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과정을 즐겨라!
"엄마, 나 OO학원 쉴래!"
자기주도학습 한번 해볼래!
초3의 당돌하고도 짤막한 한마디에
"그래~ 그렇게 해보렴!"
스스로 해보겠다는 취지에 놀라기도 했고 사실 어떻게 할 건인지 궁금하기도 했다.
학원을 끊자마자 하루에 할 과목들을 써서 보여주더니 와서 브리핑하듯 설명을 한다.
아이의 의견을 존중해 줬지만 결국 그 앞에 앉아 채점도 해야 하고 틀린 부분도 봐줘야 하는 일은 고스란히 부모의 몫이었다.
학원을 다닐 때는 몰랐는데 막상 자기 주도를 한다고 하니 그 옆에서 서포트가 되어야 하는 상황이다.
매일의 스케줄이 들쭉날쭉인 나는 그 마저도 신경을 쓰고 시간을 내야 한다.
오늘은 채점을 하는데 신나게 비가 내리려고 한다.
그때 옆에 앉은 아이는 기다렸다는듯 오답노트를 가져왔다. 그리고 색색깔 펜들이 총출동되어 가지런히 책상 위에 놓였다.
"엄마, 나 오답노트 쓸 거야! 국어도 쓸 거고, 수학도 쓸 거고!"
"응? 왜 수학만 하지.. 국어는 어떤 식으로 하려고?"
이 말이 끝나기도 전에너무 재밌다며 오답노트에 정답을 다시 쓰고 자신만의 방법대로 국어문제의 답을 다시 옮겨 적는다.
얼마나 예쁘게 색펜을 돌아가면서 쓰는지 얼핏 보면 필기연습 내지는 그림 그리기를 하는 듯한 모습처럼 연출이 되었다.
문제 푸는 시간보다 더 걸려도 세상 즐겁다. 세상 정성들이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엄마, 나는 오답노트를 쓰는 게 너~ 무 재밌어!"
자기주도하니까 자꾸 틀린 문제가 있어서 속상하고 힘들지 않을까?라는 마음은 잠시,
스스로 틀린 문제는 다시 써놔야 한다면서 재미를 붙이고 있는 모습이 꽤나 신선했다.
어느새 이제 일주일이 되었지만 아이는 어느새 자기 주도를 통해 자기 스스로 공부하는 방법을 익혀가고 있었다.
"엄마, 친구집에 갔는데 친구엄마가 넌 어디 학원 다니니?"그러시더라!
그래서 난 자기주도학습 해요!라고 답했어! 라며 웃음을 흘긴다.
친구 엄마가 어떻게 자기주도학습을 하냐며 너무 칭찬을 해주시고 놀라워하셔서 내심 나도 좀 뿌듯했지 뭐야~!
순간 자기 주도적인 삶이란 무엇일까?라는 질문이 들어왔다. 초3 아이의 당돌한 말과 해맑은 행동을 주워 담으며 그 지점에서 곰곰이 생각해 봤다. 학원을 다니면서도 평소에는 틀리면 눈물바람 부터 날때가 많았던 아이였다. 그런데 오답노트 덕에 아이는 세상 웃으면서 할 수 있게 되었다.
아이는 스스로 틀린 문제를 고쳐나가는 과정에서 '재미'를 찾았다. 그저 해야 하는 '공부'가 아니라 자신만의 색깔로 오답을 채워가는 '놀이'처럼 느껴졌나 보다.
어른들은 '자기 주도'라고 하면 거창한 계획, 철저한 실행, 완벽한 결과를 떠올리기 쉬운데 아이는 그저 '내가 해보고 싶어서', '재밌으니까' 한 걸음씩 나아간 것이다.
비록 그 옆에 '자기 주도 도우미' 엄마가 필요했을지라도 말이다.
그 아이러니한 상황 덕분에 나는 또 하나의 글감을 얻었다.
거창한 목표나 완벽한 결과보다는.
'지금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가?',
'어떤 과정에 재미를 느끼는가?'라는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을 알려주었다.
서툴고 비효율적으로 보일지라도 스스로 시작하고 그 과정에서 나만의 방법을 찾아가는 것 말이다.
그리고 때로는 기꺼이 도움을 요청하고, 또 기꺼이 누군가의 도우미가 되어주는 것도 필요하다.
우리는 자주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시작조차 못 하거나 완벽하지 않은 과정에 좌절하곤 한다.
하지만 초3 아이는 달랐다. 틀려도 괜찮고 틀린 걸 고치는 과정도 '재밌다'라고 말할 줄 알았다.
그 당돌한 한마디로 시작된 작은 변화가 아이에게는 '나 스스로 해냈다!'는 뿌듯함과 다음 단계로 나아갈 용기를 주었고 나에게는 잊고 있던 '자기 주도'의 본질을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아이의 서툰 오답노트에서 나는 삶이라는 오답을 고쳐나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본다. 완벽하진 않더라도 나만의 색깔로 채워가고 그 과정에서 재미와 배움을 찾는다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멋진 '자기 주도적인 삶' 아닐까 싶다.
아이의 눈높이에서 다시 만난 '자기 주도'라는 단어가 낯선 세상으로 나아갈 아이에게도 그리고 삶이라는 여정을 계속해나갈 우리 어른들에게도 큰 힘이 되기를 바라본다. 아이는 나에게 가르쳐주었다. 자기 삶의 운전대를 잡는 것은 생각보다 사소하고 즐거운 첫걸음에서 시작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