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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공부 검사받기

감출 수 없는 나의 모습을 비추다

by 이종미
엄마, 오늘도 마음공부 했어?
어? 어 하고 있지!!

아이들은 어느새 마음공부라는 단어가 입에 붙었다. 상담이건 강의건 다녀오기만 하면 오늘도 마음공부 하고 왔냐고 물어본다. 엄마가 제일 잘하는 것은? 마음공부란다. 엄마가 화를 낼 때도 있지만 마음공부를 하면 표정이 좋아진다고 한다.

국어, 영어, 수학 공부에는 어떤 수식어를 붙일 수 없는 나인데 그 질문을 받을 때마다 멈추게 된다.

엄마가 가진 아이덴티티를 알아봐 준 덕분에 어느새 그 말대로 사는 법을 배워간다. 사실 나는 상담심리전문가는 아니다. 하지만 오히려 마음을 연구하고 실천적 행동 전문가로서 살아가고자 하는 삶을 선택한 것은 맞다. 처음에는 어른의 시각으로 잘못된 표현이였다고 바로 잡아 주려고 하는 마음도 올라왔었다. 내심 엄마 직업을 잘못 알고 있으면 어떡하지? 라는 노파심이였다. 중요한 것은 내가 가진 타이틀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나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아이들이 잠든 시각 원고를 쓰곤 했다. 이조차도 알고 있는 아이들은 틈만나면 마음이야기는 잘 썼냐면서 또 재차 물어본다. 드디어 원고계약을 앞에 둔 시점에서 내심 웃어보이며 좋아하는 표정이다. 엄마가 올해 꼭 책을 쓰고 싶다고 했는데 내심 계속 기도를 했다고 한다. 이왕 하는 거 잘해보라면서 내 어깨를 톡톡 쓰다듬어주는 아이들이다.

그러면서 글쓰기가 세상에서 가장 힘들던데 좋아한다는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무척이나 신기해 한다. 그럼 나는 말한다. 엄마는 운동이 제일 힘들던데 너는 제일 좋아하는 것과 같다고 말이다. 우리의 다름을 통해 진짜 자신을 만나기를 바라는 마음을 전달 할 뿐이다.


세상에는 무엇이 더 좋고 덜 좋은 것인지는 어려울 때가 있다. 하지만 확실히 내가 좋아하는 삶의 모양은 어느새 태도가 되어 비춰지고 있음을 느낀다.

우리가 밤하늘의 달만 바라볼 때 그 뒤편에 수많은 별들이 숨어 있다는 사실을 잊을 때가 있다. 하지만 애써 찾지 않아도 우리가 시선을 조금만 달리하면 그 별들이 희미하게나마 모습을 드러내게 되고 그 순간의 반짝임에 멈춰 서게 된다. 마치 삶에서 어떤 사람이 굳이 꾸며내지 않은 사소한 행동과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모습만 보더라도 비친다는 것이다. 그 사람이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방향으로 살아가고 싶은지가 자연스럽게 비쳐 보이듯이 말이다.

아이들도 달만 뜨면 그렇게 손으로 가리키면서 무의식적으로 손짓을 하며 멈추어 설 때가 있었다.

애쓰지 않아도 보게 되는 것과 드러내기 싫어도 드러나게 되는 것이 바로 마음의 영역이었던 것이다. 결국 공부라는 것은 끝이 없듯이 매일 톱니바퀴가 돌아가듯 마음을 공부한다는 것이 얼마나 멋진 표현인가 싶다.


또한 어른의 눈으로는 오늘의 영어공부도 아닌 마음공부라는 표현을 서로 인사처럼 나누기가 쉽지 않고 낯간지 러울 수 있는데 아이들의 눈은 그렇지가 않다.

아이 덕분에 알게 되었다. '공부란 끝이 없다'는 말이 단순히 지식 습득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님라는 것을 말이다. 내 마음을 알아가고 다스리고 단단하게 만드는 '마음공부'야말로 평생에 걸쳐 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공부라는 것을 말이다.


꾸준히 글이든 감정일기든 끄적거리면서 있는 그 모습이 멈춰있는 순간이 아니였다. 우주의 자전은 끊임없이 소리없이 돌아가듯이 내 모습은 어느새 아이들의 주변을 맴돌고 있었던 것이다.

마음공부라는 말로 통하는 순간 나는 어른들의 복잡한 세상과 아이들의 단순하고 본질적인 세상 사이의 간극까지도 느껴졌다.


오늘도 아이는 내게 물을 것이다. '엄마, 마음공부했어?' 그때마다 나는 답할 것이다.

응, 오늘도 엄마는 마음공부하는 중이야! 너도 엄마랑 같이 마음공부할래?'


이 대화가 가능하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동심 속 순수한 열망과 때 묻지 않은 언어에 감사한다. 아이의 질문 덕분에 나는 오늘도 진짜 공부가 무엇인지 배운다. 거창하지 않아도 괜찮다. 바쁜 일상 속 아주 보통의 순간들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그 작은 시도들이 바로 가장 위대한 '마음공부'임을!

점수를 매기지 않아도 되기에 얼마든지 부담없이 시작할 수 있다.


매일 같이 글감을 주는 어린이의 말은 실로 놀랍다.

마치 땔감을 날라주듯이 가져다주는 말 덕분에 아궁이는 마를 날 없이 불을 지피며 솟아오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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