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며 피는 꽃'에 대하여

연상연하 짝꿍의 마흔두 번째 편지

by 브라이스와 줄리

줄리, 안녕.

또 한 달 만이야.

게을러서 이제야

편지를 쓰게 되네 하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새 우리 브런치를

구독해주시는 분들이

시나브로 늘어 감사하다 :)


오늘은 또 나의 한 해에 있어

중요한 날이었어.

내가 참 바라고 기대하던

어떤 일의 결과 발표일.

기도와 기대와 바람이

여기저기 묻어있던

나의 도전은 보기 좋게

실패로 끝났지.


다행히 줄리와

가족, 친구들이 있기에

금방 훌훌 털어낼 수 있었어.

오늘의 위로 고마워!

며칠 전 우리가 거닐었던 공원의 불빛

어, 음, 사실은

위에 이야기는 100퍼센트

솔직한 이야기는 아니야.

여기서 나는 더 속에 있는 이야기를

끄집어내보려고 해.


이번에 준비를 하면서

나는 나름 최선을 다했어.

흔들리는 마음도 붙잡으려 애썼고,

가끔 무너질 때도 있었지만

의지를 다지면서 왠지 이번엔

내게 좋은 기회가 온 것 같아서

의기양양하게 준비했어.


면접을 앞두고는

줄리도 박수를 보내줬을 만큼

힘내서 다양한 답변을 준비했고,

나 역시도 이전의 실패를

반면교사 삼아 이번에는 정말

나아졌다, 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애를 썼어.


그리고 면접 당일,

아쉬움도 분명 있었지만

후회없이 이야기를 하고 나왔고,

준비한 것들도 많이 나와서 기뻤어.

나름 기대를 했었지.


그런데 결과는 기대와 같진 않았어.

시간이 흐를수록

안 될 수도 있겠다, 는 생각은 했지만

막상 눈 앞에

'제한된 인원으로 인하여...'

'귀하의 영광과 발전을...'

이라는 글귀를 보는데

진짜 개소리같더라.


도대체 어떻게 해야,

어떻게 준비해야,

어떻게 나를 가꾸고 포장해야

그들의 입맛에 맞출 수 있을지

너무 답답했어.

나의 날들도 이렇게 맑게 피어났으면 좋으련만

그리고 불안했어.

내 또래들은,

또는 내 선후배들은

다들 행복해 보이는 듯

자기 일을 해나가고,

때론 일이 힘들다며

신세 한탄을 하고,

가끔은 휴가를 얻어

평소 못잔 잠을 다 잤다고

투정을 늘어놓는데.


나는 너무 잠을 많이 잤던 걸까.

너무 쉬는 시간이 많았던 걸까.

너무 내 마음대로 계획을 짠 걸까.

도대체 나는 뭐가 부족하고

잘못되었길래

도전하고 도전한 끝에

원점으로 돌아오는 일을

반복하고 있는가.

고민이 되었어.


솔직히 잘 나가는 애들을

보는 것도 부럽고 화가났고,

결과를 보고

많이 흔들렸어.

또다른 곳을 향해

목표를 잡고

다시 뛸 자신도 없었고.

이리도 나약한

내 자신이 싫기도 하고.


아마 어떤 분들은

나의 글을 보며

한심한 소리한다고

고개를 저으실 수도 있겠어.

누군가는 나중에 보면

이불킥할 글이라며

비웃을 수도 있고.

또 누군가는 공감할 수도 있겠지.


그렇다면 오늘 내 글은

잘나고 행복에 겨운 분들이 아닌

혹시나 마음 못잡고

방황하거나,

나와 같은 처지를

매일 겪거나,

아니 내가 이해할 수 없을 만큼

깊은 곳에서 허우적거리며

힘들어하는 어떤 분과 함께

울며 나눌 수 있는 글이길 바라.


만약 여기서 글을 맺는다면

같이 울기보단

신세한탄에 머무른

한심한 글이 될 거야.

그러나 같이 울고 나서

다시 힘을 낼 수 있는 이유가 있다면,

요즘 내가 마음이 잡히지 않을 때

읽고 타자로 필사해두는

시가 있었기 때문일 거야.


오늘도 오후 늦게까지 기다리게 한

발표를 기다리며

도종환 선생님(지금은 의원님)의

시를 읽었어.


제목은 오늘 편지 제목과도 같은

흔들리며 피는 꽃.

내 기분이 아무리 바닥이더라도

그럼에도 일어날 수 있고

일어나야만 하는 건

흔들리지 않고,

젖지 않고

피는 꽃은 없다는

자연의 섭리 때문이 아닐까 싶어.


쏟아내고 나니 마음이 한결 낫다.

줄리 답장이 무엇이든 미리 고마워!

무엇보다 줄리의 사랑이 없었다면

나는 이렇게 이겨내지 못했을 거야!

(위의 말은 아주아주 핵심)

시를 마지막으로 보내며, 안녕!

꽃은 흔들리기에 아름답지. 하늘공원에서.

흔들리며 피는 꽃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브라이스에게


우선 정말 고생많았어.

그동안 준비하고 모니터링하고

연습하고 또 연습하고...

너가 얼마나 마음을 들였는지

누구보다 잘 알기에 나도 참 속상했어.

브라이스도 많이 상심했을 거고.


괜찮다고 토닥이면서도

또 쉽게 위로하진 못하겠더라구.

"다음에 더 좋은 기회올거야~!"라고

쿨하게 말하기엔

너의 마음씀과 또 쉬이 오지 않는

기회라는걸 아니까.

그래서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는

나를 보며 너한테 더 미안하고

마음이 무거웠어.


그런데 한편으론 정말 놀라기도했어.

작년의 너와 올해의 너는

참 많이 달랐거든.

의연하게 받아들이고

다음을 준비하는 모습에서

전과는 확실히 다른 단단함을 느꼈어.

무엇보다 너 스스로

'후회없다'고 말하는 걸 보면서

결과는 비록 작년과 같더라도

그 속은 완전히 다를 수도 있겠다 싶었어.


모든 시험은 결국 '합격'이 목표이기에

'불합격'이라는 건 어떤 위로에도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결과겠지만

나는 어제 오늘 너의 변화를 보면서

이렇게 성큼

너의 꿈에 다가가는구나를

오히려 더 확신할 수 있었어.


정말로 열심히 했고,

내가 알고

또 브라이스 너 자신이 아니까

나는 그것만큼

중요한 건 없다고 생각해.

결과는 쓰려도

결코 그 결과는 그것만으로

끝난 것이 아니니까 분명 이것들이 쌓여

더 큰 결과와 성장으로

반드시 되돌아오리라 믿어.


어제도 얘기했지만

난 너가 무엇이 되든 좋아.

그리고 이왕이면 그 꿈이

'직업'적인 것에 머무르지 않았으면 좋겠어.

많이 초조하고 또 불안할 때도 있겠지만

너가 정말로 그리는

어떤 '삶의 형태'를 꿈으로 삼고

한걸음씩 나아가길 바라.

그리고 언제가 되든

꼭 그 삶을 이룬 사람이 될거야.

난 그런 너를 늘 응원할 거고,

그 삶으로 다가갈 수 있도록

함께 나아갈거야.


브라이스야

(본명을 부르고 싶지만)

정말 수고 많았다.

우리 조금만 더 힘내서 '해피엔딩' 맺자!

지금의 성공이 결코 전부가 아니듯

지금의 실패가 모든 것을

결정 짓는 게 아니니

너는 반드시 웃으면서

너 자신을 돌아보는 날을 맞이하게 될거야.


사랑한다.

그리고 항상 응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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