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식(無識)과 건망(健忘) 사이

20240516/목/맑음

by 정썰
#정신차렷 #놓지마_정신줄 #정신이

스승의 날과 부처님 오신 날을 한 큐에 보내고 문득. ‘스승’과 ‘스님’의 관계가 궁금했다. 스승의 ‘승’도 ‘ 僧’일까? 궁금함 자체가 살짝 부끄러워 조용히 검색.

스승 : 자기를 가르쳐서 인도하는 사람. (그나마 인도와는 관계가 있구나). 관계가 1도 없다. 데자뷔처럼 언젠가 이걸 궁금해한 적이 있었던 거 같기도.


시장이 반찬이라는 속담의 시장이 market인 줄 알고 살았다는 선생님의 고백은 백 프로 리얼이다. 우리 대부분은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해서만 궁금해하고, 그중 당연하다고 예단한 건에 대해서는 정확한 확인조차 하지 않는다. 난 관광이라는 영어단어 ‘sightseeing’을 잊지 못한다.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거다. 중학교 담임이셨던, 영어선생님이 영단어 쪽지시험 ‘관광’을 빈칸으로 제출한 내 답안지를 보자마자 건네신 말씀. ‘sightseeing을 못 쓴 거야?’ 쌤은 내게 목욕가운을 주신 거다. (사춘기 까까머리는 담임쌤을 좋아했었지)

시장의 진의를 오해했던 그 젊은 선생님도 아마 나 같은 강렬한 경험을 겪었다면 시장을 그렇게 가볍게 패싱(passing) 하진 않았을 거다.


쉬는 날. 날씨가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달리기를 할까? 헌혈을 할까? (둘 다 하면 힘들다. 아니, 하면 안 된다) 달리기는 언제든 할 수 있지만 헌혈은 정해진 기간이 있으니 당연히 헌혈을 해야지. 뭘 물어. 현명한 아내. 아내는 내가 모르고 있던 내 게으름도 깨우쳐 준 솔로몬 여왕.

단골 미용실에서 이발을 하고 터미널쪽 헌혈의 집으로 간다. 순서는 두 번째, 헌혈 횟수는 63번째. 간호사분이 왼팔에 바늘을 찔러 넣으며 이것저것 설명을 해주신다. ‘네, 네’ 건성으로 듣는다. 내가 헌혈 짬밥이 얼만데. 이런 생각은 대부분 귀 쪽에서 멈춰 귓구멍을 막는 경향이 있다. 가볍게 400ml 기증하고, 초코빵 두 개, 이온음료 한 캔, 헌혈증을 받아 나왔다. 아래쪽 화살표를 누르고 기다리는데 간호사 한 분이 따라 나왔다. 뭐지? ‘저… 지혈대’. 응? 아차! 왼팔뚝에 까맣게 매달려 따라 나온 지혈대.

‘아, 집에 하나 필요해서’ 아재 드립으로 넘겼고, 친절하게도 웃어주셨지만 씁쓸하다. 헌혈 후 지혈이 끝나면 지혈대를 바구니에 담아 두고 나오는 절차를 모르는 게 아니다. 건망증이다. 창피하진 않았지만 살짝 슬퍼졌다.


지천명의 나이인데 모르는 게 너무 많다. 반 백을 살다 보니 잊는 건 너무 많아졌다. 앎이란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걸 모른다고 하는 것.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를 아는 것. 시간적 기준은 현재, 지금. 어제까지, 아니 1분 전까지 알았는데 지금 기억이 나지 않는다면 모르는 게 아닐까? 그 어느 때보다 힘겹게 나이를 먹으면서 개인적으로 긍정적인 측면은 분수를 알고 인정하게 된 거다. 돌직구로 까이면서 모름이 부끄럽지 않게 되었다. ‘그래 나 모른다. 어쩔래?’가 아니라 ‘모릅니다. 공부하겠습니다 쪽이다.’


방송인 주영훈의 일화가 생각난다. 오래된 이야기라 디테일은 좀 떨어지는데, 불교를 믿는 친구가 ‘님’ 자를 떼고 ‘목사’라고 해서, 그럼 ‘스님’은 ‘스’냐?라고 혼내주었다는. 뭐 대충 이런 줄거리. 스님은 ‘승(僧)‘+’님‘에서 ’ㅇ‘이 탈락한 거다. 흠~ 유식해. 잘난 체 했던 기억이 있어서 잊지 않는다.

머리 작은 사람이 치매 확률이 높데. 어느새 잔소리가 되어버린 아내의 걱정 반, 핀잔 반. 정신 똑바로 차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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