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802/금/찜통더위. 절정.
시골학교였지만, 대단한 놈들이었다.
칠암(七巖)이라는 그 시절 스터디서클에 나 빼고 여섯 명은 시골스럽지 않은 능력자? 였다.
전국 1등을 놓치지 않았던 녀석을 필두로 S대 법과, 의예과, 약학과, 조선공학과, 국제경제학과, KAIST에 입학했다.
내 계급이 대위였을 때, 친구들은 검사, 의사, 약사, 회계사, 대기업 과장급이었다.
신혼 초 아내의 말은 현실적이면서도 살짝 기분 나빴다. ‘오빠는 꼭 장군 되야겠다.’ 친구들하고 놀려면…
번개.
2년 정도 잠수타면서도 단톡방에서 나오진 않았다. 친구들의 대화를 눈팅만 했다. 친구들은 서울에서 가끔 밥 먹고, 골프 치면서 기다려 주었다.
아침에 미술학원 알바하는 아들 차량봉사 후 알라딘에 들러 소멸 예정인 2천 원을 더해 손바닥만 한 책을 한 권 사고, 내 방 장난감 짐을 조금 싸고(10월 이사 준비 시작이다.) 점심 간단하게 먹고 65번째 헌혈을 마친 뒤 서울행 버스를 탔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모습들. 친구들은 의사, 회계사, 대기업 임원이었다. 검사가 변호사가 되었고, 약사인 친구는 약국 지키느라 못 왔다.
잠수에 대한 변을 풀고, 고기에 밥을 얻어먹고, 서둘러 먼저 식당을 나왔다.
오빠는 장군이 못 되었지만, 친구들은 잘 놀아줬다. 그 시절 그 모습 그대로. 진한 촌놈들의 우정으로.
건강하게 자주 보자.
덥다. 주고받고 많은 걸 한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