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주 보고 있는 두 섬

# 한국의 섬 - 이작도

by 그루


아직 캄캄한 새벽 5시 30분, 알람 소리가 울렸다. 급히 세수를 하고 나서 거울을 보는 순간, 얼굴의 눈 아래에서 턱까지 붉은 것들이 올라와 있다. “뭐지?”어렴풋이 마스크 트러블이려니 생각하면서도 6시에는 집을 나서야만 했다.

어젯밤에 급히 결정한 이작도를 가기 위해 안산 대부도에 있는 방아머리 선착장으로 향했다. 지도를 보면 이작도를 비롯한 자월도와 덕적도, 굴업도 등 인근의 많은 섬들은 엄밀히 말하면 인천 앞바다가 아니라 시화호 방조제와 평택 항이 있는 아산만 앞바다에 떠 있다. 집에서 사십여 분이면 접근이 가능한 인천 연안 여객 터미널에서 배를 탈 수도 있지만 방아머리 선착장으로 가기로 했다. 알아보니 인천에서 타는 것보다 운행시간도 훨씬 짧다. ‘방아머리’란 디딜방아의 빻는 부분인 공이를 말하는데 방앗간과 관련이 있는 곳이거나 지형적으로 불쑥 튀어나온 부분이겠다.


7시 조금 넘어 도착한 선착장 주차장은 아직 이른 시간 때문인지 여유가 있고 요금은 2박 3일에 5,000원으로 합리적이다. 대합실 천장에는 제비가족이 집을 지었다. 새들은 사람과 가깝게 생활하는데 익숙한가 보다, 제 집을 드나드는 것처럼 대합실에서 거리낌이 없다. 천장에 매달린 제비집만으로도 즐거워졌다. 인천에 비할 수 없이 한적한 부두는 지방의 작은 선착장에 다름 아니다.

대부도 방아머리 선착장


대이작도


8시 30분 출발한 배는 승봉도를 거쳐 대이작도에 10시 10분경 도착했다. 섬에서는 손님이 많은 여름에만 민박 운영을 하는 경우가 많아 지나가는 주민에게 민박하는 곳을 아느냐고 물었더니 선착장 바로 앞에 있는 곳을 손으로 가리킨다. 선착장과 가깝기도 하고 식당을 운영하니 밥도 먹을 수 있는 곳이어서 이곳에 짐을 던져놓고 길을 나섰다.

앞마당에 나와 계신 숙소 주인아저씨께서 어디 가냐고 묻더니 타라고 하신다. 오형제 바위 쪽으로 가서 부아 산을 오를 생각이었는데 부아 산 올라가는 입구까지 데려다주시겠단다. 잠깐 타는 차 안에서 이작도가 어떠냐고 하시면서 다른 섬에 비해 깨끗하고 살기가 좋다고 하면서 섬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내신다.

대이작도는 마주 보고 있는 소이작도에 비해 넓다. 큰 마을, 장골마을 계남마을에 약 280여 명이 살고 있으니 인구도 꽤 많은 편이다. 숙소 주인아저씨 말대로 이작도는 쓰레기가 많지 않으며 대체로 정돈이 잘 되어있고 제법 윤택해 보이기까지 한다. 해류에 밀려오는 각종 쓰레기는 물론 여행객이 버리고 간 쓰레기로 인해 섬을 깨끗하게 관리하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주민들은 자부심을 느낄 만하다.

부아산과 송이산

서울에 있는 북한산을 부아산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부아’는 아기를 업고 있는 형상을 말한다. 북한산처럼 큰 규모의 바위는 아니지만 부아산 역시 거친 바위들이 많다.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바위가 많은 한국의 섬 여행은 등산화가 필수다. 붉은색 구름다리를 건너가면 정상 부근에는 규모가 큰 봉수대도 있고 여기저기 정자도 많아 등산보다는 소풍장소로 보일 정도로 잘 가꾸어놓았다. 사방으로 시야도 시원하게 뚫려있어 옆에 있는 소이작도는 물론이고 사승봉도와 승봉도 등 사방의 섬들이 보인다.

바로 아래로는 길쭉하게 드러누운 풀등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있다. 풀등이란 강물의 흐름에 따라 움직이던 모래가(해저에 높게 솟아있는 지형으로 인해) 쌓여 생기는 일종의 모래섬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커지고 단단해진 모래섬에 풀들이 자라면서 풀등이라고 불렀다. 한 강의 여의도나 밤섬, 낙동강의 을숙도처럼 강의 하류에 있거나, 섬의 해안선과 연결된 풀등은 있지만 이작도나 문갑도 앞바다의 풀등처럼 바다 위에 신기루처럼 하루에 두 번 서너 시간 썰물 때만 드러나는 풀등은 흔치 않다.

사실 나는 풀등을 보기 위해 서둘러 이작도에 왔다. 한강 하구에서 흘러와 형성된 신비로운 모랫등은 지금은 무분별한 모래채취로 인해 크기가 1/3 이상 작아졌다고 한다. 하지만 물이 가장 많이 빠지는 사리에는 폭 1Km, 길이 5Km에 달하는 거대한 넓이의 모랫등이 나타난다. 풀등을 걸어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여름철에는 피서객을 위해 작은풀 해수욕장에서 풀등까지 운행하는 배가 있다고 한다.(시즌이 아닐 때는 등산 동호회에서 모집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방법과, 개인적으로 낚싯배나 보트를 섭외할 수도 있다)하지만 내가 사람이 많은 여름에 이작도를 찾을 확률은 거의 제로였다. 그럴 바에야 그냥 풀등의 모습이나마 하루라도 빨리 확인하고 싶었다. 큰풀안과 작은풀안이라는 이작도의 예쁜 해변 이름도 풀등 안쪽에 있다는 말에서 나온 것을 보면 풀등은 이작도의 또 다른 땅이다.

바다와 풀등의 명도가 비슷해서 사진으로 나타나는 풀등은 어떻게 찍어도 형편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눈을 떼지 못하는 그곳을 향해 연신 셔터를 눌렀다.

부아산에서 보이는 풀등
대이작도에서 보이는 소이작도
부아산에서 내려오면 나타나는 작은 해안 / 송이산 오르는 길


부아負兒산 정자에서 배낭에 싸 들고 온 빵과 음료로 점심을 때웠다. 대이작도에서 제일 높은 송이산 방향으로 내려가니 작은 해안이 나온다. 부아산과 송이산은 눈대중으로 오십여 미터를 사이에 두고 바다에서 불쑥 솟아 나온 모습이다. 송이산(188.7m) 입구에서 정자까지 0.6Km라고 쓰여 있다. 송이산은 부아산에 비해 약간 더 높으며, 바위가 적어 걷기에도 편하고, 소사나무 군락지라고 하는데 하늘이 보이지 않는 빽빽한 숲길이 이어진다. 가파른 경사 길은 제법 산을 타는 기분이 난다. 부아산에 비해 알려지지 않아서인지, 산을 내려오는 동안 아무도 마주치지 않았다. 정자 외에는 별다른 시설도 없어 호젓한 산행을 즐긴다면 대이작도에서는 송이산이다.

송이산에서 내려와서 걷다 보면 섬의 잘록한 부분이 나오는데 길을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바다가 열려있다. 왼쪽으로 목장불 해수욕장, 오른쪽에는 긴 해변을 가지고 있는 큰풀안 해수욕장이다. 인적 없는 큰풀안 하얀 모래땅에 낮은 키를 한 해당화들이 붉은빛을 발하며 옹기종기 앉아있다. 얼굴을 마주하고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의외로 크게 느껴진 꽃잎 때문인가, 모란의 화려함을 걷어낸 우아함이 서려있다.

큰풀안 해수욕장 모래밭에서 만난 해당화와 갯완두


이곳을 지나 약 10분 정도 경사가 낮은 오르막길을 가다가 큰길 왼쪽으로 접어들면 해적 솔밭길이 나온다. 해적들이 다녔던 길답게 울창한 솔밭 길은 흙을 잘 다져놓았다. 대이작도에서 가장 아름답고 인상적인 길이다.

‘해적’이란 단어에 나도 모르게 어깨가 으쓱 올라오더니 입 꼬리가 올라간다. 많은 이들이 해적이란 말에 낭만과 로망을 느끼는 것은 일정 부분 이들이 영화나 소설, 만화에 등장해 따뜻한 모험가와 냉철한 히어로로 변신한 덕분이다.

어찌 보면 인간의 역사는 해상국가였던 그리스에서 바이킹, 현대의 소말리아 해적까지 해적의 역사와 맥락을 같이 한다. 이들의 도래는 스칸디나비아의 국가들과 덴마크, 아이슬란드, 영국, 러시아 등 여러 나라를 건국하기도 했지만 때로는 다른 나라를 멸망시키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예를 들어 고려 멸망의 한 원인으로 고려 말 횡행했던 왜구가 지목되었다. 당시 왜구는 순수한 해적이 아니라 일본 지방 정부의 정치적 시스템이 작동해서 움직이는 뛰어난 군사적 능력을 갖춘 무리였다.


수천 개의 섬이 있는 우리나라의 바다는 고대부터 육지와는 다른 해상세력들의 본거지이기도 했다. 근세에는 서해와 남해 특히 육지와 가까운 인근의 섬들은 임진왜란을 비롯한 국난이 있을 때마다 쉽게 피신할 수 있는 백성들의 피난처가 되었다. 해적과 양민을 콕 집어서 구분하기가 힘들다. 때에 따라서는 양민이 해적이 되는 경우는 다반사였기 때문이다. 수많은 섬들 중에서도 이작도에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여러 차례 해적에 관한 기록이 남아있는 것을 보면 이곳이 해적의 중요한 거점지였던 것은 분명하다. 해적들이 활동거점이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이작도 바다는 고려와 조선시대에 중앙정부로 드나들던 세곡선과 무역선의 해상통로였다.

대이작도보다는 소이작도에 많은 수의 해적들이 은거했다고 전해진다. 두 섬을 굳이 비교해보자면 완만하게 펼쳐져 있는 대이작도에 비해 소이작도는 지형의 높낮이가 급격하며, 휘어진 해안의 각도 또한 깊어서 해적들이 숨기에 적합해보이기도 한다. 고려 말 동해와 남해, 서해를 불문하고 육지까지 유린하던 왜구들까지도 이작도를 거점지로 삼았다.

해적솔밭길의 마지막 지점, 이곳을 지나면 계남마을이 나온다
계남마을의 해안선, 뒤로 사승봉도가 보인다


11시경 시작한 트레킹은 작은 산 두 개를 넘고 해적 솔밭길을 지나 오후 3시경 섬의 동쪽 끝자락 팽나무가 있는 계남마을에 도착했다. 섬의 반대편 숙소가 있는 선착장까지 가려면 서둘러야 했다. 다리가 피곤해지니 차량이 아쉽다. 이작도에는 펜션에서 숙박객을 위하여 운영하는 차량 이외에는 이용할 수 있는 차가 없다. 어쩔 수 없이 펜션 옆에 얌전히 쉬고 있는 차량에 눈이 간다.


계남마을은 주민들이 펜션이나 민박을 겸하고 있는 예쁜 마을 모습이다. 텃밭에는 갖가지 채소들과 토마토, 블루베리 등 과일나무들이 자라고 있는 것이 따뜻한 사람 냄새가 물씬 풍긴다. 지나쳤던 다른 마을에서도 민박이나 펜션은 휴업 중이었던 걸 보면 선착장에서 민박을 구한 것은 잘한 일이었다. 팽나무 뒤 쪽에 있는 계남분교는 김기덕 감독의 영화 ‘섬마을 선생님’ 촬영지라고 한다. 현재 이곳은 개인 사유지라고 하는데, 지나간 시간을 말해주듯 폐교는 들여다보기가 거북할 만큼 완전한 폐허의 모습으로 서있다. 마을 오른쪽으로 사승봉도가 바싹 다가와 앉아있다. 모래 사沙자가 앞에 붙은 섬답게 섬의 크기보다 모래가 쌓인 풀등이 훨씬 넓어 보이는 섬이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오는 길에 들렀던 해당화가 피어있는 큰풀안해수욕장을 지나 장골마을 가까이 있는 작은풀안해수욕장에 도착하니 오후 4시 30분이다. 작은풀해수욕장은 풀등까지 보이는 아름다운 해변에 야영할 수 있는 시설이 있어 캠핑하기에는 최고의 장소이다.

해안 동쪽에 설치된 데크 길에는 무려 25억 1000만 년 전에 형성된 국내 최고령 암석이 위치한다. 2008년 학술계에 알려졌으며 전망대 가는 길에 꽤 넓게 퍼져있다.

지구의 나이는 대략 45억 년으로 추측한다. 25억 년 전은 원핵 생명체인 시아노박테리아에 의해 태양빛과 이산화탄소를 이용하여 낮은 바다에서 산소가 만들어지던 시기였으며 대기에는 아직 산소가 없었다. 이렇게 바다에 축적된 산소는 약 6억 년 전 이후 대기 중으로 퍼졌으며 이때서야 진핵세포가 생겨났다. 시아노박테리아가 살고 있는 스토로마톨라이트는 지구 상에서 거의 사라졌지만 놀랍게도 호주의 샤크 베이와 대한민국의 소청도 등에서 현재까지도 시아노박테리아가 서식하는 스토로마톨라이트를 만날 수 있다.


이작도의 바다에 드러난 대한민국 최고령 암석을 보면서 25억 년 전 당시의 지구를 떠올려보는 것은 흔치 않은 흥미로운 상상이다.

이 길에서 대한민국 최고령 암석을 만난다


아늑한 장골마을에는 해양생태관도 있고, 장승공원에는 부아 각시, 송이 서방 장승을 만들어놓았다. 섬사람들이 부아산과 송이산을 대하는 마음이 느껴진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길 가운데로 나와 어리둥절해있는 아기두더지도 만나고, 폴짝폴짝 앞서가는 귀여운 새들도 쫓아가고, 무서운 뱀은 두 번이나 만났다. 뱀 때문이라도 등산 스틱을 가지고 다녀야 하나 하는 생각이 스쳐간다.

섬을 트레킹 하다 보면 오후에는 늘 다리가 천근만근이다. 삼신할미 약수터를 지나 부아산 자락 옆길을 내려가는 길, 걷는 모습이 힘들어 보였나 보다. 지나가던 트럭 한 대가 멈춰 선다. 운전을 하시던 작업용 햇빛가리개 모자를 쓴 아주머니께서 타라고 하신다. 얼추 15분에서 20분만 더 가면 도착할 것 같지만, 그래도 타고 싶다. 고맙다고 트럭을 보내고 나니 아주머니의 에너지 때문인지 기분이 나아졌다. 역시 사람은 사람으로 인해 행복을 얻는다.


이작도

소이작도

섬에서 매표소는 항상 문이 열려있는 것이 아니라 배 편수가 많은 섬을 제외하고 대부분 배가 들어오기 전에 문을 연다. 숙소 창에서 보이는 매표소가 열리자마자 소이작도행 표를 구입했다. 숙소와 매표소가 가까우니 편리하다.

대이작도에서 10시 40분경 배를 탔지만 소이작도에서 몸만 돌려 내렸다. 그냥 폴짝 뛰어서 징검다리로 건너온 기분이다. 두 섬의 거리는 약 200m라고 한다. 길게 마주 보고 있는 두 섬은 형과 아우, 혹은 자매 같다.

섬에 오면 일단 먹을 곳을 알아두는 것이 우선이다. 더군다나 지금은 비수기로 음식을 파는 곳이 없을 수도 있다. 섬에서 비수기에는 많은 사람들이 육지에 나가 생활을 하더라. 두 시 반에 대부도행 배를 타기로 했으니 점심 먹을 곳을 찾아야 한다. 본능적으로 왼쪽 마을 쪽으로 올라갔다. 이름도 없는 길가에 있는 간이음식점 같아 보이는 곳이 보인다. 음식 냄새가 나서 들어가 보니 오후 1시경 예약한 손님 음식을 준비하는 중이었다. 중국음식이다. 두 명인데 가능하냐고 물었더니 그 정도는 할 수 있단다. 평소 중국음식 메뉴를 좋아하지 않지만 집 나오면 종류를 안 가린다. 그리고 이곳 말고는 딱히 먹을 곳이 없어 보였다. 어딘지 모르게 매우 바빠 보이는 젊은 주인에게 짬뽕과 자장면을 시켜 놓고 1시 20 분경에 오겠다고 하고 덤으로 배낭까지 맡겼다.

선착장 오른쪽으로 가면 소이작도의 상징 손가락 바위 방향으로 데크 산책로가 이어져있다. 손가락 바위는 가까이 가서 보면 사람의 형상으로 보이기도 한다. 이곳에서 대이작도의 오 형제 바위의 앞모습을 볼 수 있다.

소이작도의 손가락 바위 / 마주보는 대이작도의 오형제 바위

봉화재 정자각 쪽을 향하면 산으로 난 길이 나오는데 이곳이 봉화재인가 보다. 가벼운 산책으로 생각하기에는 사람의 발길이 많지 않아 보이는 울창한 숲길이 꽤 가파르다. 오랜만에 보는 손님인 듯 새들도 깔깔거리며 눈앞에서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이름 모를 작은 꽃들과 눈을 마주치며 걷는 재미는 해본 사람만이 안다.

그러다가 생전 처음 보는 식물 앞에서 멈춰 섰다. 쭉 뻗어 올라온 줄기에 청록 빛을 머금은 윤택이 나는 짙은 녹색 잎들이 가지런히 달려있다. 둥글넓적하면서도 양쪽에서 모아진 잎맥이 아름답다. 연둣빛이 감도는 하얀 종처럼 살짝 길게 매달린 꽃들을 보면서 환호했다. 어린 시절 과수원에서 자라서 풀이름을 잘 알고 있는 남편은 내가 처음 보는듯한 식물을 발견하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늘 흥미롭게 바라본다. 이내 둥굴레라고 하면서도 자신 없어한다. 주저앉아 인터넷을 찾아보았더니 둥굴레였다. 5월이 둥굴레 꽃의 개화기인지 둥굴레 군락지가 이어지는데 매끈한 줄기에는 하얀 종을 닮은 꽃들이 주렁주렁 매달려있다. 이리 보고 저리보고, 한참을 둥굴레 꽃 옆에서 머물렀다.


대이작도에 비해 말끔하게 정돈된 곳이 아니어서 산을 오르는 재미도 더하다. 놀면서 정자각에 도착한 시간은 12시 5분, 손가락 바위에서부터 약 1시간 쉬엄쉬엄 올라왔다. 정자 옆에는 고목이 된 마가목에 꽃이 구름사탕처럼 달려있다. 정자각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풀등이 올라와있다. 다시 봐도 풀등은 마음이 설렌다.

마가목꽃 / 둥굴레꽃
소이작도 정자각에서 보이는 풀등


인적 없는 예쁜 마을길을 돌아다니다가 점심을 예약한 집으로 내려왔다. 생각보다 많이 기다렸다. 하지만 예전에 군산에서 먹어본 짬뽕과 수위를 다투는 맛이다. 면을 직접 뽑는 것에 놀랐으며 주꾸미가 통째로 들어가 있는 비주얼에 또 한 번 놀랐다. 맛있다고 했더니 부부가 펜션을 운영하면서 스쿠버다이빙으로 잡은 주꾸미를 얼려놓았다가 음식재료로 사용한다고 한다. 부부가 정성을 다해 음식을 준비하는 것이 느껴졌다. 앞에서 자장면도 정말 맛있다고 엄지를 치켜세운다. 다시 맛보고 싶은 맛이다. 소이작도에서 가장 큰 인상은 둥굴레와 짬뽕이었다.

배가 들어올 즈음 매표소에서 오후 2시 30분 출발하는 대부도행 표를 구입하는데 안에서 자장면집 주인이 표를 팔고 있다. 마주 보며 서로 웃었다. 이처럼 섬에서 젊은이들이 1인 다역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녀가 굉장히 바빠 보였던 이유였다.

소이작도의 맛 짬뽕과 자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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