고는 있었지만, 생각보다 규모가 크고 매우 중요한 행사로 느껴졌다. 지금은 대부분 사라졌지만 그 지역과 관계된 신을 모시고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당제는 바다를 안고 사는 지역뿐 아니라 육지에서도 예로부터 행해지던 전통적인 무속행사이다.

인물 신으로 우리나라 무속신앙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사람 중 하나인 고려의 최영 장군(1316~1388)은 700살이 조금 모자란 인물 신이다. 이와 비교하니 ‘전횡’은 2,000년도 더 지난 아주 오래전에 서해 바다 고도의 신이 되었다. 용왕이나 옥황상제, 혹은 마고할미를 모신 당제가 아닌 이상 인물 신을 모신 당제로는 외연도 당제보다 오래된 당제를 찾기도 쉽지 않겠다.

상록수림 안에 있는 전횡 사당
당산 가는 길 데크에 떨어진 동백꽃

당산에는 동백나무와 후박나무 등 활엽수로 이루어진 국가에서 보존하는 상록수림이 있다. 그 기슭에는 전횡을 모신 사당이 있다. 사당은 아름다운 상록수림으로 인해 더욱 의미가 있어 보인다. ‘전횡’은 중국 제나라 사람으로 초한전쟁(기원전 206년~기원전 202년) 때 한나라의 유방을 피해 500명의 장수를 데리고 섬에 피신했지만, 섬 주민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섬을 나와 끝내 목숨을 끊는다. 이 소식을 들은 500명의 부하들도 모두 그의 뒤를 따랐다고 전해진다. 전횡이 500명의 부하들과 숨어든 섬이 인근의 어청도와 외연도라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한국민속대백과사전에 의하면 ‘전횡이 은거한 곳은 외연도나 어청도가 아니라 산둥반도 연안의 섬으로, 중국의 산둥성(山東省) 지모시(卽墨市) 동부 해안에 자리한 전횡도를 일컫는다. 이 섬의 위쪽에 있는 오백 장령의 무덤은 가장 유명한 역사유적이다. 후세 사람들이 전횡과 그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친 오백 열사의 충성과 의리에 감동하여 전횡도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처럼 전횡이 피신한 섬이 엄연히 존재함에도 외연도 또는 어청도로 알려진 까닭은 지리적인 위치상 산둥반도와 빈번한 교류가 이루어졌음을 방증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아울러 이러한 연고성은 전횡이 신격화되는 중요한 단초가 되었다. 무엇보다 전횡과 그를 따르는 무리의 의로운 죽음은 섬 주민들에 의해 해원의 필요성이 제기되었을 것이고, 결국 풍어의 신으로 수용되기에 이르렀다.’

옛날 제나라 땅이었던 중국의 산둥성山東省 지모시卽墨 앞바다에는 전횡도가 있다.


봉우리가 세 개

외연도

배에서 섬을 오르면 세 개의 산이 한눈에 들어오는데 동쪽에는 봉화산(279m), 중앙에는 당산(73m), 봉화산과 마주 보는 서쪽에는 망재산(171m)이 마을을 감싸고 있다. 탐조객이거나 낚시를 위해 들어온 사람이 아니라면 대부분 봉화산을 먼저 오른다. 그래서인지 완만한 등산로는 봉화대가 있는 정상까지 잘 닦여있다. 외연도에서 뜻밖의 발견은 동백이다. 한 번이라도 2월 말에서 3월 초에 절정인 남도의 동백꽃 터널을 걸어본 사람이라면 동백꽃을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다. 4월임에도 이곳의 동백꽃들이 제철을 만난 듯 피어있다. 동백군락은 봉화산과 당산, 망재산까지 외연도 전체에 퍼져있었다. 외연도는 그야말로 동백섬이다.

봄을 맞은 야생화들이 시선을 빼앗고, 앞서가는 새들의 꽁무니를 따라가다 보면 이내 오를 수 있는 낮은 산이지만 제법 시간이 걸린다. 마을을 감싸는 당산과 마주 보는 망재산이 보이는 조망은 더할 나위 없이 아늑하다. 고려시대(1149년)부터 어청도에서 봉화를 올리면 17km 거리에 있는 이곳에서 녹도로 봉화를 올리던 곳이다. 봉화대 옆 정상에 앉아 시원한 바다에 떠 있는 외연열도를 보고 있으니 한두 명씩 올라오기 시작한다. 같은 배로 들어왔던 사람들이다.

봉화산 오르는 길
점점이 떠 있는 외연열도/봉화산 조망

아름다운 해변


봉화산을 올라갔던 길을 그대로 내려오면 오른쪽으로 하얗게 해변이 펼쳐진다. 큰 명금, 작은 명금은 몽돌이라기엔 큰, 돌로 이루어져 있는 작은 해변이다. 섬에서 ‘금’이라 하는 지명은 작은 ‘만’을 의미한다. 드물게 멋진 해변이지만 해수욕을 즐기기에는 몽돌의 크기가 꽤 크다. 특히 돌삭금해변은 절리가 발달한 핵석 덩어리들이 너도나도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는 곳이다. 빼어나게 멋진 매끄러운 핵석의 표면은 박리현상이 뚜렷이 나타나고 있는데 밝은 색 돌덩어리의 표면을 보는 순간 ‘돌삭금’이란 지명은 ‘돌이 삭아가는 해안’이라고 생각해버렸다. 루마니아의 조각가 브랑쿠지의 작품 ‘잠자는 뮤즈’처럼 생긴 매끄러운 핵석이 단칼에 잘린 것처럼 분리되었다. 아름다운 절리가 일어난 것이다. 그 위로 살아있는 식물이 자신의 몸을 이용해 작품을 새겨놓았다. 이처럼 특별한 이미지와 마주치면, 인간이 만든 예술이라는 것이 한순간에 퇴색되어 보인다.

당산에서 누적금 해변으로 내려오는 길에 떼 지어 날아다니는 밀화부리를 만났다. 남쪽나라에서 있을법한 이국적인 모습의 새떼들은 날 매혹시켰다. 해변에서는 물질하는 사람들이 모여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휴식에 방해가 될까 봐 전횡장군의 이야기가 전해지는, 볏단처럼 생긴 누적금 바위만 멀리서 바라보고 돌아섰다.

보는 순간 브랑쿠지의 작품 ' 잠자는 뮤즈'가 떠올랐다. 아름다운 절리, 핵석이 무를 자르듯이 갈라져있다. 바위 왼쪽에 그루브가 나타나 있다.
콘스탄틴 브랑쿠지의 '잠자는 뮤즈', 이목구비가 없는 형태의 작품도 있다.
돌삭금 해변, 양파처럼 벗겨지는 박리현상의 핵석들'

고래잡이 산업과 '고래조지'

늦은 오후 민박집을 나서며 주인아주머니에게 “망재산 고래조지 다녀올게요.” 했더니 일몰까지 보고 오라고 하신다.

‘고래조지’, 직관적인 지명이 허다한 섬마을에서도 이렇게까지 입에 담을 수 없는 적나라한 지명은 처음이었다. 그래도 입 밖으로 말을 해야 길을 물을 것이 아닌가? 민망할 줄 알았지만 한 번이 어렵지 생각보다 쉽게 나왔다. “고래조지 가려고 해요. 이 길로 가는 것이 맞나요?” 등산로가 없는 망재산을 넘어가야 한다는 이야기만 들었는데, 산을 넘는 것보다 망재산 기슭을 돌아가면 된다고 한다.


풍도 인근에서 벌어진 청일 해전(1891)에서 승리한 일본은 청일전쟁(1894~1895) 이후 1898년에는 20여 호의 일본인들을 어청도로 집단으로 이주시켰으며 1907년에는 이미 약 200여 명의 일본인들이 정착해 살았다고 한다. 조선의 바다를 수탈하기 위해 준비된 이주민들이었다. 일본 신사와 술도가, 일본식 유곽까지 있었던 어청도는 고래산업의 메카였다. 광복 이후에도 어청도는 1986년 고래잡이가 금지될 때까지 고래잡이 산업이 계속되었으며 해체한 고래고기는 일본으로 수출되었다. 어청도와 가까운 외연도도 떠들썩한 고래 산업의 영향권에 있었다. 막연하지만 ‘고래조지’라는 지명은 당시 고래잡이 산업에 종사했던 사람들에 의해 불려지지 않았을까.



망재산 쪽으로 가다 보면 까나리액젓 공장이 보인다. 작은 섬에서 꽤 넓은 부지를 차지하고 있는 액젓 공장의 숨길 수 없는 모습과 냄새는 관광객이 많은 외연도에서 자칫 혐오시설로 보일까 조금 걱정은 된다.


망재산 오른쪽 기슭을 따라 고래조지 가는 길은 고라금과 사학금 해안을 지나 줄곧 해안선을 끼고 올라간다. 주민들이 땔감 채취를 위해 지나다녔다던 인적이 없는 길은 여전히 좁고 험하다.


늦은 오후의 떨어지는 햇살은 해안 기슭을 타고 군락을 이룬 동백나무들이 내뿜는 청록빛의 생동감을 배가시킨다. 붉은 꽃송이 못지않다. 해안선을 즐기면서 30여 분 산길을 걷다 보면 굴업도의 개머리 언덕을 연상시키는 초지가 나타난다. 곶의 끝부분 절벽 아래로 노란색의 암맥이 뻗어있는데 그 암맥이 고래의 성기를 닮았나 보다. 바다에서만 볼 수 있는 고래조지는 아래쪽으로 거대한 암맥이 뻗어있겠거니 하고 상상만 할 수 있다. 보령 시청 홈페이지에서 본 고래조지는 압도적으로 수긍이 간다. 혹자는 그 암맥이 앞섬까지 바닷속으로 뻗어있다고 한다. 외연열도는 물론 멀리 어청도까지 볼 수 있는 이곳은 외연도에서 가장 아름다우며, 일몰 명소이다. 민박집 아주머니께서 “일몰까지 보고 와” 라고 했던 이유이다.


고래조지 가는 길
보령시청 홈페이지에서 가져왔다. 바다에서 본 '고래조지'
앉아있는 바위가 암맥의 시작이다. 편마암에 규장질 암맥이 관입한 것으로 보인다. 지질학전공이 아니어서 확실하지 않다. 틀린 정보라면 알려주기 바란다.
왼쪽/편마암 습곡 구조가 보이는 고래조지 풍경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