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쪽에 발트해를 끼고 오순도순 앉아있는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의 국토는 깊은 숲과 호수가 펼쳐진 평지로 대부분 이루어져 있다. 끝없이 이어진 들판에는 문득 깊은 숲이 이어지며 요정들이 살 것 같은 숲에는 돌연 하늘을 품은 호수와 늪지가 나타난다. 기독교 신앙 이전에 이 땅의 사람들은, 지역마다 신들의 이름이 다를 뿐 농작물의 수확과 성장에 관여하거나 바람과 불의 신 등 인간의 삶과 밀접한 초자연적인 힘을 갖은 많은 신들을 섬기고 있었다. 널리 알려진 페르쿠나스는 이들이 섬기는 천둥과 번개의 신이며 라이마 Laima는 출생과 죽음을 주관하는 신이다. 그러나 이들의 전통신앙(기독교 국가에서는 이교도라고 부른다)은 주변의 기독교 국가들에게 침략의 빌미를 주었다.
현재의 주변국들과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리투아니아 카우나스 시내에 서 있는 천둥의 신 '페르쿠나스'
나라를 세우기도 전에 시작된 덴마크와 독일 기사단, 스웨덴과 러시아 등의 끊임없는 침략과 착취는 에스토니아와 라트비아로 하여금 한 국가를 이룰만한 틈마저 앗아갔다. 특히 독일 기사단은 이 땅에 중세 유럽의 봉건제도를 그대로 이식시켰다. 성서와 칼을 들고 온 침략자들은 영주가 되었으며 원주민들은 이동의 자유가 없어진 농노가 되었다. 그러므로 12세기부터 20세기까지 이어진 주변국에 의한 식민지 역사가 곧 에스토니아와 라트비아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발틱에서는 덴마크와 독일, 스웨덴과 러시아 등 주변 강대국의 침략의 역사와 문화가 깊은 나이테처럼 새겨져 있다. 반면에 리투아니아는 쉴 새 없이 국토를 습격하는 독일 기사단(리보니아 검의 형제 기사단과 튜턴 기사단)의 침략에 무너지지 않고 끝까지 견뎠다. 이들이 맞설 수 있었던 이유는 국가와 나라의 중심축을 이루는 뛰어난 지도자가 존재했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끝내 리투아니아는 비타우타스 대공을 중심으로 독일 기사단이 다시는 일어설 수 없도록 크게 승리했다. 리투아니아는 비타우타스 대공 시절에 발트해에서 흑해까지 이루어진 땅을 경영했던 유럽에서 가장 크고 강한 나라 중의 하나였다.
라트비아 체시스 성은 튜턴 기사단의 주요 본부였다.
세 나라는 20세기까지 이어진 침략자들에 맞서기 위해 때로는 운명 공동체가 되기도 했다. 21세기의 에스토니아는 아픈 옛 기억은 동력을 주는 지렛대로 이용하여 IT 강국으로 거듭나고 있으며 라트비아는 유럽의 문화수도로서 내실을 다지고, 우리의 세종대왕이나 이순신 장군에 비견되는 위대한 지도자 비타우타스를 선조로 갖고 있는 리투아니아는 결코 강대국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발트에는 평지만 있을 뿐, 올라가거나 감탄할 만큼 높거나 거친 산이 거의 없다. 그러므로 이곳을 방문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마음가짐이나 튼튼한 트레킹화도 필요하지 않다. 편안한 옷차림과 운동화만으로도 족하다. 자연과 사람은 너무나 닮아있어서 이곳 사람들은 이상하리만큼 뾰족하지 않다. 그렇다고 둥근 것도 아니어서 이방인을 과하게 환대하거나 내치지 않는다. 타인에게 특별한 시선을 주지 않는 이들의 무심함은 여행자에게 무한한 자유로움을 안겨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