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박 6일간의 아르메니아 여행은 딜리잔에서 1박, 세반호수에서 1박, 예레반에서 3박의 일정이다. 아래 지도에서 녹색으로 칠해진 곳은 유네스코 유적이며, 황갈색은 유네스코 유산은 아니지만 아르메니아의 자연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방문하는 계절에 따라 다르겠지만 다녀오고 나니 딜리잔은 빼고 세반에서 2박을 하거나 예레반에서 4박을 했으면 더 나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르메니아는 3곳의 유네스코 문화유적이 있다. 조지아 국경 가까이에 위치한 알라베르디 지역의 아흐파트와 사나힌 수도원, 예레반 오른쪽에는 에치미아진과 즈바르트노츠 예레반 왼쪽에는 게가르트수도원과 아짜트계곡이 그곳이다.
하지만 순전히 계절과 기호 차이일 수 있겠지만 내가 꼽는 아르메니아 최고의 볼 것은 유네스코 유적이 아닌, 자연과 가까이 있는 세반호수와 아라갓산에 있는 암버드 요새였다. 만약에 내가 겨울에 아르메니아를 방문했다면 차그가조르 스키리조트를 추켜세웠을 것이다.
예레반을 중심으로 한 지도
상상이상의 모습을 보였던 암버드요새
예레반에서 버스를 타고 쉽게 다녀올 수도 있는 코르비랍 수도원은 유네스코 문화유산은 아니지만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의 창시자인 성 그레고리의 이야기가 전해지며 국경 너머의 아라랏산을 가장 가깝게 볼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한 순례지이기도 하다.
아르메니아를 방문하는 여행객들은 대부분 길지 않은 시간을 머물다 간다. 하지만 막상 와서 보면 의외로 아름답고 볼만한 것들이 많은 곳이기도 하다. 국토가 넓지 않아서 대부분 아르메니아의 수도 예레반에서 한나절에 다녀올 수 있는 곳들이지만 산악지형으로 형성된 곳이어서 돌아가는 길이 많은 암버드 요새와 차그가조르 리조트를 찾아갈 때는 지도상으로 보는 것보다 더 많은 시간이 걸리기도 했다.
아르메니아는 온대성 기후라고 하지만 한국과는 다르게 강수량이 적고(하지만 물은 풍부하다) 여름에는 극히 건조하여 타는 듯한 더위에도 그늘에 들어가면 더위는 조금이나마 식힐 수가 있다. 사막성 기후와 비슷한 기후도 있을 뿐 아니라 겨울에는 혹한이 지속된다고도 한다. 작은 국토지만 다양한 기후대를 경험할 수 있는 땅이다.
차그가조르 리조트의 리프트를 타고 올라가서 산책하던 중에 발견한 독특한 나무
고원지대였던 세반호수의 얼음장 같았던 물, 덕분에 물고기들만 쫓아다니며 놀았다.
예레반과 예레반 근교
예레반은 타는 더위와 혹한의 추위만 피해 간다면 지도를 들고 걸어서 돌아보기에 좋은 도시구획을 가지고 있다. 도시 북쪽에 볼 것들이 많아서 북쪽에서부터 출발을 하면 좋다. 하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특별한 볼거리인 캐스캐이드와 마테나다란을 하루에 보기는 피곤하기도 하거니와 무리가 따른다. 물론 무리해서 다니거나 그저 스치듯 다닌다면 예레반은 하루에도 충분하다.
하루는 캐스캐이드와 캐스케이드 위쪽에 위치한 아르메니아 어머니상을 보고 캐스케이드의 정원 같은 야외 미술관을 따라서 내려오면서 아르메니아 화가들의 야외 갤러리와 오페라극장을 보고 공화국광장까지 내려오면서 도심을 둘러보는 일정으로, 다른 하루는 제노사이드 메모리얼 파크를 참배하고 택시로 마테나다란 고문서 박물관으로 이동해서 박물관을 감상하면 한나절이 걸린다.
예레반 교외로는 하루는 에치미아진 쪽으로, 또 다른 하루는 코르비랍과 게가르트 동굴 교회 쪽이나 다른 쪽으로 아침에 출발해서 오전 시간을 보내고 예레반으로 들어와 북쪽에 내려 걸어서 도심을 둘러보면 효율적이지 않을까 한다.
교외로 출발하는 마슈르트카나 버스가 운행을 하며 호텔이나 도심의 트래블에이전시에서 출발하는 일정도 많으니 동선과 경비를 적절히 생각해서 루트를 짜면 후회하지 않는 여행이 될 것이다.
아르메니아는 여행 인프라의 수준이 높다. 환전소도 은행도 카페도 미술관도 많고 거리는 깨끗하고 게다가 주민들은 대부분 영어도 잘한다. 경제가 보여주는 숫자로 국민들의 문화 수준을 가늠하면 오산, 국민들의 수준은 대단히 높다. 환전소나 은행이 쉬는 휴일에는 SAS 슈퍼마켓에 가면 이동 환전소가 운영된다.
교회나 수도원을 방문할 때는 예배를 드릴 목적이 아니라면 일요일이나 쉬는 날을 피해서 방문하는 것이 좋다. 일요일에 방문한 에치미아진에서는 넘치는 순례객들로 인해 사진도 찍을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볼 것을 못 보고 그냥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극장 앞에서 공연하던 배우들
아르메니아의 먹거리
세반처럼 해발 2,000m~3,000m의 고산지대의 여름 기후는 시원하다. 아르메니아의 비옥한 화산성 토양과 풍부한 일조량 덕택에 살구는 세계 최고의 맛을 낸다고 한다. 살구뿐일까, 시장에 넘치는 야채와 다양한 과일들도 대단히 맛이 좋다. 아르메니아에 왔을 때는 조지아의 풍성한 요리를 경험하고 난 뒤라 아르메니아의 요리에 대해서는 기대를 안 했는데, 조지아의 요리보다는 단순한 것 같지만 의외로 풍성하고 담백하다.
커피나 맥주 등 기호식품들도 풍부하고 맛도 좋다. 한 번은 호텔에서 멀지 않은 시장에 들렀다가 더워서 맥주 한잔 마시고 싶어서 시장에 붙어있는 작은 레스토랑에 들어갔다. 시장 옆이지만 실내는 깔끔하고 매우 친절하다. 맥주를 시켰더니 우리나라의 전문 생맥주집처럼 꽁꽁 얼려 하얗게 서리가 내린 얼린 맥주잔을 내 주는 것이다. 이런 서비스는 한국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깜짝 놀랐었다. 그리고는 3일 내리 저녁마다 그 집에 들려 야채구이와 케밥을 안주로 시원한 맥주를 마시곤 했었다. 마지막 밤에는 우리테이블에 서비스를 담당했던 상큼한 미소가 생각나는 주인장 아들과 이별의 포옹까지 하고 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