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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마니안과 카페스지안의 도시

# 예레반의 랜드마크 '캐스케이드'

by 그루


예레반 Yerevan

아르메니아의 수도인 예레반의 언덕에 있는 Erebuni 요새에서 발견된 쐐기문자로 쓴 명문에는 기원전 782년 우라루트Urartu왕국의 Argishti 1세가 Hrazdan강가에 Erebuni요새를 건설했다고 한다. 기원전 782년이 도시 형성의 시작이다.


예레반은 유럽과 인도의 교역로의 중계지로서 번창했지만 20세기 초에는 인구 3만 명의 작은 도시였다. 예레반은 1918년 5월 28일 아르메니아 민주 공화국의 수도가 되었다. 하지만 1920년 11월 29일에 붉은 군대에 함락되었고 소비에트 연방 아르메니아 공화국의 수도가 되었다.

지금과 같은 예레반의 모습을 설계한 사람은 알렉산더 타마니안Alexander Tamanian(1878~1936)으로 러시아 출신의 건축가이다. 그는격자모양으로 예레반 시내 어디에서나 아라랏산을 볼 수 있도록 설계했으며 1923년부터는 아예 아르메니아로 이주하여 살았다고 한다. 제노사이드로 황폐해진 국가를 재건하는데 힘을 아끼지 않았던, 아르메니아에 뼈를 묻은 그는 아르메니아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아르메니아인이 되었다.


캐스케이드 Cascade 앞에 예레반 도면을 놓고서 있는 타마니안의 모습에서 고뇌에 찬 그의 시선을 느낄 수 있다.


알렉산더 타마니안Alexander Tamanian

예레반의 지도를 보면 캐스케이드와 오페라극장이 있는 북쪽에서 남쪽으로 뻗은 중심축의 도로를 중심으로 방사형의 도로가 그려지며 그 위를 격자형 도로들이 지나간다. 캐스케이드 왼쪽에는 각종 기관들이, 오른쪽에는 마테나다란이 위치해 대칭을 이룬다. 세계의 어떤 도시보다도 쉽게 도시의 구조가 한 눈에 들어온다.


지도를 보는 순간 방사형 도시로 유명한 독일의 칼스루에, 미국의 워싱턴 DC, 프랑스의 파리를 벤치 마킹했다고 생각했지만, 제노사이드 메모리알 콤플렉스 옆을 둥글게 곡선을 그리며 지나가는 Hrazdan강의 지형 때문에 도심의 설계를 방사형으로 설계한 것 같았다.

예레반의 공화국 광장을 지나치다 보면 도심의 색깔이 밝은 분홍빛을 띤다. 건축에 적합한 질이 좋은 석재가 많이 생산되는 아르메니아는 전통적으로 다양한 색상의 자연산 돌을 이용해 건축에 이용해왔다. 열에 강하고 가공하기 쉬우며, 다공질이어서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한 응회암을 이용한 분홍빛 도심은 예레반에 대한 호감도를 높이기에 충분하다.


타마니안과 카페스지안의 도시 예레반의 'Cascade'


계단식 분수대인 캐스케이드 Cascade는 예레반을 설계한 알렉산더 타마니안의 작품이다. 시작도 못하다가 1980년 짐 토로스얀이 타마니안의 유작을 착공했지만 1991년 공사가 중단된 것을 2002년 카페스지안 Gerald L Cafesjian과 해외이주자들의 성금으로 공사가 재개되었으며 5층의 캐스케이드는 2009년 Cafesjian Center for the Arts in Yerevan으로 문을 열었다.


카페스지안 Gerald L Cafesjian은 1915년 제노사이드(오스만 투르크의 아르메니아인 학살) 시기에 미국으로 이주했던 부모를 둔 1925년생으로 뉴욕의 브루클린 근교에서 태어난 미국인 사업가이다. 지금도 여전히 공사 중이지만 그의 재정적인 도움으로 캐스케이드는 머지않아 뉴욕의 MOMA나 런던의 Tate Modern처럼 세계적인 현대미술의 요람으로 명성을 얻을 것임에 틀림없다.


계단식 폭포를 의미하는 캐스케이드는 새로운 양식이 아니라 아시리아와 바빌론, 페르시아지역의 아시아에서 이미 있어왔던 정원의 양식이다. 아시리아의 세미라미스가 바빌론으로 수도를 옮기면서 만들었다는 공중정원과 바빌론의 네부카드네자르 2세가 만들었던 바빌론의 공중정원, 바빌론의 공중정원을 이어받아 발전시킨 키루스의 정원인 파사르가데를 현대적으로 발전시킨 정원의 양식으로 보였다.


제노사이드 이후 아르메니아의 민족의식은 날처럼 살아있지만, 고대에는 페르시아 왕의 동생이나 핏줄이 아르메니아의 왕으로 등극하는 경우도 있었던 점으로 미루어 캐스케이드도 여러 문화가 융합한 디자인이다.

캐스케이드는 계단으로 직접 올라가 정원으로 갈 수도 있지만 왼쪽으로 나 있는 문을 열고 들어가면 현대식 에스컬레이터가 있는 대형 실내 미술관으로 이어진다.

언덕을 이용하여 만든 Cascade, 맨 위에는 아직도 공사중이다.
맨 위층에 있었던 설치작품


넓은 공간에는 세계적으로 이름 있는 현대 미술품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입이 딱 벌어질 만큼 놀라운 컬렉션이다. 20세기 미술품부터 21세기를 아우르는 중요한 현대미술품들이 손만 뻗으면 닿을 만큼 눈앞에 모여 있는 현실이 놀라웠다. 실내에서는 분수가 있는 야외정원으로 나갈 수가 있기 때문에 실내로 입장하여 외부로 나가서 관람하는 것이 좋다.


로버트 인디애나 Robert Indiana ‘LOVE’도 있고 영국 작가 Lynn Chadwick의 청동 작품과 콜롬비아의 작가 페르난도 보테로의 작품은 ‘Woman Smoking’을 비롯하여 다수가 있다.

Louis Durot의 1972년작 ‘Aspirale Chair’, Daniel Codell의 작품, 게다가 요즘 대세인 포르투갈의 오브제 작가 Joana Vasconcelos의 ‘Pavillon de tea’, 와, 말굽을 이용해서 말을 표현하는 Tom Hill의 ‘Olympic Horses’ 등 을 볼 수 있었다. 한국 작가 지용호 씨의 폐타이어를 이용한 작품을 보니 기분이 절로 좋아진다.


1층에 있는 기프트샵에 가면 작가들의 디자인으로 만들어진 주얼리와 생활디자인인 폿과 컵 의자 등을 구경하는 것도 또 다른 재미, 판매를 하는 제품 중에는 한국 작가가 만든 유리 소재의 작품도 있어서 반가웠다.


페르난도 보테로의 작품 ‘Woman Smoking’
Tom Hill ‘Olympic Horses’
1층의 상설전시장에 있던, 왼쪽이 한국작가의 작품
Joana Vasconcelos의 ‘Pavillon de tea’

캐스케이드는 언덕으로 되어있는 도시의 북쪽과 도심을 연결하는 예레반의 제일가는 랜드마크이며 현재의 예레반을 다른 도시보다도 활기 있고 살아있는 도시로 만들어주는 매우 중요한 구심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캐스케이드를 나오면서 한 나라의 경제력과 문화 수준은 결코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을 실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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