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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글이와 갤러그

20240705/금/맑음(아침에 비가 온 거 같음)

by 정썰 Jul 05. 2024
#라면 #뽀글이 #오락 #갤러그


오랜 전(아주 오랜 전) 휴가 나온 형이 주방에서 희한한 요리?를 시전하고 있었다. 라면 봉지를 뜯어 수프를 꺼내더니 수프를 봉지에 다시 쏟아붓고 끓는 물을 봉지에 부은 후 나무젓가락을 클립처럼 활용해서 주둥이를 묶었다. 3~4분 기다리더니 젓가락을 마저 갈라서 봉지 안을 휘휘 저어 한 입.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에이 맛없네’ 싱크대에 다 쏟아 버리고 방으로 들어갔다. 뽀글이였다.

소대장으로 복무하던 시절 당직근무를 설 때면 늘 먹던 간식이 되었다. 새벽 2~3시는 대부분 졸리고, 배고프고, 한가한 시간. 주로 병장이었던 당직 부관은 뽀글이를 만들어서 통째로 반합에 넣어 주곤 했다. 별미였다. 물론 딱 그때뿐이다. 아마 형도 부대에서 새벽 근무 교대 후 먹었던 뽀글이의 맛을 생각하고 휴가 중 한 끼로 때울만하다고 생각했을 거다. 그 맛이 날리 없다. 나도 그랬다.




‘알쓸신잡’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과학자가 포함된 패널 팀이 제주도 컴퓨터 박물관을 찾았다. 다른 기억은 증발해 버리고 출연자가 ‘갤러그’라는 오락을 재미있게 하던 장면이 생생하다. 사실 박물관 이름도 ‘오락 박물관’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그 뒤로 이상하리만치 ‘갤러그’를 하고 싶었다. 중고 오락기계를 검색해 보기도 하고, 앱스토어에서 찾아보기도 했다. 없었다. 추억의 오락. 내 오락실 입문작은 일명 ‘방구차’였지만 가장 많이 했던 오락은 아마 ‘갤러그’였을 거다. 좌우로 밖에 움직일 수 없는, 폭탄 하나 없는 저기능의 비행기였지만, 적 두목의 올가미에 일부러 잡혔다가 구해내면 두 대가 도킹하는 놀라운? 기능이 있었고, 쌍비행기의 능력은 놀라웠다. 보너스 스테이지에서 적을 절멸하고 얻는 점수는 시험성적보다 어깨에 힘이 들어가게 하는 이상한 힘이 있었다. 거짓말 조금 보태서 미친 듯이 하고 싶었다. 며칠 동안.


이번 제주여행 중에 문득 떠올랐다. 점심을 먹다가 검색해서 ‘넥슨 컴퓨터 박물관’을 찾았다. 2층에서 영접할 수 있었다. 추억의 오락 갤. 러. 그.

첫사랑을 만난 거처럼 살짝 설렜다. 그런데 그 반가움과 옅은 흥분은 이내 가라앉았다. 몇 판을 거푸 하고 미련 없이 돌아왔다.


어쩌면 많은 것들이 이렇지 않을까? 머릿속에서 자꾸 뿌려대는 결핍과 상상이라는 이스트가 작았던 욕망을 부풀려 터져 오르게 한다. 주체할 수 없는 욕심. 하지만 이내 시들어 버리는 덧없음이여. 앞으로 다시는 뽀글이 라면이 먹고 싶거나 갤러그 오락을 하고 싶진 않을 거 같다. 파도치는 욕망이 아닌 잔잔한 추억으로 간직하기. 잊지 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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