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과불식

20240510/금/맑음

by 정썰
#석과불식 #신영복


e-book과 종이책. 리디와 알라딘. 다독은 아니지만 그래도 독서를 놓지 않게 하는 두 축이다. e-book과 종이책의 장단점과 상호보완성으로 그나마 한 달, 한 권을 꾸역꾸역 이어나가고 있다. 주역을 읽고 있다. e-book이 아니었으면 엄두도 못 낼 일이다. 두 권으로 엮인 책의 부피도 만만치 않을뿐더러, 확 쫄아든 주머니 사정에 선뜻 구입할 주제의 책이 아니다. 월 4천9백 원 정기구독은 낯선 주제의 책에 대한 접근성을 높여주었다. 사 두고 읽지 못한 책에 대한 찝찝함과 본전생각, 사후처리 등에 대한 고민을 없애주어 일단 제목이나 주제가 끌리면 읽어보는데 주저함이 없어졌다. 이번 강병국 저자의 ‘주역독해’가 그렇다. 상경을 읽는데만 한 달이 훌쩍 넘게 걸렸고, 그 휘발성이 만만치 않지만, 점 괘라고 칭한 풀이가 삶의 흐름에 대한 시행착오에서 얻은 일종의 통계며, 진리를 향한 인간의 깊은 고민과 성찰의 결과라는 생각에 일독을 결심했다. 상경을 덮으며 기억에 남는 건 ‘석과불식’ 네 글자와 신영복 선생이다.


“박괘는 늦가을에 잎이 모두 져버린 감나무 끝에 빨간 감 한 개가 남아 있는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이 그림에서 가장 먼저 주목해야 하는 것은 모든 잎사귀를 떨어 버리고 있는 나목裸木입니다.”36 선생은 무의식 중에 자연의 모습으로부터 박剝의 상을 읽어내고 있다. 필자가 보기에 선생의 이와 같은 무의식적인 시도는 그의 인생경험으로부터 우러난 것으로 박剝의 도道가 과연 어떤 것인지 그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P.347)


‘석과불식은 한 알의 작은 씨 과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한 알의 씨 과실은 새 봄의 싹이 되고, 나무가 되고, 숲이 되는 장구한 여정으로 열려 있는 것입니다. 결코 작은 이야기가 아닙니다. (p.357)


절말과 역경을 ‘사람’을 키워내는 것으로 극복하는 것, 이것이 석과불식의 교훈입니다. 최고의 인문학이 아닐 수 없습니다. (p.359)


석과불식은 신영복의 <주역>‘이었고, 불원복은 고광순의 <주역>이었다.(p.377)


‘신영복의 마지막 강의’라는 부재를 달고 있는 ‘담론’을 다시 찾았다. 책을 정리하면서 차마 버리지 못하고 옷장에 쌓아 둔 십여 권 중에 있었다. 책 욕심에 사두고 읽지 못한 책이다.


다음 주부터 주역독해, 하경을 이어 읽을 계획이다. ‘담론’도 병행해서 두 권을 섭렵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놓아버리고 싶었을 누군가의 삶을 지탱해 준 네 글자, 아니 수많은 이들이 읽고 지나쳤을 네 글자를 붙들고 지성인으로, 시대의 정신으로 살아낸 한 인간의 삶을 추앙하며 남은 오월을 의미 있게 보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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