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클볼의 기본 규칙
피클볼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고자 마음먹은 뒤 가장 먼저 한 일은 피클볼 입문자를 위한 원타임 그룹 레슨을 받는 것이었다. 레슨 장소는 집 근처의 YMCA 실내 테니스장이었다. 원래는 총 8면의 실내 코트가 있었는데, 최근 피클볼 인기에 힘입어 그중 절반인 4면을 피클볼 및 테니스 공용으로 만들었다.
레슨 시간은 토요일 오전 10시. 아침을 먹은 뒤 설레는 마음으로 예전에 사놨던 입문자용 라켓을 들고 약 10분 전 레슨 장소에 도착했다. 레슨자나 코치나 서로 초면이기 때문에 어색한 분위기가 감돌았지만, 한편으로 피클볼이라는 새로운 스포츠를 배운다는 설렘과 가벼운 흥분을 느낄 수 있었다. 참석자들을 한 번 살펴보니 대부분은 나보다 나이가 많았고, 특히 백인 중년 아저씨 아주머니들이 많았다. 백발이 무성한 할머니 할아버지도 간간이 보였다.
레슨이 시작되자 코치는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했다. 그는 머리가 약간 벗어진 중년의 백인 아저씨였다. 자신은 원래 테니스 코치였지만 피클볼에 빠져 전향(?) 했다고 했다. 확실히 테니스로 다져진 몸이 매우 날렵해 보였다. 피클볼에 대한 열정이 넘치는지 말투나 행동이 매우 활발하고 흥분돼 보이기까지 했다. 그동안 테니스 클리닉이나 그룹 레슨에서는 느끼지 못한 활기찬 에너지였다.
그는 우선 사람들에게 공을 나눠주고 라켓에 바운스 시키는 연습을 시켰다. 어느 정도 감을 잡은 뒤에 서로 네트를 마주하고 랠리를 하도록 했다. 내 앞에는 어떤 백인 할머니가 자리를 잡았다. 나는 최대한 할머니께서 공을 넘기기 쉽도록 적당한 속도와 높이로 공을 보냈다. 다행히 테니스와 크게 다르지 않아서 우리의 랠리는 꽤 오랫동안 이어질 수 있었다. 그동안 코치는 지나다니며 간간히 사람들에게 스윙 테크닉에 관한 조언을 해주었다. 코치가 일관되게 강조한 점은 스윙을 끝까지 마무리하라는 것이었다. 모든 라켓 스포츠를 처음 즐기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실수는 역시 라켓을 팔과 어깨로만 휘두르는 것인데, 그러면 타점의 안정성도 떨어지고 부상의 위험도 커지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랠리를 연습한 뒤에는 바로 연습 게임을 통해 점수 계산하는 방법을 배웠다. 내 생각에는 피클볼을 처음 입문할 때 가장 헷갈리는 것이 점수 계산이다. 특히 복식에서는 처음 점수가 0-0-2부터 시작하는데, 첫 숫자는 서버의 점수, 두 번째는 리시버의 점수, 마지막 숫자는 서브를 넣는 플레이어의 번호(1 혹은 2)이다. 1이 아닌 2에서 시작하는 이유는, 첫 서브를 넣는 팀은 한 번(한 명의 서버)밖에 서브 기회가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 이후부터는 각 팀 멤버가 한 번씩 서브의 기회를 갖는다.
피클볼에서는 서브를 넣는 팀만 득점할 수 있다. 즉, 0-0-2 상황에서 서버팀이 해당 랠리를 이기면 1-0-2가 된다. 서버팀이 계속 랠리를 이기면 서브권은 유지된다. 11점까지 먼저 따는 팀이 한 세트를 이긴다. 즉, 이론상 0-0-2에서 서버가 11번 연속으로 에이스를 넣으면 나머지 선수들은 서브를 넣을 기회도 없이 한 세트가 종료될 수 있다는 것이다.(물론 그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극히 드물다)
반대로 0-0-2 상황에서 리시버가 포인트를 따면, 점수는 여전히 0대 0인 채로 서브권만 리시버 팀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이때 점수는 0-0-1이 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1은 서브를 넣는 팀의 첫 번째 선수(서버)라는 뜻이다. 만약 여기에서 서브권을 가진 팀이 랠리에서 지면, 그다음 선수(두 번째 선수)가 서브를 넣게 되고, 점수는 0-0-2가 되는 것이다. 여기서 2는 두 번째 선수가 서브를 넣는다는 뜻이다.
점수 계산 방식이 복잡한 이유는 서브권을 가진 상태에서만 득점을 할 수 있고, 일반적으로는 리시버가 서버보다 포인트를 이기기 쉽기 때문이다. 이 부분이 테니스와 다르다. 왜냐면 피클볼 서버는 상대방이 리턴한 공을 반드시 바운스 시킨 뒤에 쳐야 한다는 (즉, 상대방의 리턴 공을 발리 할 수 없는) 룰이 있기 때문이다. 그 말은 서버가 서브와 동시에 네트로 달려갈 수 없다는 뜻이다. 반면, 리시버는 상대방의 서브를 리턴함과 동시에 대시하여 네트를 점령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서버는 리시버보다 네트 점령이 늦을 수밖에 없다. 테니스로 그렇지만, 복식에서는 네트 점령을 먼저 하는 팀이 유리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피클볼의 서브 규정 중에 하나는 서브할 때, 타점 순간에서 라켓이 손목보다 아래에 위치하도록 하고, 타점도 허리 아래에서 이뤄져야 한다. 즉, 언더 서브인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서브만으로 득점을 하는 건 매우 어렵고, 실제로도 드문 편이다. 사실 그 점이 피클볼을 더 재밌게 만드는 점이기도 하다.
그다음에는 소위 키친(kitchen 혹은 NVZ, Non-Volley-Zone)과 딩크(dink)라는 개념을 배웠다. 키친이라는 것은 네트 앞 뒤로 7피트 정도 되는 공간으로 이곳은 발리 금지 구역이다. 즉, 이곳에 발이 닿은 상태로는 상대방의 공을 발리 할 수 없고, 반드시 공을 바운스 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내 생각엔 이 키친의 존재야말로 피클볼의 재미가 아닐까 생각된다. 키친의 존재 의미는 단순하다. 네트에 바짝 붙어서 발리를 하면, 코트가 좁기 때문에 복식에서는 스트로크로 발리를 이기기가 불가능하다. 기껏해야 로브가 전부인데 코트도 길이가 긴 편이 아니기 때문에, 로브도 쉽지 않다.
그런데 키친룰이 있기 때문에 선수들은 발리를 반드시 네트에서 일정 거리 이상 떨어져서 해야 한다. 상대방 입장에서 보면 네트를 넘기되, 공을 키친에 떨어뜨리면 네트 플레이어는 로우 발리나 하프 발리를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는 곧 상대방에게 찬스볼을 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공을 안전하게 키친으로 떨어뜨리는 것을 딩크라고 한다. 이 딩크를 잘해야만 네 명의 선수가 모두 네트를 점령했을 때, 상대방에게 발리로 공격당할 확률을 줄일 수 있다. 결국, 딩크를 잘해서 상대방으로부터 얼마나 많은 찬스볼을 만들어 내느냐가 복식의 관건이기도 하다.
딩크와 유사한 개념으로 드롭(drop)이 있다. 드롭은 네트에서 멀리 떨어진 상태에서 키친으로 공을 넣는 것이다. 네트에 멀리 떨어져 있으면 일반적으로 공을 길게 쳐야 하는데, 그러면 네트에 있는 상대방에게 발리 공격을 당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방지하기 위해 드롭을 하는 것이다. 보통 드롭을 친 뒤에는 네트로 전진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아무튼 이런 기본적인 샷과 전략을 배우고 난 뒤에는 계속 연습 게임을 진행했다. 나는 테니스를 쳤기 때문에 기본적인 풋워크나 발리에서는 다른 입문자들보다 나은 편이었지만, 스트로크는 테니스처럼 스윙을 하다 보니 실수가 많았다. 특히 포핸드를 칠 때 테니스처럼 탑스핀 스윙을 하면, 공이 네트로 꽂히기 일쑤였다. 알고 보니 피클볼은 공과 라켓 사이의 반발력이 크기 때문에, 공이 라켓이 머무는 시간이 테니스에 비해 많이 짧아서 공을 최대한 더 끌고 나가야 했다. 즉, 테니스로 치면 거의 플랫성으로 공을 쳐야 그나마 피클볼에서 탑스핀이 걸렸다.
또 하나는 피클볼의 바운스가 테니스 공에 비해 매우 낮다는 것이다. 그래서 코치는 나에게 “마치 잔디 코트에서 테니스를 치듯이 무릎을 많이 굽혀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그 뒤로는 공을 칠 때마다 공 밑에 들어간다는 생각으로 신체를 낮추니 네트에 걸리는 일이 많이 줄었다.
약 한 시간 동안 진행된 그룹 레슨을 마치고 나니, 놀랍게도 대부분의 참가자들이 벌써 피클볼 게임을 진행할 수 있을 정도가 됐다. 이는 나이가 든 할머니 할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참가자들의 표정엔 마치 어린아이가 새로운 놀이를 발견한 것 같은 즐거움이 배어 있었다. 피클볼이 왜 미국에서 가장 빠르게 인기가 증가하는 스포츠인지 알 수 있었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였다. 집에 오자마자 벌써 다음 레슨 일정을 검색하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동안 테니스 동호인으로 피클볼에 대해서 가지고 있던 편견과 적대감은 어느새 눈 녹듯이 사라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