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그녀들이 빛이 난다고 생각했다

# 메스티아

by 그루


메스티아는 조지아의 북서쪽 우쉬바Ushba 산(4,710m) 아래 해발고도 1,500m에 위치한 마을로 러시아와의 국경과 접한 곳이다. 3,000~5,000m의 고봉들로 둘러싸인 Upper Svaneti의 중심도시로 일 년 중 6개월 정도가 눈에 덮여 있으며 조지아 왕국 시절 국경수비대에 의해서 만들어진 마을이라고 한다. 왼쪽 위로 올라가면 러시아의 엘부르스 산이 위치한다.

구름에 가려진 우쉬바Ushba 산(4,710m)

Svanetian tower와 소녀

SSvanetian towerSvanetian towervanetian tower

쿠다이시에서 북서쪽으로 5시간, 메스티아로 들어가는 입구인, 빙하물이 바쁘게 흘러내리는 계곡에는 Dolra강이라고 이름이 붙어 있다. 깊은 계곡을 따라 산 속으로 구불구불 몇 시간을 들어가면 집과 붙어있는 꼭대기는 육중한 탑들이 앞서거니 눈앞에 나타난다. 9세기경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했다는 Svanetian tower이다. 이 곳 사람들은 ‘커시키’(코시키)라고 부르는 탑을 일반적으로 망루나 탑이라고 생각되지만 ‘커시키’는 일상적인 생활을 하는 주택의 일부이며 전쟁이나 위급한 상황이 닥쳤을 때 아이들과 여인들, 그리고 중요한 것들을 대피시키는 장소였다.

접근이 어려워 침략의 손길이 쉽게 닿지 못하는 스바네티 지역은 스바네티 지역뿐만 아니라 조지아 전역에서 사용하는 오래된 피난처 역할을 했다고 한다.


내부를 들어가면 1층은 사람과 가축이 거주하는 공간이 나타나며 2층은 집의 지붕과 연결되는 사람이 사는 거주 공간이다. 사다리만 치우면 올라올 수 없는 3층은 대피장소로 지어졌다. 창문은 안에서는 보이지만 밖에서는 잘 보이지 않으며 탑의 맨 꼭대기에는 돌을 던지거나 화살을 쏠 수 있도록 해 놓았다. 높이는 대체로 3층에서 5층까지도 지어졌으며 지하까지 연결된 망루 ‘커시키’도 있다고 한다.


Svanetian tower
집과 자연스럽게 연결된 '커시키'


호텔에 짐을 풀자마자 망루 ‘커시키’를 보기 위해 마을로 나섰다. 좁은 골목에 들어가니 중세시대 영화에서나 나옴 직한 시골 풍경이 펼쳐진다. 누추한 창고쯤으로 보이는 건물 옆에서는 닭들이 종종 걸음으로 곡식알들을 먹고 다니고, 골목마다 돼지들이 열심히 돌아다닌다. 그래서 그런지 돼지의 몸이 운동을 꽤나 한 다부진 몸매들이다. 낯선 이를 보고 힐끔거리는 눈매는 영리해 보이기까지 한다. 이처럼 조지아에서는 모든 가축들이 아침에 출근해서 해가 지면 사람들처럼 알아서 집으로 들어간다.


골목을 돌아다니며 관찰한 커시키는 대부분 집의 지붕이 있는 부분과 커시키의 2층이 연결되며 여전히 생활의 공간 역할을 하고 있었다. 남의 집에 무례하게 들어가서 볼 수도 없는 일, 박물관처럼 개방된 ‘커시키’를 찾아가야만 했다.

‘커시키’의 일층은 퍽 넓다. 층마다 올라가는 경로를 다르게 위치해 올라가는 것을 어렵게 만들어 놓았으며 사다리도 사다리지만 능숙한 사람이 아니고는 위층으로 쉽게 올라갈 수 없는 시스템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내부가 개방된 ‘커시키’를 찾아 올라가는 길에 지붕 위에서 놀고 있는 소녀들을 만났다. 커시키의 2층이 사람이 거주하는 공간이니 일반 지붕은 놀이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지붕 위로 올라와 있는 자두나무에서 빨갛게 익은 자두를 골라서 따 먹으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평생 한 번도 그런 경험을 해 본 적이 없는 대한민국의 여인은 지붕에서 놀 수 있는 소녀들이 너무 행복해 보였고 순간 그녀들이 빛이 난다고 생각했다.

그저 단순한 인사 몇 마디 나눴을 뿐인데 소녀들의 손에서는 빨간 자두 몇 알이 내게 건네 졌다.


‘커시키’를 보고 내려오는 길, 자두를 건네줬던 소녀들은 더 잘 익은 자두를 손에 들고 있었고 나는 답례로 내일 우쉬굴리 트레킹에서 먹으려고 올라오는 길에 구입한 따끈한 소시지 빵을 그녀들 손에 쥐어 주었다. 예쁜 소녀들의 사진을 가지고 다음에 메스티아에 다시 오리라 생각하며 활짝 웃어주며 포즈를 취하는 그녀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리곤 다시 쌩하게 빵집으로 달려갔지만, 우쉬~! 빵 가게는 문이 닫혀있었다.


지붕위에 앉아있는 행복한 소녀들의 시간
지붕 위의 자두나무


돌길이 예쁘게 깔려있는 메스티아의 다운타운에는 경찰서 건물과 인포 센터, 호텔들이 모여 있는 세티 광장이 있다. 조지아의 황금기를 만들었던 타마르여왕의 동상이 예사스럽지 않아 꼭 가까이 가도록 만든다. 트레킹 코스 지도만 얻을 수 있을 뿐, 그리 도움이 되지 않았던 인포 센터의 시큰둥한 여직원은 그냥 그림자처럼 앉아있었다.

광장, 타마르 여왕의 동상


스바네티 뮤지엄


스바네티의 중심 역할을 했던 메스티아에는 잘 꾸며진 박물관이 있다. 광장 옆길을 지나서 계곡 위를 가로지르는 작은 다리 두 개를 넘어 찾아간 스바네티 뮤지엄에는 어퍼 스바네티의 생활과 역사를 알기 쉽게 전시해 놓았다.

어퍼 스바네티는 11세기에는 기독교 문화의 중심지로 기독교 미술이 발달하였으며 그중에서도 목공예, 금속공예, 회화, 건축 등이 발달했다고 한다. 15세기 이후에는 고립되어 기독교 미술의 중심지로서의 역할이 잊혀졌다. 그 덕에 중세의 향기를 담고 있는 마을의 모습이 남아있지 않았을까. 뮤지엄에는 중세시대의 미술품들을 전시하고 있었다. 기대하지 않았던 메스티아의 높은 문화 수준을 만날 수 있다. 뮤지엄의 로비 소파에는 사람들이 빼곡히 앉아 잘 터지는 와이파이를 즐기고 있다. 넓은 창으로 보이는 뷰는 정말 아름답다.


스바네티 뮤지엄
방문객들/뮤지엄의 로비에 서서 바라보라. 메스티아의 뷰가 정말 아름답다.
뮤지엄에 전시된 기능적이면서도 아름다운 디자인의 방패

뮤지엄 맞은편 오솔길을 따라 우거진 나무 밑 계곡으로 들어가니 퇴적물과 함께 흘러내리는 회색 빛 빙하물이 힘차게 흐르는데, 옆에는 달걀 삶는 냄새와 함께 주황빛 용천수가 솟아오른다. 조지아는 수자원이 가장 풍부한 나라답게 어디를 가도 길거리의 샘에서 맛있는 물을 마실 수 있는 나라이다. 마시고 있는 물병을 들고 다니면 조지아 사람들은 오래된 그 물은 버리고 신선한 음용수를 받아가라고 할 정도다.

해가 넘어가는 시간, 작은 돌이 깔린 마을길을 걷다 보면 담장 너머로 빨간 자두가 익어가고 갓 구워낸 빵 냄새가 솔솔 나는 메스티아가 그립다.


계곡을 산책하다가 만난 트레블러, 들꽃으로 꾸민 모자와 그녀의 여유가 너무 멋졌다.
뮤지엄에서 바라본 마을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