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밤의 적막을, 어느 곳보다 눈이 부신 이른 아침을

# 한국의 섬 - 관리도

by 그루


고군산도 방문은 두 번째다. 처음에는 지나가는 길에 들린 것처럼, 엉겁결에 들어와서 대장봉에 올랐다. 방문할 때마다 생각이 더해진다. 군산群山은 항구도시지만 시내에 작은 산들이 많아 群山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고군산도의 원래 이름이 군산도群山島였다. 군산도는 가장 큰 신시도와 선유도, 무녀도, 장자도, 관리도, 방축도 등의 유인도 13개와 무인도를 합쳐 63 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세종대왕 때 수군 병영이 있는 군산도(선유도)를 우회하여 금강 인근에 상륙한 왜구의 노략질을 막고자, 진포(군산시 영화동)로 행정청이 옮겨지면서 군산도는 이름까지 따라가 도시 이름이 되었다. 그리고 무리 지어 있는 산처럼 떠 있는 군산도는 고군산도古群山島가 되었다. 그로부터 약 600년 후, 군산에서 한두 시간 뱃길로 닿을 수 있는 옛 군산은 이제 도시(군산)와 하나가 되었다.

물질의 논리대로 진행돼가는 개발 앞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니 침묵이 최선이지만, 마음 같아서는 섬들을 휘감은 인공구조물들을 걷어내고 싶다. 개발을 앞세워 토건으로 돈을 버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셈법이며 원주민들에게 개발이익이 결코 돌아가지 않는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는 진실이다. 좀 더 길게 생각하고 섣부른 개발보다는 경관을 해치지 않고 서로 공감하고 공존하는 방법을 강구하는 것은 눈앞의 이익 앞에서 생각할 수조차 없었나. 그래서 아름다운 고군산군도는 투자(기)의 몫을 빠른 시간에 얻어야 하기 때문에 다른 지역에 비해 물가가 비싸다. 하지만 여전히 진행 중인 혼탁한 개발의 색깔들이 시선을 방해한다고 해도 고군산도는, 선유도는, 대장도의 대장봉은 여전히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를 내뿜고 있었다. 예전처럼 군산에서, 아니 새만금 방조제가 연결된 신시도의 예쁜 선착장에서 강 건너듯 선유도로, 장자도로, 무녀도로 배를 타고 건너는 것을 상상한다. 대신 장자도의 작은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관리도에 간다.



10월 초인데 여름철 땡볕이다. 장자도 연안여객터미널에서 11시 출발하는 관리도행 표를 끊었다. 장자도 여객터미널은 작은 포구에 다름 아니다. 여객선이 들어올 즈음에는 다닥다닥 붙어 낚시를 하던 사람들은 잠시 피신할 뿐 여객선이 나가면 그 자리로 돌아가 낚시를 즐긴다. 지나는 길목에는 분주한 공사차량과 낚시꾼들의 차량이 잠시 뒤엉키기도 한다. 방문객이 조금만 많아져도 북새통이 일어날 것 같다. 주차를 하기 위해 한 시간이나 일찍 도착했지만 매표소 가는 길은 폭도 좁을뿐더러 낚시꾼들이 많아 주차가 가능한 곳이 아니다. 장자도 공영주차장에 주차하고, 짐이 넘치게 많다면 몰라도 600m 정도 떨어진 선착장까지 천천히 구경하면서 갈만한 거리이다.

11시 출발한 배는 도착시간이 11시 10분이라고 쓰여 있지만 3분 만에 관리도에 도착했다. 해루 질을 하기 위해 단양에서 오셨다는 나이가 지긋한 두 부부 네 명과 함께 아늑한 마을 풍경의 끝에 있는 민박집에 짐을 풀었다. 2박 3일 일정으로 들어왔으니 나갈 때도 이분들과 같이 나갈 터였다. 간이매점 역할도 하고 있는 민박집 옆으로는 캠핑장으로 오르는 길이 나 있다. 민박집 창문으로는 알록달록한 지붕이 있는 마을과 바다가 가득하다. 창문 안에 갇힌 풍경이 맘에 든다면 그것은 여행에서 덤으로 얹은 행복이다.


내가 섬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시간은 길지 않다. 그러므로 수없이 많은 섬을 여행한 것은 아니다. 그래도 가끔 가장 아름다웠던 곳을 말해달라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여수 앞바다에 떠 있는 ‘금오도’라고 주저 없이 이야기한다. 금오도 비렁길 트레킹은 아름답기로 유명한데 단체로 방문하는 분들이나 짧은 시간 트레킹을 원하는 분들은 3코스와 4코스 중심으로 걷는다. 하지만 바다로 나 있는 5개의 트레킹 코스는 어떤 것 하나 부족함이 없이 대등하며 거친 구간이 있긴 하지만 위험도는 낮다. 산행코스까지 갖춰진 금오도는 다시 가고 싶은 곳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리도는 면적은 작지만 금오도보다 자연친화적이며 오히려 섬세하고 짜릿한 구간이 많아 위험하지만 아름답다.


섬에 있는 관리도 안내도에 약간의 편집을 했다.

선착장 근처에 있는 발전소 왼쪽으로 난 들머리에서 야생화에 정신을 뺏기면서 올라가다 보면 얼마 못가 오른쪽으로 시야가 뻥 뚫린 절벽 구간이 나타난다. 서해의 섬답게 관리도의 서쪽은 바람과 파도에 단련된 암벽 구간이다. 깎아지른 암벽과 울창한 숲은 동쪽으로 난 마을과 들쑥날쑥한 아름다운 해안선을 감싸고 있다. 관리도의 원래 이름이 튀어나온 땅, 즉 곶이라는 말에서 유래가 되었다고 하는데 섬의 동쪽에는 곶들이 유난히 길게 돌출해 있다. 마을 앞에는 대장도의 대장봉, 선유도의 망주봉과 선유봉이 서 있고 옆으로는 방축도, 명도 말도 등이 도열해 있다. 어느 바다가 이처럼 천하의 으뜸가는 바위산들을 품고 있을까, 관리도는 홀로도 아름답지만 고군산군도의 바다로 인해 더욱 빛난다.


고군산군도 바닷길은 옛사람들이 드나들었던 다수의 흔적들이 남아있다. 특히 중국의 기록에 나타난 고군산도의 중심인 선유도는 고려시대 중국에서 출발한 사신 일행이 위도를 지나 당도하는 공식적인 첫 번째 도착 지점이었다. 1123년 송나라 사람 서긍徐兢이 사신으로 고려를 방문하고 기록한 견문록인 ‘고려도경’에 의하면 선유도 망주봉 주변에는 고려시대의 숭산崧山행궁, 군산정, 오룡묘, 객관, 관사, 항만시설, 조선소 등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관리도 마을 앞에서
관리도 앞 바다


암릉 구간에는 절리가 가늘게 발달한 풍화된 암석들은 미역취와 산부추, 개미취, 산국, 쑥부쟁이 등 가을꽃들과 찰떡같이 어울린다. 층리가 발달하고 암석의 입자가 부드러우며 잘 쪼개지는 것은 셰일이며 셰일이 변성한 점판암도 층리가 있으며 잘 쪼개진다. 신시도의 대각산을 이루고 있던 암석과 비슷하며, 층리가 발달한 변산 채석강의 퇴적암을 생각나게 한다. 다만 암석은 일부 해안가를 제외하고 대체로 밝은 색을 띤다. 신시도와 채석강은 관리도와는 매우 가깝다.


작은 깃대봉을 지나면 흰색 전망대가 나타난다. 전망대 아래는 관리도 캠핑장이다. 이곳은 캠핑장이지만 ‘아름답다’라는 말이 어울리는 곳이다. 관리도가 유명해진 것은 이곳을 다녀간 백패커들로 인해서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섬에서 가장 좋은 뷰와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곳은 학교이다. 관리도의 가장 중요한 곳이었던 초등학교가 폐교가 되자 이곳에 캠핑장을 만들었다. 한 번 왔던 사람이 다시 온다는 캠핑장은 접근성도 좋아서 선착장에서 가깝다. 마을을 바라보며 마을 왼쪽으로 난 길을 따라 올라가면 캠핑장이 나오고 샤워장과 화장실, 간이매점 주변으로 사이트가 조성돼 있다. 뒤쪽으로 난 해식애 전망대 근처까지 사이트가 만들어져 있는데 그곳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오금이 저렸다. 예약이 다소 힘들다고는 하지만, 아찔하지만 아름다운 해식애에 만들어진 사이트에서 하룻밤 지내고 나면 어느 누구라도 새로운 마음으로 거듭날 것만 같다.

캠핑장 근처의 전망대
다음 날 배를 타고 본 관리도 서쪽 해식애 아래의 해식동, 동굴이 매우 많다.
산으로 오르는 도둑게

서쪽 절벽 아래 바다에서는 퓍~ 하고 여기저기서 불어대는 휘슬소리가 들려오는데 손님을 실은 낚싯배들이 열일하는 소리다. 관리도 주변, 특히 서쪽은 수심이 깊어 다양한 물고기들이 서식한다고 한다. 그래도 그렇지, 다음 날 아침 관리도 주변을 사선을 타고 돌아보는데 서쪽 절벽 아래 좁은 바위에서 낚시를 한다. 걸어서는 접근이 불가능한 곳으로 배를 타고 아예 그곳에 내려 주는 구조이다. 해식 동굴과 타포니까지 발달한 웅장한 해식애를 관찰하다 보면 낚시하는 사람은 눈여겨봐야 겨우 보인다. 아찔한 챔질에 걱정이 앞서는데 한 두 사람이 아니었다. 배낚시는 양반이다.


등산동호회에서 묶어놓은 리본은 홀로 다니는 여행자에게는 많은 도움이 된다. 깃대봉을 지나면 내리막길조차도 절벽 길을 따라 나있다. 우려가 지나치긴 하지만, 풍경을 보다가 감상에 젖어 혹여 발이라도 헛디딜 수 있을 정도이다. 나무망치로 때리면 부서질 것만 같은 얇은 엽리가 발달한 바위군은 조선 후기 화가 겸재 정선이 그린 금강산도가 연상될 정도다.


이곳에서 왼쪽으로 가면 질망봉과 투구산으로 연결된다.

남쪽에서 동쪽 숲으로 내려갈수록 보랏빛 눈개쑥부쟁이가 군락을 이루었다. 참취의 흰색 꽃잎은 햇빛을 받아 영롱하기까지 하다. 근처에서 처음으로 좀바위솔을 보았다. 바위에 붙어사는 소나무라는 뜻이다. 길쭉한 솔방울 모양의 꽃대에서 하얀 꽃이 터졌다. 꽃며느리밥풀꽃은 맑은 자줏빛 길쭉한 종 모양을 하고 흰색 밥풀 두 개가 달려있는 모양에 미소가 지어진다. 우리말의 꽃 이름에는 해학까지 담겨있다. 섬 여행을 하다 보면 아무리 식물에 관심이 없어도 자연스럽게 야생화와 친해질 수밖에 없다. 이들보다 더 사랑스러울 수는 없으니까.

관리도 주민의 말에 의하면 아직도 야생화를 캐가거나 훼손시키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제발, 남의 것에 손대는 짓은 이제는 그만 했으면 좋겠다.

참취/층꽃나무
산부추/꽃며느리밥풀


쇠코바위까지 가려면 질망봉을 지나야 한다. 질망봉 가까이 왔지만 목적지인 쇠코바위까지는 다녀오기에는 벌써 해가 기울고 있었다. 쇠코바위는 내일로 미루고 정글처럼 우거진 숲길을 헤치고 징장불 해수욕장 쪽으로 난 길로 빠져나왔다. 마을을 향해 포장도로를 걷다 보면 오른쪽(동쪽)으로 해변이 하나씩 나타난다. 징장불, 설록금, 샛꼼 해변 등 해변이 나타날 때마다 낯설지만 투박하며 때론 귀여운 우리말 지명을 달고 있는 이름을 불러본다. 징장불은 긴 자갈해변이란 뜻이며, 샛꼼해변은 사이에 있는 작은 해변이란 말처럼 들린다. 지명에는 섬사람들의 삶과 색깔이 함께 녹아있다.


해식애가 발달한 깎아지른 절벽으로 이루어진 서쪽에 비해 동쪽은 곶과 완만한 만이 발달하여 해수욕을 즐기기에 썩 좋아 보인다. 해수욕뿐일까, 밤에 해루질을 구경하기 위해 사람들을 따라 설록금해변을 찾았는데 곶이 길으니 만은 깊게 들어와 있어 멀리까지 수심이 낮아 위험하지 않아 보였다. 해루질을 하면 소라, 게, 해삼 등 많은 수확은 기본이다. 관리도의 지명에서 관串은 ‘꽤다’라는 뜻으로 꼬챙이를 뜻한다. 1750년대 우리나라의 지도책인 해동지도海東地圖(규장각 관리)에 곶지(串芝)라고 표기되어 있는 것을 보면, 이 섬엔 정말 곶이 많으며 어떤 것은 길쭉하다 못해 길다. 언뜻 보면 곶의 끝부분은 살아 움직이는 짐승의 머리 같기도 하다. 곶지도가 더 좋지 않은가.


다음 날 아침 산책길에 다녀온 버금물 해변은 널찍하다. 해변의 암석들은 서쪽 능선을 형성했던 밝은 색의 암석 군과는 다르게 바위 색이 진하다. 절리가 발달한 것이 변산의 채석강과 비슷하다. 떡시루 같은 시루봉섬이 코앞에 보인다. 네이버 지도에 시투섬이라고 되어 있더니, 인터넷상에 있는 올라와 있는 일부 지도에도 시투섬으로 되어 있었다.

버금물 해변, 모래가 곱다


하늘을 향해 구멍이 뚫려있는 쇠코바위는 다음 날 오전 징장불 해수욕장이 있는 길 쪽에서 올라가 투구봉을 지나 질망봉 정상에서 연결된 길고 다이내믹한 바위 능선을 따라 다녀왔다. 돌출되어 서쪽 바람을 많이 맞는 곳이어서 바위들의 절리는 발달하다 못해 풍화되어 바위 표면은 거의 돌가루가 되어가고 있었다. 암석은 발로 밟기만 해도 우수수 가루가 되어버릴 것만 같다. 그래서 쇠코바위로 내려가는 곳은 미끄럽기까지 해 매우 위험했다.

질망봉에서 쇠코바위로 가는 능선
능선 끝에서 만난 쇠코바위/ 왼쪽 아래부분에 낚시꾼들이 보인다.
쇠코바위, 하늘로 뚫린 굴


동쪽으로 난 해변의 아침 산책을 마치고 강을 건너듯 장자도로 넘어왔다. 관리도를 바라보니 장자도와 지척인 거리에 길쭉한 몸을 누이고 있는 관리도까지 다리가 연결이 안 된 것이 다행이다. 아직은.

관리도에 간 첫날 저녁, 빌린 드라이어를 돌려주기 위해 주인이 있는 민박집 작은 매점으로 내려왔다. 안에는 주인분이 외지인과 이야기를 하고 있어 그냥 돌아섰다. 그녀는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문을 열고 나오면서 “부동산업자예요” 하고 묻지도 않은 대답을 한다. 부동산업자라는 그 남자는 그다음 날도 매점 안에서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름다운 섬이 잘못된 방향으로만 갈 것 같은 우려가 스쳐가는 것은 나뿐 만이 아니었다. 어쩌다 관리도에서 나고 자란 주민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는 하루가 다르게 섬 안으로 파고 들어오는 자본으로 인해 주민들의 갈등도 깊어진다고 했다. 걱정이 어린 체념의 목소리에 마음이 아팠다. 지금도 장자도와 연결된 다리를 건설하고 싶어 안달하는 이들이 군산시청을 들락날락할지도 모를 일이다.




두 밤을 묵으니 크지 않은 섬이어서 길이 난 곳은 거의 다 다녀올 수 있으며, 긴 장화를 빌려 신고 해루질까지 따라나설 수 있었다. 눈먼 소라는 그날 저녁 우리의 안줏감이 되었다. 시간이 가능하고 섬을 애정 하는 사람이라면 그 섬에서 경험하는 긴 밤의 적막을, 어느 곳보다 눈이 부신 이른 아침을 느껴봤으면 좋겠다.

관리도의 늦은 오후,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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