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미다 꼬레아나 데 부르고스(좌충우돌 부르고스 한식당 체험기)
나는 지금 부르고스에 있습니다.
지친 나에게 시간을 주고 싶었을 때,
마침 부르고스에서 한식당을 하는 친구의 초대를 받았습니다.
갱년기가 시작되고 보름 넘게 하혈을 하면서
이렇게 죽으면 어떻게 하지,
나의 인생에 남은 것은 무엇일까?
덜컥 겁이 났습니다.
스물여섯부터 25년,
지금까지 생의 절반을 방송작가로 살았는데
앞으로 무엇을 하면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2년 넘게 준비했던 프로젝트가 무산되고
믿었던, 믿고 싶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니
앞으로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나
고민이 많았습니다.
세상은 나 없이도 잘 돌아갑니다.
사람을 좋아하고
관계를 중시하는 천칭자리는
역시 사람 때문에 상처받습니다.
17년 전 까미노 데 산티아고를 걷고
별자리를 만났습니다.
내 삶은 왜 이 모양일까, 생각이 들 때마다
네이탈 차트를 들여다 보다
책 <별자리로 읽는 조선왕조실록>도 내고
강연과 상담도 해왔습니다만
역시 내 차트를 제일 많이 봅니다.
현재 나의 차트를 보면 수확의 계절 가을인데
죽음, 재생, 부활의 플루토(명왕성)의 터널을 지나
혼돈, 초월의 넵튠(해왕성)의 시간이 시작되었습니다.
플루토의 시간은 아버지의 심근경색과 실연으로 시작되더니
넵튠의 시간은 배신과 갱년기, 노환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모어 슈가 more sugar, 클라라”
산티아고 순례길의 어느 바르bar에서
에스프레소를 마시는 나에게
설탕을 듬뿍 집어다 주던
프랑스 파파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습니다.
지치고 힘들 땐
설탕을 듬뿍 넣은 뜨거운 까페 콘 레쩨를 마셔야 합니다.
에스프레소는 위만 깎아내립니다.
죽기 전에 한 번 더 걷고 싶었던 까미노
그중에서도 일정 때문에 건너뛰었던 메세타 고원 평야의 입구
부르고스에 친구가 한식당을 시작한 게 올해 4월입니다.
17년 만에 다시 까미노를 걷기 위해
부르고스에 왔습니다.
부르고스는 한국보다 7시간이 늦습니다.
새벽 5시 반에 집을 나서서
인천 공항에서 마드리드공항까지 비행기로 18시간 반(중간 경유 2시간 20분)
그리고 마드리드에서 부르고스까지 버스로 2시간 반
27시간이 걸려 친구네 도착한 게
이곳 시간으로 다음 날, 새벽 1시였습니다.
그리고,
아침 일찍 눈을 떠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내게 시간을 주고 싶어서>는
스페인 여행기, 부르고스 한식당의 좌충우돌 체험기 혹은 소설입니다.
방송으로 친해진 무속인이 전화로
“찬 바람 불면 글이 써질 거야!” 했었는데
찬 바람이 부는 때를 기다리지 못하고
찬 바람이 부는 곳을 찾아온 모양입니다.
서울은 9월에도 35도가 넘는 무더위가 계속되고
가을이 사라졌다는데
부르고스는
아침 기온이 5도에서 11도 낮기온이 20도에서 23도 정도이고
튜브탑과 패딩, 반팔과 무스탕이 공존합니다.
해발고도 850미터
대관령 높이에 위치한 도시라서요.
우연이 겹치면 운명이라 했던가요.
부르고스에 온 지 2주가 지났습니다.
오늘은 아침 6시에 눈을 떠
108배를 하고
살랑살랑 꽃무늬 블라우스에
미니스커트를 입고
눈썹에 마스카라 올리고 이 글을 씁니다.
이제 ‘올라~’ 스페인어로 반갑게 인사하며
한식당으로 출근하겠습니다.
00. 나에게 시간을 주고 싶어서 https://brunch.co.kr/@bluetwilight/522
01. 올라 부르고스 Hola, Burgos!
당신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간은 언제인가요? https://brunch.co.kr/@bluetwilight/521
02. 우노 까페 콘 레쩨 우노 또르띠야, 포르파
때로 도망쳐도 괜찮아 https://brunch.co.kr/@bluetwilight/523
*한식당에서 일하는 것은 자원봉사입니다.
글은 엉덩이로도 쓰지만
발로도 쓰는 거니까
친구에게 부탁해, 한식당에서 일을 시켜 달라고 했습니다.
마침, 까미노 걷기 좋은 가을에, 추석 연휴까지 길어
한식당에 한국인 순례객 손님이 많이 늘었거든요.
**모든 인물과 에피소드는
경험이 내 상상의 필터를 거친 허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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