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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빛 도시 '예레반'

# 예레반 - 아르메니아의 자존심

by 그루

캐스캐이드에서 오른쪽으로 오페라극장 쪽으로 내려오는 길에 제법 넓은 공원에는 규모가 꽤 큰 상설 야외 갤러리가 있다. 섭씨 40도의 더위에도 작업하는 분이 있는 것을 보면 제법 수요가 있는 모양이다.


고대 아르메니아인들은 건축·그림·조각 등에서 뛰어난 문화 수준을 보였다. 이들의 예술 활동이 가장 활발했던 시기는 14세기 말엽으로 어려웠던 시기의 아르메니아 예술가와 문학인들은 더욱 그들의 민족의식을 강조했다고 한다. 인구 대비 인류에 공헌도가 높은 아르메니아인들은 뛰어난 집중력의 소유자들이 많은 것으로 유명한데 지구인들이 대부분 사용하는 찬물과 더운물이 같이 나오는 하나의 수도꼭지를 발명한 것도, X선 촬영이나 CT와는 달리 고주파를 이용하는 검사이므로 인체에는 사실상 해가 없는 자기공명 영상 MRI와, 소비에트 정권에 기여한 공로지만 2차 세계대전 소년군의 주력 미그 Mig전투기를 개발한 미코얀 Mikoyan도 아르메니아의 알라베르디 사나힌 수도원 부근에서 태어난 아르메니아인이다.


아무튼 거리를 다녀보면 일반적으로 건축가나 화가나 조각가 또는 작곡가 등 창조적인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사회적 존경을 받고 살아가는 나라인 것 만은 분명하다.


전문 화가들이 상주하는 예레반 거리의 갤러리

오페라 발레 극장과 공화국광장


바로 이어지는 원형의 대형 빌딩은 알렉산더 타마니안이 설계하고 1933년 완공된 오페라홀과 발레홀이 따로 있는 오페라 발레 극장이다. 극장 앞에는 아르메니아의 작곡가이며 지휘자인 알렉산더 스펜디아리안Alexander Spendiryan과 아람 카차투리안 Aram Khachaturian(1903~1978)의 동상이 서 있다.


여담이지만 아르메니아인들의 이름의 끝 부분이 ~an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지금까지 언급했던 캐스케이드의 경제적 조력자인 미국인 사업가 카페스지안도, 예레반 설계자인 타마니안도, 음악가인 스펜디아리안, 카차투리안, 그리고 내가 알고 있는 유명 인사를 한 사람 든다면 할리우드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동양적인 느낌이 강한 ‘킴 카다시안’이다. 온갖 뉴스를 몰고 다니는 핫 피플 ‘킴 카다시안’Kim Kardashian도 아르메니아를 조국이라고 부르는 아르메니아인이다. 2015년 4월 24일에는 제노사이드 100주기를 추모하기 위해 남편 카니예 웨스트 Kanye West, 동생과 같이 아르메니아를 찾기도 한 뉴스를 보았었다.


공화국 광장도 알렉산더 타마니안의 작품이다. 전체적인 색깔은 분홍빛에 가까운 응회암 색깔로 정부청사를 비롯하여 박물관과 호텔 등 중요한 빌딩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예레반의 심장이라고 볼 수 있는 곳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지나다니며 봐도 분홍빛의 도심에는 빛이 모여 있다.

오페라 발레 극장과 양 쪽 두 명의 음악가
분홍빛의 공화국 광장

아르메니아는 자국의 인구가 삼백만이 조금 넘는 인구를 갖고 있는데 반해 해외에 거주하는 인구는 8백만에서 9백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그러므로 해외에서 아르메니아로 들어오는 경제 규모는 추측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다.


아르메니아는 인도 유럽계 민족으로 성서적으로는 노아의 아들 중 야벳의 장자인 고멜의 후손이다. 고멜의 후손들은 서아시아와 중앙아시아를 비롯하여 유럽의 일부에 정착했다. 일부는 프랑스와 스페인의 서쪽까지 정착했으며 대홍수 이후 300년이 지난 후에 일부는 영국의 웨일스 지방까지, 또 다른 무리의 일부는 독일로도 진출했다고 보고 있다.


아르메니아 여인들은 눈길을 끄는 동양적인 색깔에, 프랑스 여인들처럼 그리 크지 않으면서, 대체로 날씬하고 샤프하다. 그래서 그런지 프랑스인들과의 연관성이 정말로 있어 보이기는 하다.


2011년 12월 프랑스는 ‘아르메니아 학살 부인 금지법’을 통과시켰다. 자유의 나라 프랑스에서 순수하게 휴머니즘적인 차원에서 제정된 법일 수도 있지만 프랑스에서 살아가는 아르메니아인들의 표를 의식하여 만든 법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학살에서 유럽의 제국주의는 그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것이어서 알제리 식민통치(1830~1962) 시절에 특히 1954~1961년에 잔인한 고문까지 행해졌던 알제리 인들에 대한 학살의 가해자이면서 지금도 부인을 하고 있는 프랑스는 일에는 선과 후가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제노사이드 메모리얼 공원


그들의 문자와 자존심, 아르메니아 알파벳과 마테나다란 Matenadaran


405년 아르메니아 알파벳을 만든 메스로프 마슈토츠 Mesrop Mashtots는 브람샤푸 왕의 비서로 일했으며, 그의 지원을 받아 그리스어를 본떠 36개의 글자로 된 아르메니아 알파벳을 체계화했다. 그리스어 성서를 최초의 아르메니아어 성서로 번역할 때 처음으로 쓰였다고 한다. 메스로프 마슈토츠는 자신의 스승의 모든 것을 기록으로 남기기도 했으며 문서수집과 필사를 위해서 5세기 에치미아진에 마테나다란 Matenadaran을 설립한 것이 효시라고 한다. 1959년에는 예레반으로 마테나다란을 옮겼다.


박물관의 정면에는 메스로프 마슈토츠가 앉아있으며 아르메니아의 학자와 작가 6명의 동상이 서있다. 마슈토츠의 오른쪽에 있는 지혜와 힘을 상징하는 독수리와 칼은 아르메니아 알파벳에 대한 긍지가 서려있는 것 같다.

Matenadaran 고문서 박물관에는 각 분야별 과학 문학, 역사, 의학, 지리, 철학, 법률, 수학, 채색화 등 17,000여 점의 필사본과 시리아어, 에티오피아어, 그리스어, 아랍어, 페르시아어, 라틴어 등 세계 각국 언어로 된 약 10만 점에 달하는 중세와 현대를 아우르는 필사본 자료들이 있다.


방대한 필사본 자료를 전부 눈여겨보는 것은 참 피곤한 일일 수도 있으나 마테나다란과 같은 고문서 박물관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예술적으로 기교가 넘치는 세련된 책이 있는가 하면 어린 시절이 생각나는 조금은 치졸해 보이는 그림일기 형식의 책도 있고, 식물표본처럼 그려놓은 그림책 같은 필사본도 있다.

Matenadaran 고문서 박물관
메스로프 마슈토츠 Mesrop Mashtots의 왼쪽에는 아르메니아 알파벳, 오른쪽에는 지혜와 힘을 상징하는 독수리와 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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