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209/뭘/맑음
심각한 오판이었다. 오후 세 시 예약해 둔 국립박물관 전시회에 가기 위해 10시 시외버스를 타러 아홉 시 반에 아내와 집을 나섰다. 십 분 정도 전에 환승주차장 입구 도착. 이럴 수가. 만차라니. 게다가 차단기부터 꼬리를 물고 대여섯 대의 차량이 대기 중이다. 반대편 골목으로 차를 돌렸다. 서울로 출퇴근하던 시절 경험이 있다. 빨리 찾아서 세우고 달리면 차를 탈 수 있다. 없다. 내 작은 차 한 대 들어설 자리가. 아내는 재빨리 버스예매를 취소했고, 우리는 미련이 남아 골목골목을 두 번 정도 돌다가 결국 더 길어진 꼬리에 붙었다.
심각한 국가적 위기상황에 한가한 전시회 관람 아닌가 묻던 아내는 차라리 잘 되었다며 전시회 예매도 취소하려 했다. 취소불가. 가자. 쉬는 날도 이번주는 오늘 하루고 본전 생각도 나고. 머리카락 잔뜩 낀 하수구로 물이 빠지듯 더디고 더뎠지만 대기 차량도 하나둘씩 차단기 안쪽으로 빨려 들었다. 오랜만의 버스여행, 오랜만에 서울 간다.
고속버스터미널에서 지하철로 이수, 4호선으로 갈아타고 이촌에서 내려 점심을 먼저 먹고 한 시간 정도 여유 있게 도착했다.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비엔나 1900, 꿈꾸는 예술가들‘
‘비엔나 예술계에 등장한 구스타프 클림트와 1897년 창립된 비엔나 분리파의 역사와 이념, 그리고 비엔나 분리파의 철학이 반영된 비엔나 디자인 공방을 소개하고, 에곤 실레로 대표되는 젊은 예술가들의 표현주의적 경향과 특징들을 살펴, 앞 세대가 후 세대에게 남긴 예술적 유산과 그 메시지를 느낄 수 있도록 구성했다.’는 기획의도에 부응하기 위해 꼼꼼하게 둘러봤다.
"각 시대에는 그 시대의 예술을, 예술에는 자유를"이라는 모토로 기존의 틀을 깨고 예술에 대해 새롭게 사고하는 토대를 만든 ‘황금빛을 그린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
“예술은 현대적일 수 없으며, 그 자체로 영원하다"라고 주장하고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천재 화가, ‘욕망을 그린 화가, 에곤 실레’
그리고 오스카 코코슈카를 비롯한 개성 넘치는 작가들의 작품과 미디어 해설로 몽글몽글해진 감성.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마주치는 얼굴마다 낯설지 않고, 그려보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아! 예술의 힘이여.
오판이 남긴 긴박한 상황을 감정싸움 없이 발 빠르게 잘 대처해서 어느 때보다 소중한 자유를 만끽? 하고 돌아온 하루. 하늘과 구름마저 예술이었던 박물관에서의 하루.