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Ⅰ- 5, 노시베 - 노시쿰바와 로코베
노시쿰바, ‘마카쿠마카쿠’의 섬
노시베 Ambondrona비치에 있는 숙소에서 Nazaire Excursions이 있는 비치까지는 바로 옆동네인 것 같아도 20분 이상이 걸렸다. 투어사 사무실이 있는 Ambatolaoka 비치에서 잠깐 배를 타고 노시쿰바에 도착했다. 제이는 섬의 이름 ‘쿰바’가 리머를 뜻한다고 한다. 즉 노시쿰바는 ‘리머의 섬’인 것이다. 오래전, 숲이 울창했던 노시쿰바에는 여러 종류의 리머들이 살았지만 오늘날 남아 있는 리머는 아쉽게도 블랙리머뿐이다. 말라가시말로 '마카쿠마카쿠'라고 부르는 블랙리머가 노시쿰바의 이름값을 하고 있는 셈이다.
노시쿰바 암팡고리나 마을로 접어들면 산길로 들어서기도 전에 긴 꼬리를 가진 민첩한 블랙리머를 만날 수 있다. 블랙리머의 몸집은 39센티미터에서 45센티미터를 넘지 않을 만큼 작다. 하지만 탐스러운 꼬리는 몸길이의 1.5배에 달하기도 한다. 몸무게는 2킬로그램에서 2.9킬로그램으로 중형리머에 속하지만 내 눈에는 더 작아 보였다. 암컷은 팀의 리더로 황금색과 밝은 노란색, 밝은 갈색이 섞인 아름다운 털빛깔을 자랑하는데 햇빛이 반사되면 매우 아름답다. 암컷은 수컷인 블랙리머보다 몸집도 더 커 보인다. 그래서일까, 암컷들은 호기심이 가득한 얼굴을 하고 움직임이 빠르다.
긴 꼬리만 아니라면, 까만 빛깔에 주황색 눈만 동그랗게 반짝이는 수컷 블랙리머의 얼굴은 얼핏 보면 귀여운 강아지 같다. 특히 블랙리머의 얼굴에는 둥글게 감싼 긴 털이 나 있는데 마카쿠마카쿠의 트레이드마크이다. 그래서 블랙리머를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은 블랙리머를 쉽게 구분한다. 블랙리머가 장난꾸러기처럼 보이는 이유도 얼굴전체를 감싼 이 털 때문이다.
노시쿰바는 프랑스가 마다가스카르와의 전쟁을 치르기 위해 건설한 병원과 휴양소가 있던 곳이다. 섬에는 숲이 있다지만 원시림이었던 일차림은 훼손되고 현재는 이차림으로 이루어진 숲이다. 노시쿰바의 숲에는 프랑스인이 환금작물로 심은 카카오나무가 건장하게 자라 숲의 일원이 되어 있었다. 인간이 즐겨 먹는 기호식품인 카카오나 커피나무를 리머는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마을까지 내려와 사람들과 너무 가까이 살고 있는 블랙리머가 가여워 보이기도 했다. 숲에는 이들이 즐겨 먹는 나뭇잎이나 열매가 적기 때문이었다.
1840년, 프랑스는 노시베를 보호령으로 삼고 여느 식민지와 마찬가지로 환금작물의 대명사인 사탕수수를 심었다. 하지만 이들이 전력을 다한 것은 마다가스카르를 병합하기 위한 전쟁 준비였다.
프랑스는 노시베 아래의 작은 섬 노시쿰바의 600여 미터에 달하는 중앙고원에는 프랑스 군인들을 위한 병원과 휴양소를 만들었다. 병원을 지으려면 평지에 지어야 하는 것이 상식이지만, 프랑스정부는 말라리아를 비롯한 열대성 전염병을 염두에 두고 격리를 수월하게 하기 위해 고지대에 휴양소를 지었다. 그렇다손 치더라도 넘치게 많은 노예들이 없었다면 할 수 없는 생각이었다. 얼마나 많은 노동인력이 있었는지 현지 노예들은 600미터 고지대의 병원까지 환자들을 들것에 실어 날랐다.
그렇게 프랑스와 마다가스카르의 전쟁인 프랑코 호바 전쟁(1차 : 1883~1885, 2차 : 1894~1895)의 준비는 노시베와 노시쿰바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노시베의 식민지화는 프랑스에게는 마다가스카르와의 전쟁을 위한 신호탄이었다. 노시베와 노시쿰바는 프랑스에게 모잠비크 해협에서 매우 중요한 항구였을 뿐만 아니라 본섬인 마다가스카르를 공략하기에 가장 중요한 전략적 기지로 발전하였다.
로코베 숲의 주인 '블랙리머'
마다가스카르 북부, 원시림의 숲에서 블랙리머를 만날 수 있는 곳은 로코베 자연보호구역 Lokobe Nature Special Reserve이다. 로코베의 깊은 숲에서는 빠르게 움직이며 매우 역동적인 블랙리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야말로 블랙리머는 로코베 숲의 주인이다.
로코베 자연보호구역은 마다가스카르에서 얼마 남지 않은 훼손되지 않은 원시림을 간직한 곳이다. 로코베까지 접근하는 것이 간단하지는 않으므로 로코베 보호구역을 들어갈 때는 몸을 가볍게 하고 오는 것이 좋다. 꼭 준비해야 할 것은 슬리퍼와 운동화이다. 배를 탈 때는 물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나와야 하므로 슬리퍼가 유용하지만 깊은 숲길을 걸을 때는 안전한 신발을 신어야 한다.
방문객은 작은 로코베 어촌 마을에서 통나무를 파서 만든 배인 피로그를 타고 짧지 않은 시간을 노를 저어서 들어간다. 해안가에 꽉 들어찬 맹그로브 숲을 지나는데 정적만이 감도는 맹그로브 숲을 지나갈 때면 마치 호수를 노 저어 가는 느낌을 받는다. 노를 저으면서 수면을 자연스레 코 앞에서 보게 되는데, 수면에는 많은 맹그로브 이파리들이 떠다닌다. 가을이 없는 열대의 숲에서도 수명이 다한 녹색의 나뭇잎이 떨어진다는 것을 알았다. 감상에 젖어 노 젓는 시늉만 하다가는 숲에 언제 닿을지 장담을 못한다. 약 30분 정도 꽤 먼 거리를 진짜로 노를 저어야 한다. 물이 배 안으로 들어오면 물을 퍼내기도 해야 한다.
하지만 숲에 다다르면 모든 시름이 눈 녹듯이 사라진다. 적막한 숲에서는 리머들의 사사삭, 움직이는 소리에 즐거운 긴장감이 찾아온다. 블랙리머는 인간이 걸어 들어가면 수십 미터 높이의 가지 끝에 있다가 인간들을 구경하러 내려오는 데 누가 먼저 내려가는지 내기를 하는 것처럼 미끄러지듯이 내려오는 그 모습이 귀엽고 경이롭다. 원래 호모사피엔스의 조상도 리머처럼 나무에서 살지 않았는가?
숲에는 블랙리머 외에도 야행성 리머가 잠들어 있으며, 카멜레온, 뱀과 개구리 등 처음 보는 기어 다니는 야생 동물들이 많다. 물론 모기는 기본이다. 그러므로 긴팔, 걷어입을 수 있는 통이 넓은 긴바지를 입는 것이 좋다. 트레일은 늪지대도 지나가며, 물이 흐르는 습지도 건너고, 폭포옆을 지나가기도 한다. 매우 더워(숲은 습하고 덥다) 견딜 수 없다면 폭포에 잠깐 몸을 담글 수도 있는데, 물속의 바위가 미끄럽고 거칠어서 다소 위험하게 느껴졌다. 다소 시간이 짧은 것이 아쉽지만 그래도 리머와 인간사이에 이곳처럼 확실한 경계를 하는 보호구역은 드물다(국립공원의 일부 구역만 여행자에게 개방한다).
리머들을 모아놓은 리머랜드를 생각하고 방문한 여행자라면 로코베는 실망감을 안겨 줄 수도 있다. 정해진 시간 안에 리머를 마음껏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로코베는 리머에게 먹이를 주는 것을 좋아한다거나 리머의 재롱을 가까이에서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권할만한 곳은 아니다.
로코베 보호구역 주변은 일랑일랑 농장이 많이 분포되어 있다. 로코베 보호구역을 다녀와서 민가의 옥상에 마련된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마칠 무렵이었다. 한 말라가시 사람이 일랑일랑 에센스를 들고 옥상으로 올라온다. 공항이나 공인된 샵에서 파는 것보다 비싼 가격은 아니므로 구입하는 것도 괜찮은데 여행기간이 많이 남았다면 구입하는 것을 망설일 필요는 있다. 여행이 많이 남아있었던 나는 가방에 에센스가 조금씩 새어 나와 일랑일랑 향이 가방에 가득한 채로 다녔다. 일랑일랑향이 모기를 비롯한 벌레를 퇴치하기도 한다니, 제 역할을 다 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