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10/수/쨍
‘엄마~’. 이게 무슨 일인가. 젖먹이 시절을 빼면 녀석이 먼저 일어나서 지 엄마를 깨운 건 처음이지 싶다. 아침잠이 많은 데다가 방학까지 겹쳤으니 한창 잘 시간이다. 쉬는 날인 나도 덩달아 식탁에 앉는다. 쉬는 날은 내가 우리 집 기사.
친구랑 아침 버스를 타고 종묘에 간다. 쇼핑하러. 모계유전이다. 일 년 전까지만 해도 꾸물거리던 녀석 때문에 늘 약속시간에 간당간당했다. 때론 내가 조급해서 신호위반에 난폭운전을 하기도 했다. 조수석에서 너무나 평온한 녀석에게 퍼부은 잔소리만 해도 트렁크에 차고도 남는다. 처음이다. 볼일보고 간단하게 양치하고 나오니 녀석이 서두른다. 이런 날 꼭 신호가 자주 걸리고 앞차가 정속주행을 하고. 친구랑 예매한 버스 시간 3분 전에 터미널에 내려줬다. 운전 내내 녀석의 꾸지람(?)을 들었다. 자기는 똥도 참았다는 둥 말이 많다. 돌아오는 조수석에 우산이 떨어져 있다. 다행히 서울은 맑을 예정이다.
녀석은 종묘에 푹 빠져있다. 세 명이 함께 두 번 정도 다녀왔고, 나 없이 둘이도 두 번 정도 더 간 거 같다. 빈티지 샵을 돌고, 오래된 음반 가게에서 들르고, 가성비 갑인 노포에서 순댓국을 먹고. 오늘도 비슷한 코스를 친구와 함께 돌았나 보다. 돌아오는 시간에 맞춰 시외버스 터미널로 차를 몬다. 쉬는 날은 내가 우리 집 기사.
차 안에서 무용담을 늘어놓는다. 녀석이 터득한 바가지 쓰지 않는 법은 내가 가르쳐준 게 아니다. 난 바가지를 잘 쓰는 편이니까. 빈티지 옷집에서 할인받아 사온 점퍼와 장사익 가수의 오래된 CD가 오늘의 노획? 물.
녀석의 취향을 아내와 난 ‘똥멋’이라고 웃지만, 미대 오빠다워서 좋다. 어릴 적 결핍을 잘 메꾸며 자라고 있는 녀석이 고맙다. 이 녀석 내 취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