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04/목/흐리고 습함
“군자는 의에 밝고 소인은 이에 밝다”(君子喩於義 小人喩於利).
공자 선생께서는 의를 위해 사는 사람을 군자(君子)라고 하고 눈앞의 이익을 위해 사는 사람을 소인(小人)이라고 하였다.
군자와 소인의 비유를 정치, 경제, 사회적 측면에서 심심치 않게 들어봤지만, 여행에 접목시킨 건 생소하면서도 신선했다. 라디오 방송이었던 거 같은데 어떤 프로그램이었는지, 누구의 의견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요약하자면, 여행도 군자의 여행과 소인의 여행으로 나눌 수 있는데, 시간에 쫓기면서 하나라도 더 보려고 주마간산(走馬看山)식으로 바쁜 것이 후자요. 이와 반대로 유유자적 음미하며 천천히 즐기는 여행을 전자로 구분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요즘 유행하는 MBTI 유형에 빗대자면 군자의 여행은 P의 여행이요, 소인의 여행은 J의 여행과 닮은 것도 같은데, 난 이 얘기를 듣는 순간 ‘부자의 여행’과 ‘가난한 자의 여행’으로 느껴져서 살짝 슬펐다. 보통의 여행은 시간과 예산의 볼모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 둘을 초월한 프로 여행자들은 논외로 하자) 여행의 아이러니. 시간이 많은 시절에는 돈이 없었고, 돈을 좀 모았을 때는 시간이 없었다. 여행은 다리가 떨릴 때 하는 게 아니라, 심장이 떨릴 때 하는 거라는 말을 쉽게 하지만 말처럼 쉽지 않고, 만만치 않은 시간과 예산을 생각하면 심장이 떨리다 못해 살이 떨려오는 게 현실이다.
3박 4일 일정으로 제주도 가족여행을 떠났다. 기상예보와 땡처리 비행기요금의 콜라보로 하루 앞당겨 오늘 저녁 귀가했다. 준프로 여행자인 아내의 기획에 따라 때론 군자처럼, 때론 소인처럼, 때론 부자처럼, 때론 빈자처럼 보낸 2박 3일. 오랜만의 가족 완전체 여행은 선택과 집중에 따라 부족한 거 없지만, 풍족하지도 못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눈 총평. 하루 일정을 줄였어도 아쉬움 없는 여행. 장마기간 변화무쌍한 기후에 크게 영향받지 않은 운 좋은 여행.
경차를 타고, 연수원에서 자고, 고급 요리를 자주 먹지는 못해도 즐거운 여행을 할 수 있다. 군자의 여행, 부자의 여행은 당분간 어려울지 몰라도 기회 될 때마다 자주 다니는 걸로.
그래, 난 빈자(頻子)의 여행을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