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마다의 색이 다름을 매일 느끼며 살아간다.
매주 화요일 벌써 10회기 중 8회 차 놀이정서사회 프로그램으로 친구들을 만난다.
2년째 진행하는 동안 처음엔 내 옷이 아닌 듯해서 고사했었지만 하다 보니 순수함이란 무기가 살아있었다.
이 시간은 잘하고 못하고의 기준도 없이 그냥 너랑 나랑 존재하는 시간이다.
어린이든 성인이든 사람은 누구나 입체적이어서 단면만으로 그 상대를 알 수가 없다.
혼자 또 따로 함께의 모든 면들이 다시 만나면서 비로소 알게 된다.
때론 혼자가 세상 자유로울 것 같지만 내 손 잡아줄 친구가 문득문득 떠오르고,
때론 함께가 세상 행복할 것 같지만 갈등의 씨앗은 메마를 틈이 없다.
우리는 그저 그 안에서 내 마음의 보폭을 줄이고 늘리는 법을 배우고,
우리는 다르지만 한 템포 기다려주고 바라봐주는 경계를 터득해 나간다.
아이들에게 행복과 불행으로만 세상을 이분화시키지 않아도 된다.
그저 나를 지키는 힘을 키워가되 애쓰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다만 그 방법을 놀이로 접근하는 프로젝트이다.
선생님, 저는 일주일에 한 번
이 시간이 가장 기다려져요!
그 이야기를 들으니 내가 어릴 때 매일 반복해서 똑같은 놀이을 해도 질리지가 않았던 기억이 난다.
이번 수업 프로젝트는 수직적인 관계 또는 수평적 관계도 아닌 아나조차 어린이의 역할을 하면서 일원이 되어 간다.
어느 정도 사회성적인 요소, 집단응집력 및 자기존중감 등의 요소를 가미해서 기획한 것은 어른이다. 하지만 중간중간 의견도 나누고 변형시켜 나가는 것을 보면 결국 주인은 어린이들이다.
놀이가 있으니 어느새 자연스럽게 대화도 되고 하나가 된다.
지금 어른이의 놀이를 떠올리면 어떤 생각이 들까? 이렇게 쓰고 있는 동안에도 어른+놀이를 이어 쓰는 것조차 어색함이 느껴진다.
놀이라는 것이 어린이에게만 어울리는 말일까?
어른이들도 항상 모일 수는 없더라도 우리들만의 놀이터가 필요하다.
디지털기기가 장악한 세계에서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와 함께 하는 것도 놀이의 한 형태로도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그 안에서 진짜 온기를 느끼기는 어렵다.
언제든지 애써 친구를 찾고 놀이를 찾지 않아도 내 옆에 있는 최고의 친구는 스마트폰과이 된 현실이다.
놀이의 문도 장도 마음먹고 열어줘야 하는 현실이 씁쓸하다. 특별한 이벤트처럼 되버린 놀이라는 실체말이다
이번에는 수업은 모든 재료도 방법도 미리 준비한다. 따라서 내 자녀들에게만큼은 연습?이라는 핑계를 붙여서 함께 놀이 시뮬레이션을 했다.
어느새 아이들과의 벽은 금방 허물어졌고 저절로 나오는 웃음들을 나누고 있었다. 마음을 먹어야만 하는 거창한 놀이가 아니어도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꼭 제대로 놀기 위해 어딘가를 멀리 가야 하고 어느 정도의 경제적인 지원을 더 많이 넣어줘야 할 것 같은 부담은 온데간데 없다.
물론 소통 속 갈등을 계속해서 겪어나가야 하는 과정이다. 함께 한다는 것이 더 불편하고 쉬운 일이 아닐 수 있다.
이제는 어른이도 어린이도 안전지대가 필요하다. 잠깐 들러 쉬다가 웃다가 놀다가 부딪히다가 지나가는 곳 말이다.
지금 이곳이 바람처럼 머물다가는 곳이 되길 바란다.
우리 모두에겐 잠시라도 숨통 트일만한 그 무엇이 필요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