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06/목/맑음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海原)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탈쟈의 손수건
순정은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고
오로지 맑고 곧은 이념의 푯대 끝에
애수(哀愁)는 백로처럼 날개를 펴다
아아 누구던가
이렇게 슬프고도 애달픈 마음을
맨 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안 그는
청마… 바위가 되고 싶었던 시인.
어두워진 하늘 한편에 하얗게 졸고 있던 태극기를 거두어들이면서 시인의 시가 생각났다. 소리 없는 아우성. 음소거된 전쟁영화의 한 장 면을 보는 듯한 시구.
슬프고도 애달픈 마음. 한 뼘 내려앉은 채 외롭게 아파트 담벼락을 지키던 국기의 마음. 전체주의 국가처럼 아파트 창밖에 태극기로 도배되지 않아서 보기 좋은 자유 대한민국의 하루. 안테나식 태극기는 편리하지만, 너무나 편하게 만들어서 한 뼘 밖에 내려달 수 없다. 일 년에 한 번인데 뭐.
한 폭을 내려 다는 의미. 조의.
TV에선 2026 북중미 월드컵 2차 예선, 싱가포르와의 A매치 축구경기가 후반 30분을 지나고 있다. 선수들 가슴 어깨마다, 관중석 곳곳에. 다 저기 가 있어서 아파트 우리 동엔 태극기가 없었나 보다.
몇 년 전 늦게나마 제대군인으로 등록한 후 매년 6월이면 통장님이 방문해서 찹쌀, 찰보리쌀, 현미, 서리태 작은 봉지가 옹기종기 든 잡곡세트를 주고 가신다. 내가 뭐라고 사인도 받아가신다. 때때로 노란 종량제 봉투도 주고 가신다.
15년 노고를 위로해 주심에 감사를.
충성이라는 이름으로 산화한, 스러져간 호국영령들께 조의를.
후반 41분 두 골을 선사한 주장 손흥민이 교체로 나간다. 183. 13cm 키 차이. 한 뼘 정도. 현충일의 끝자락에 7대 0, 조국에 승리를 안겨준 그에겐 경의를.
조금씩 바람이 잦아드는 나이. 저 높은 곳에서 힘차게 휘날릴 일이 있을까마는 한 폭 아래에서라도 살살 나부끼고 싶다. 멈추지 않고, 살아있음을 느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