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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를 관통하는 언어 "괜찮아"

어버이날 아이들의 말♡

by 이종미


어버이날 아이들이 수줍게 내민 카네이션과 편지 뭉치를 받았다. 그 안에 담긴 무제한 쿠폰까지 말이다.


갑자기 편의점 앞에서 "엄마 먹고 싶은 거 다 골라!" 외치는 목소리에 입 안에서 맴돈 말은 "아니야, 괜찮아"였다.


이 사소한 순간에 문득 우리 부모님이 떠올랐다. 내가 뭔가 더 해드리려 할 때마다 늘 "됐다, 괜찮다" 하셨던 그 목소리 말이다. 그 '괜찮다'는 말은 어디서 온 걸까? 그리고 왜 그 말이 이제 내 입에서 아이들을 향해 나오고 있는 걸까?


어버이날은 원래 미국의 한 여성이 어머니를 추모하며 시작되어 부모님의 사랑에 감사하는 의미로 자리 잡은 날이다.

'낳고 길러주신 은혜에 감사'하는 날이라는 이 날의 본질은 부모가 자식에게 쏟는 무한한 사랑과 희생에 대한 응답에서 시작된다.

부모는 본능적으로 자녀에게 최고의 것을 주고 싶어 한다. 자신의 생계를 희생해서라도 자녀가 더 나은 삶을 살기를 바란다. 결국 아이들에게 최고의 것을 해주고 싶은 마음이 앞서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하다. 아이에게는 뭐든 해주고 싶으면서 정작 내 부모님에게는 그러지 못할 때가 많다. 그리고 부모님은 또 그런 나에게 "괜찮다"고 하신다. 내가 편의점 앞에서 '괜찮다'고 말한 것은 아이의 순수한 마음을 다 받기에는 미안함이 앞섰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 '괜찮다'는 말이 이미 부모로서 내 안에 깊숙이 뿌리내린 언어이기 때문일까?


이제는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익숙해진 부모의 자리'에 서 있다는 낯선 깨달음이다. 어쩌면 부모님의 '괜찮다'는 말도 당신들의 부모로부터 이어받은 것이고, 나 역시 아이들에게 그 말을 물려주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든다. 이 "괜찮다" 라는 말 한마디가 단순한 거절이 아니라 세대를 관통하는 부모 마음의 고백처럼 느껴졌다.


어버이날은 겉으로 드러나는 감사만이 아닌 숨겨진 부모와 자식의 복잡하고도 애틋한 마음들을 서로 이해하고 그 시간의 깊이를 인정하는 날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아이들에게도 부모님께도 '마음으로 통하는 무제한 사랑의 쿠폰'을 계속 발급하며 살고 싶다. 그 쿠폰의 사용처가 거창한 이벤트나 비싼 선물이 아니어도 괜찮다. 그저 서로의 곁을 지키며 때로는 말없이, 때로는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이였으면 좋겠다.

결국 서로에게 "우리, 함께, 오래오래 괜찮다"라는 세대간 관통의 언어를 나지막이 건넬 수 있는 사이,

바로 지금 이 순간들이 더 많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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