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의 끝에서'

연상연하 짝꿍의 서른여덟 번째 일기

by 브라이스와 줄리

브라이스에게

요즘 날씨가 참 좋지?

가을은 이미 없어진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늘같은 날씨를 보면

아직 우리 곁에 가을은 있구나 싶어

마음이 좋아져 :)


오늘 아침에 내 상황에 대해

푸념한다는 게

너의 기분까지 안좋게 만든 것 같아 미안해.

너말대로 이미 지나간 일은 지나간 건데,

마음 마무리가 잘 안되네.


그러다 기분 전환하고 싶어서

비트를 틀었는데,

페퍼톤스의 '계절의 끝에서'라는

노래가 흘러 나왔어.

마치 적절한 타이밍에

나에게 보내는 노래라는 생각이 들어서

오늘은 이렇게 나의 편지 대신에

노래의 가사로 내 마음을 전하려고해.


부디 나처럼 이 노래를 듣고

너의 기분도 풀리길!

그리고 꼭 노래를 들으며 편지를 봐주길.

항상 고마운 마음을

여기에라도 살포시 남기며,

너와 보내는 이 시간들이,

불안에 서로 한숨 내쉬었던 이 시간들이

내가 스무살 대학생들을 보며

느끼는 마음처럼

언젠가

"돌아보면 다시 그곳, 다시 빈손이지만

어렴풋이 즐거웠다면 그걸로 된거야"

라는 마음으로 돌아올거라 믿으며.


흘러가는 시간들을 멈출 수는 없으니
다만 우리 지금 여기서 작은 축제를 열자

사랑하는 사람에게 짧은 인사를 남기며
숨가쁜 날 잠시 쉬어갈 환한 창가를 찾길

흩날리던 벚꽃잎 위로
그 설레이던 봄날이 끝나고
뜨겁디 뜨거웠던 여름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고서
가슴 시리던 찬바람에
눈부신 가을 햇살이 저물어
다시 또 겨울이 찾아오면
또 다른 시작

덜컹대는 2호선에 지친 몸을 싣고서
서둘러 온 이른 계절의 끝에서 만나자

많은 날이 흘렀지만 변하지 않았기를
힘겹던 날 활짝 웃어준 한 장의 사진처럼

홀로 걷는 외로운 이여, 이 먼 길을 떠나온 여행자여
뜨겁게 불렀던 노래는 영원토록 가슴속에 남기를
사나운 비바람의 날들
무덥고 목마른 계절이 흘러
다시 또 겨울이 찾아오면
또 다른 시작

돌아보면 다시 그곳, 다시 빈손이지만
어렴풋이 즐거웠다면 그걸로 된거야


줄리, 안녕!

내게 편지를 남겨준 것이 벌써

이틀도 더 전인데

이제야 답장을 보낸다.


먼저 마음 건네줘서 고마워 :)

오늘 우리는 또 하나의 큰일을

치뤄내고 사이좋게 저녁시간을 보냈지.

모처럼의 여유와 행복을 느낄 수 있던

시간이었어.

가을이라는 계절의 시작인 줄만 알았던

9월4일인데 실상 날씨는

오늘이야말로 계절의 끝이라고 느껴질만큼

더웠지 :)


줄리가 내게 전해준 가사

"돌아보면 그곳, 빈손이라도

어렴풋이 좋았다면 그걸로 된 거"라는 말.

나는 오늘 분명 그 감정을 느낄 수 있었어.


시험을 마치고 우리는

빈손으로 거리를 거닐었지.

하지만 우리 마음 만큼은 비어있지 않았어.

우리가 땀을 주룩 흘리며 걸은

소월길, 해방촌길, 정동길 모두

우리의 추억이 서려있었기 때문이지.


우리의 상황과 상태, 가진 것은

크게 변하지 않았지만

돌아보니 우리는 다시 그길을 걸으며

옛 기억을 더듬을 수 있었어.

우리가 저 집에서 밥을 먹으며 싸웠던가?

이 곳은 우리가 같이 본 드라마에 나온 장소인데!

저 골목에서 우린 손을 잡았었지, 하는

그런 어렴풋하면서도 풋풋한 기억들.


그래서 오늘 고마웠어. 정말!

이제 우린 서로의 존재를 인식하는 것만으로

빈 손이 아니라고 생각해.

앞으로도 우리 이렇게 하나씩 채워가자.

늘 고마워! 마지막으로 오늘 찍은 야경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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